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기연 기자]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가 필리핀 현지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린피스 코디네이터 노베다 씨는 "쓰레기 더미 현장 실사 결과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축구장 6배 크기의 노천 시설에 폐플라스틱·생활쓰레기 뒤엉켜 방치되고 있다. 인근마을 주민은 “처음엔 악취가, 이제는 농작물 성숙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소비량 규제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했다.

필리핀 관세청 관계자가 압수해 컨테이너에 보관중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를 지역 언론사에 공개해 취재팀이 취재하고 있다. (사진출처=그린피스)
필리핀 관세청 관계자가 압수해 컨테이너에 보관중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를 지역 언론사에 공개해 취재팀이 취재하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제공)

필리핀 민다나오 섬 미사미스 오리엔탈

프란시스코 노베다 씨는 지난 12월 3~4일 1박2일 일정으로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1시간 30분가량 타고 남부 민다나오섬에 있는 베르데 소코의 플라스틱 재처리 시설을 조사 차 방문했다. 필리핀 수입업체 베르데 소코는 한국에서 수입한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5,100톤(t)을 지난 7월부터 미사미스 산타클루즈 어퍼부가치에 있는 자사 소유 부지에 쌓아 두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들은 4만5000m2 넓이 폐플라스틱 하치장에 간이막에 둘러싸여 노상에 방치돼 있었다. 쓰레기를 담았던 흰색 비닐 천이 곳곳이 터졌고 그 사이로 폐플라스틱과 생활쓰레기가 비어져 나왔다. 노베다 씨는 “흉측하고 역겨운 광경이 위압적으로 보일 정도로 엄청난 넓이의 노천 시설에 펼쳐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노베다 씨는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액션코디네이터다. 필리핀 환경단체 140여개 연합체 에코웨이스트연합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베르데 소코 시설 조사에 나섰다.

찢어진 포장 비닐 사이로 생활 폐기물과 밧줄, 세탁기 부품, 용기, 페트 병 등 플라스틱 폐기물이 가득한 쓰레기 더미가 축구장 6배 넓이 하치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노베다 씨는 “엄청난 규모의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 압도됐고 그 더미마다 한글이 쓰여진 쓰레기가 가득해 놀랐다”라고 말했다. 

노베다 씨는 3일 오후 4~5시, 4일 오전 6시30분~9시 두차례 걸쳐 한국발 쓰레기 더미를 조사했다. 그는 쓰레기 더미를 밟고 다니며 폐플라스틱 더미의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했다.

쓰레기 더미의 표면은 복사열에 달궈져 말라 있다가 바람이 불면 잘게 부숴진 플라스틱이 대기 중에 날렸다. 또 쓰레기 더미 위에 열대성 소나기가 수시로 쏟아지면서 일부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근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다.

지금도 쓰레기 더미를 조금만 들추면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쓰레기가 들어온 첫 주에 인근 주민들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내뿜는 악취로 고생했다고 한다. 인근 마을 주민은 “화물이 들어온 뒤 한참 역겨운 냄새가 민가까지 날아오다가 열과 바람에 다 말라버렸는지 요즘엔 악취가 많이 가셨다”라고 말했다.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대부분은 일회용 플라스틱과 생활 폐기물이다.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주 타고로안 시내 베르데 소코 소유의 4만5천 평방 미터 규모의 쓰레기 하치장에는 플라스틱 용기, 그물망 등 갖가지 폐플라스틱이 생활 쓰레기와 섞여 방치돼 있다. (사진출처=그린피스)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대부분은 일회용 플라스틱과 생활 폐기물이다.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주 타고로안 시내 베르데 소코 소유의 4만5천 평방 미터 규모의 쓰레기 하치장에는 플라스틱 용기, 그물망 등 갖가지 폐플라스틱이 생활 쓰레기와 섞여 방치돼 있다. (사진=그린피스 제공)

쓰레기 더미에서 20~30 m 떨어진 곳에 민가가 자리한다. 임시 가림막에서 가까운 곳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노베다 씨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가림막 너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가림막에 인접한 텃밭에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주민들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들어온 뒤 농작물의 수와 성숙에 이상이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더욱이 열대성 기후답게 소나기 수시로 쏟아지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 사이에 물 웅덩이가 생기면서 파리, 모기 등 해충이 발생하고 병원균이 증식할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근 마을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올해 필리핀에 도착한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는 총 6,500톤이다. 이곳 쓰레기 하치장에 있는 5,100톤 외 나머지 1,400톤은 미사미스 오리엔탈 터미널에 있는 컨테이너 51개에 분산 보관하고 있다. 필리핀 관세청은 쓰레기 더미를 수시로 조사하며 한국으로 반송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

또 지역 언론에게도 공개해 지역 방송사들은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발하는 뉴스를 내보기도 했다. 현지 환경단체 피노이액션 소속 벤시루스 요린 씨는 한국발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관계자가 필리핀 민다나오섬 미사미스 오리엔탈에 압수 보관 중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5100톤을 지난 6일 조사하고 있다. 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지난 7월부터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 타골로안 자치주 소재 베르데 소코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져 있다. (사진출처=그린피스)
그린피스 필리핀 사무소 관계자가 필리핀 민다나오섬 미사미스 오리엔탈에 압수 보관 중인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5100톤을 지난 6일 조사하고 있다. 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지난 7월부터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 타골로안 자치주 소재 베르데 소코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져 있다. (사진=그린피스 제공)

필리핀 세관당국은 7월 21일, 10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들어온 한국발 플라스틱 쓰레기 6,500톤을 미사미스 오리엔탈 터미널 일대에 압류 보관하고 있다.

필리핀 환경단체 에코웨이스트연합은 지난달 15일 플라스틱 쓰레기 불법 수출을 규탄하는 시위를 주필리핀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었고 지난달 28일 마닐라 퀘존 시 소재 관세청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성탄절 이전에 반환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갖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한편 한국 환경부는 지난달 21일 관세청,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 공조해 필리핀 불법 수출 폐기물 반입을 위한 행정 명령 절차를 시작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필리핀에서 반입을 위한 비용은 원칙적으로 수출 업체의 부담이며 국내 반입한 후 폐기물 처리는 국내법에 따라 업체가 처리한다”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환경부를 상대로 책임 소재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함과 더불어 근본적인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서수정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플라스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 자체를 감축하는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폐기물 처리 및 재활용 시스템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비량 규제 없는 재활용은 답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