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대표의 단식, 김병준 위원장 방문, 도농복합형은 핵심 아냐, 임시국회 열고 5당 합의문 발표될 수 있나, 약자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만 되면 분권형 개헌도 수용 시사한 바 있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야당 당대표 2명이 동시에 같은 이유로 단식을 감행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6일 저녁 단식에 돌입했고 10일부로 5일차를 맞았다. 이미 양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는 7일 두 대표를 찾아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까진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단식을 감행한지 5일차를 맞고 있는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초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혁 동시 처리를 내거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양당이 지금까지 워낙 움직이지 않다 보니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실제 2019년도 예산안(469조6000억원)은 8일 새벽 양당 의원들만이 참석한 채로 본회의에서 의결됐고 이제는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양당의 답변이 나와야 하지만 이틀간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안타까운 것은 손 대표와 이정미 대표가 선거제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단식에 들어갔는데 이제부터라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도에 관한 논의를 빨리 빨리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영표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김종민 정개특위 간사 등 민주당 책임자들이 하루빨리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이행하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당장 이번주를 넘기면 12월 중순이 지나가는 것인데 정치적 해법 절차는 순서대로 ①큰 틀에서 5당 합의문 발표 ②12월 임시국회 개의 ③정개특위 신속 가동 ④2019년 1월 안에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라고 볼 수 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7일 오후 이정미 대표를 만나 바른미래당이 4당만의 합의안 작성요구를 차버렸다고 항변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영표 원내대표는 7일 오후 이정미 대표를 만나 바른미래당이 4당만의 합의안 작성요구를 차버렸다고 항변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①과 관련 교섭단체 3개 정당(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은 5일 오전 이미 합의문 초안까지 작성했을 정도로 공감대를 이뤘었다. 다만 도농복합 선거구제로 불똥이 튀어 협상이 결렬됐고 양당만의 예산안 통과로 귀결됐다. 도시는 중대선거구제, 시골은 소선거구제로 하자는 게 도농복합인데 한국당은 현재 낮은 지지율로는 대도시에서 1등을 하기 어렵고 2·3등이라도 하자는 판단을 하고 있어서 이를 주장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도농복합을 끼워넣으려고 해서 협상이 결렬됐고 되는대로 4당만이라도 합의하자고 했는데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거부해서 일이 어그러졌다고 항변했지만 사실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도농복합은 3당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하기 위해 의원정수 증원 여부를 어떻게 할 것인지만 큰 틀에서 합의하면 나머지 △권역별로 할지 전국으로 할지 △지역구 선거제도 방식 등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박주현 평화당 수석대변인은 6일 저녁 국회 정론관을 찾아 준비한 논평 원고를 읽기 전에 “민주당은 도농복합이 들어가서 합의할 수 없다. 한국당은 그게 들어가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 그렇게 양당이 서로 짜고 치는 게임을 해서 모두 부결시켰다. 합의문 초안의 2항을 보면 도농복합형으로 합의한다가 아니다. 이걸 포함해서 앞으로 정개특위에서 합의해간다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양당은 이 괄호를 핑계삼아서 선거제 합의를 비토하고 대신 예산안 합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병준 위원장은 손 대표를 찾아 단식을 만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병준 위원장은 손 대표를 찾아 단식을 만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정미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단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정미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단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9일 오후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두 대표를 찾아 단식 만류를 권유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당 원내대표 선거가 끝나는 11일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를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손 대표는 “촛불 혁명으로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했는데 제대로 자리 잡지 못 하고 겉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제도를 개혁해서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며 결연한 뜻을 피력했다. 

이정미 대표도 “어떻게든 12월 임시국회를 열고 정개특위에서 협력해 12월에 합의안을 만들어 처리해야 한다. 그 답이 나올 때까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작은 당을 다 무시하니 방법이 없다”며 합의문이 완성되기 전까지 단식 철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날 홍이승권 교수(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는 국회 로텐더홀을 찾아 두 대표의 상태를 진단했는데 무엇보다 1947년생인 손 대표의 건강이 걱정이었다. 

홍이 교수는 “심장 부정맥 소견이 있는데 계속된 단식으로 부정맥이 심해지면 건강이 매우 염려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고혈압이 없었는데 혈압을 재보니 전형적인 고혈압 소견이 나왔다. 강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고 이정미 대표에 대해서는 “(아직) 건강하지만 매우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데 그런 것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정치가 잘 풀어나가면 좋겠다”고 밝혔다.

의사의 검진을 받고 있는 손 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의사의 검진을 받고 있는 손 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역할 분담으로 대외 홍보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이날 오후 촛불 집회의 중심이었던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00명 이상을 차지해야하는 청년이 지금은 2명(김수민·신보라) 밖에 없다. 청년 몫으로 가야할 정치적 대리인 국회의원이 더불어한국당 거대 양당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 바로 승자독식 제도 지금의 선거제도”라며 “이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청년의 미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정 대표는 약대집단 담론을 거듭 설파했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는 숫자는 많은데 정치적으로 무력한 4대 약대집단이 있다. 청년세대가 그렇고, 농민이 그렇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렇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집단이 그렇다. 이들의 사회경제적 몫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적 권리부터 확보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외치는 약자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정동영 대표는 연일 곳곳을 다니면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사진=정동영 의원실)
정동영 대표는 연일 곳곳을 다니면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사진=정동영 의원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7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게 극한적으로 투쟁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왜냐하면 어차피 그분들이 저렇게 싸우는 이유는 자기 당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자기 당 의석수를 늘리기 위해서 싸우는 건 기득권이 아닌가. 마찬가지다. 서로 사실 자기 당 이해관계 때문에 싸우는 건데 다른 정당을 나쁜 정당 만들면서 자기 의석수를 늘리겠다고 하면 늘려지는가. 서로 좋은 대화를 해서 풀어 봐야지”라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 대해 정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바로 약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약자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다. 그 숫자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해 나가자는 것이다. 결코 3당의 당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역할 식탁에서 의자가 치워져버린 분들을 도와주는 운동이자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민주평화연구원장을 맡아 개헌과 선거제도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에 당선되고 일주일 만에 각 정당의 원내대표들을 만나서 선거제도만 바꿀 수 있다면 권력구조도 달리 개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원하지만 만일 한국당을 비롯한 선거제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에 찬성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분권형 개헌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 말씀과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문 대통령의 초심이 달라졌는가”라고 환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9일 낮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첫 오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기준으로 정의당 노회찬·바른정당 주호영·자유한국당 정우택,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우원식·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출처 : 중앙뉴스(http://www.ejanews.co.kr)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9일 낮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와 첫 오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기준으로 정의당 노회찬·바른정당 주호영·자유한국당 정우택,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우원식·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실제 2017년 5월19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회동했는데 여기서 “선거구제 개편이 제대로만 된다면 꼭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할 필요는 없지 않나.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당시 회동에 참석했던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분권형 대통령제에 소극적이었는데 오늘은 문 대통령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맥락과 유사하다. 노 전 대통령은 정권을 넘겨주거나 권력의 반을 내놓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하고 싶다고 천명했었고, 문 대통령 역시 제대로 된 선거제도 개혁만 된다면 분권형 개헌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를 공식화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은 3당의 담판 회동 요청에 침묵하고 있고, 민주당은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하는 1당으로서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어려워 손사레 △권역별과 연동형에 대한 애매한 입장 피력 △현행 병립형에서 비례대표 의석수만 늘리는 방안 흘리기 △한국당이 도농복합형을 주장했다는 핑계 등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큰 방해자가 돼 있는 것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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