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의 우생마사] 오르막 끝에 오는 내리막길
[박종민의 우생마사] 오르막 끝에 오는 내리막길
  • 박종민
  • 승인 2018.12.1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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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1980년대 말에 히트를 쳤던 이문열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있다. 영화화하여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의 제목처럼 오를 수 있는 날개가 있었기에 급기야는 추락하게 돼 있다는 큰 줄거리이며 원리이다.

결국 오르막에 내리막을 대비한 얘기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생각 할 땐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라는 기능이 있으니 맘만 먹는다면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간다는 것이라 여기곤 한다. 추락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오르막 끝엔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는 걸 간과(看過)한다. 예를 들어 산행에서 산정을 향해 오를 때는 모른다. 앞을 향해 열심히 오르고 올라서 마침내 목적 목표에 이르게 되면 열정이 소진되고 에너지가 고갈된다.

이제 곧 산 아래를 향해 하행 길에 들어서야 한다. 직장에서도 어느 조직 어느 부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힘쓰고 노력해 정상의 입지를 위해서 오른다.

그 뒤엔 언젠가는 내려와야만 하는 국면에 쳐한다. 체위와 지위관리를 잘 해야 좀 버티고 앉아 있게 되지만 오래 갈 수가 없다. 오르막에서의 한계다. 다음은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은 어찌 보면 추락(墜落)이다. 추락은 하무하고 허전하고 쓸쓸하다. 추락하기 위해, 추락에 대비해 날개가 있음을 미리미리 인지하고 인식하여 대비했다면 내리막길이 허전하고 쓸쓸하게만 여겨지진 않을 것이련만 많은 이들이 이걸 모르고 오르려고만 한다.

그러다가 허무한 추락을 만나며 그제서야 후회를 한다. 산행에서의 하산 길과 같은 내리막길은 산 정상을 정복하고 난 뒤에서 느끼는 쾌감과 심적 포만감으로 가볍고 즐거울 수가 있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의 직책이나 직무 직분에 있어서의 하강국면은 보람차고 슬기로울 수가 없다. 슬프고 괴로움이고 자칫 좌표조차 생각지 못할 것이리라. 그러니 어느 자리이건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오만방자(傲慢放恣)하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자리에 있을 때 잘못을 저질렀다면 내리막길엔 비웃음과 조롱기리가 되게 돼 있다. 우리의 인생사가 그리 돼 있는 것이다.      

  인생살이라는 게 산을 오르내리는 트래킹코스와 같다. 산정에 오르기 위해 나선 자는  오르고자하는 용기와 패기와 추구 추진하는 집념과 의지를 가지고 미리미리 내리막을 대비해야한다.

하강국면에서 오는 여러 가지 정황에 대처해 나아갈 길을 생각해 놓고 대비해야 한다. 예상하고 예측해서 내리막길에 기다리고 있을 불특정의 상황들에 대처할 태세와 몸과 마음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릇 오르기만을 추구한다. 내리막길에 봉착하게 됨을 생각 못한다. 추락을 대비해 날개가 있음을 생각지 않으려는 심산이다. 그러다가 추락한다. 그처럼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상하지 못한다면 그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추락의 상처는 크고 영육(靈肉)에 박혀든 상흔은 쉽게 지울 수가 없다. 사람은 한계적동물이다. 넘치는 열정과 욕망 욕심으로 무한을 갈구하지만 한계에 부디 치고 말게 돼 있다. 

  사람에겐 차이가 있지만 누구든 몸 마음속에 추구의 욕망이 잠재돼 있다. 그것은 정상을 향해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통한다. 기세 등등 추진 할 땐 유효하다. 그러나 하강국면에선 욕망도 무용지물이다. 욕심일 뿐 힘없이 소멸되고 만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극점의 차이다.

한 달 크면 다음 달은 작고 오르막이 있다면 반드시 그 다음엔 내리막이 존재한 다는 게 철학적 이치가 아닌가. 오르막을 지향하여 무지막지하게 추구하려는 자는 늘 살펴 생각하고 항상 염두에 둬야만 하는 게 하향국면인 것이다. 소소한 일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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