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수 끝에 압도적으로 당선됐지만, 여러 사안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당장 시급한 선거제도 개혁 문제에 대해 너무 느긋, 유치원 3법도 소신없어, 당연하고 당위적인 이야기만 되풀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나경원 신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것은 “계파 종식”과 “대여 투쟁”과 같은 매우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였다. 

나 원내대표는 11일 원내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직접 후보로 나선 것만 보면 3수이고, 중립 후보를 밀었다가 실패한 것까지 포함하면 4수 끝에 이뤄낸 성취다.  

신임 원내 사령탑으로 당선된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정견 발표를 통해 “4대 중점 저지 법안을 만들어 반드시 막아내고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중점 추진 법안을 만들어서 꼭 추진하겠다”며 야당의 투쟁성을 강조했다. 

러닝메이트로 나온 정용기 정책위원회 의장도 “정책 이슈별 정책 저항 운동을 벌여나가고자 한다. 이런 걸 통해서 계파가 무너지고 보수 통합과 반문 연대가 가능하다”며 거들었다.

그렇지만 나 원내대표가 언론(당선 직후 기자회견과 YTN 인터뷰)을 통해 밝힌 이야기를 봤을 때 향후 한국당의 원내 전략을 유추하기는 어려웠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비전과 원내 전략 △남북 문제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선거제도 개혁 촉구 △유치원 3법 처리를 위한 12월 임시국회 개최 △국회의원 세비 인상 문제 △인적 청산과 전당대회 개최 △보수 통합 등 여러 사안들에 대해 매우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했다.

당선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한 나 원내대표. (캡처사진=YTN)

우선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신뢰를 받는 건 뭐냐. 반대만 하는 정당이 아니라 대안을 내놓는 정당이고 반대를 하더라도 국민에게 공감을 받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임 지도부가 매우 애를 많이 썼고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야당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는 신뢰를 다시 얻는 투쟁 2기로 가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품격있는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평화의 속도와 비핵화의 속도를 맞춰야지만 우리가 비핵화를 진정 이룰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은 반대하지 않지만 이 답방이 투샷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결국은 비핵화의 진전과 북한 인권의 진전 부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답방이 돼야 된다”고 말했는데 그동안 한국당이 피력해온 입장을 그대로 반복했고 구체적으로 비핵화를 이뤄내기 위한 큰 틀의 메시지는 없었다.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도 “탈원전 저지를 반드시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지금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경질했지만 홍남기 부총리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소득주도성장 문제를 빨리 폐기하고 우리가 조정하지 않으면 내년 경제가 더 어려울 것 같다”며 한국당의 기존 입장을 그대로 풀어냈다.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는 3당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로텐더홀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 사실 두 분(손학규·이정미)의 야당 대표들께서 단식 중인데 하루 빨리 상황이 정리되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선거구제 개편은 당내 어떤 의견 수렴도 하지 않은 상황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당내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고 정리한 뒤에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3당은 모든 것을 걸고 시급하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큰 틀을 합의하자고 촉구하고 있는데 나 원내대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시한이 12월 말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다. 급하게 활동 시한 안에 하려고 하기 보다 당내 의견 수렴을 하고 정개특위 기한을 연장해서 천천히 논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과의 입장 차이로 선거제도 개편에도 합의하지 못 하고 있는데 나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개헌) 권력구조와 함께 논의될 문제이지 예산안과 연계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 뜨거운 감자인 사립 유치원 비리와 관련 학부모 부담금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의 기싸움이 팽팽한데 나 원내대표는 “교육위원회에서 치열하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우리 당 대안도 있는 것으로 안다. 토론을 거쳐서 대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부분은 교육위를 중심으로 논의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교섭단체 간 연내 유치원 관련 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고 이미 교육위 법안소위에서 3차에 걸쳐 끝장 토론이 진행됐음에도 결론을 못 내고 7일 본회의 통과가 무산된 상황에서 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뚜렷한 견해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회계 일원화를 한 뒤 모두 처벌할지(4당), 회계를 이원화해서 정부가 지원하는 재정 항목만 처벌할지(한국당)가 핵심 쟁점인데 논의 상황을 모르거나 너무 피해간 것으로 판단된다.

나 원내대표는 치열한 정치권에서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을 맡게 됐는데 결국 하루 하루 결단을 내려야 할 일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진=박효영 기자)

예산안 정국에서 국회의원 세비가 182만원 인상(연봉 1억 5176만원)된 것에 대해 3당은 반납하거나 전액 기부할 것이라는 방침을 정했는데 나 원내대표는 “선거로 기사를 자세히 읽지 못 해 세비 인상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액수로 몇 천 만원은 의원 개인이 아니라 보좌진 세비를 같이 검토한 것으로 안다. 다른 공무원 임금 인상분과 같이 검토해 보겠다. 여기서 당장 우리도 반납하겠다 말하는 것 보다는 내용을 들여다보겠다”며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내수석부대표 임명에 대해서는 “아직 지명하지 않았다. 사실상 대여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리인 만큼 협상 능력이 뛰어난 분을 모시려고 한다”고 말했고 원내 인사 지명과 관련해서도 “우리 당내 모든 인사를 적재적소에 또 널리 두루 탕평 인사 등 두 가지 원칙에 맞춰 할 것”이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좀 더 나아가면 “앞으로 내가 더 잘해야 된다. 그동안 당내 민주화에 대한 요청도 많았었다. 적재적소에 인사를 배치해달라는 요구도 많이 있었다. 앞으로 탕평 인사의 원칙 그리고 적재적소의 인사 원칙을 반드시 지켜서 112명 의원들이 모두 역량있는데 그분들 역량을 다 모아서 저희 정당의 역량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고 이는 마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어 반복 화법과 유사했다. 나 원내대표가 말한 원칙을 어떻게 이뤄낼지 방법을 말하기 보다는 당위만 반복하는 것이다. 

2019년 2월 예정된 전당대회와 당 지도부의 체계 그리고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인적 청산 문제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개인적 소신은 집단지도 체제이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 개인 소신만으로 결정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원들과 다양한 논의를 하겠다. 전당대회 시기를 앞당기는 문제는 실질적으로 조강특위 활동 경과를 보면 아직 당협위원장들을 다시 임명하는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며 “조강특위는 곧 (당협위 인사 결과를) 발표할텐데 이 부분도 비상대책위원회 안에서 충분히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조강특위 결과가 전혀 안 나왔기 때문에 나도 아는 바가 없어서 말씀드릴 게 없다”고 말했다.

보수 통합은 △바른미래당과의 당대 당 통합은 가능하지만 소통이 필요 △문을 활짝 열고 차별없이 받아들여야 △한국당의 면모 쇄신으로 입당하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등 당위만 되풀이했고 그 당위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은 전혀 없었다. 

나 원내대표의 정치적 소신 부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국정농단 정국 당시 비박계 대다수가 새누리당을 탈당했던 때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친박계에 맞서기 위해 비상시국회의를 주도했지만 탈당을 하지는 않았다. 탈당 기세만 보여주고 그러지 않았는데 그 배경을 놓고 말이 많았다.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2016년 12월28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한 세력이 창당 예정인 바른정당의) 정강정책은 정해지지도 않았고 안을 오늘 발표한다. 정강정책이 그때는 얘기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제 종편의 한 패널이 (나경원 의원이 바른정당의) 원내대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내대표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주호영 의원(4선)이 합의 추대되는 정보를 받자마자 돌변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누리당 안에 있을 당시 원내대표를 누구로 하느냐에 대해 1순위 2순위로 공감대가 있는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이 왜 안하려고 하는지 속사정을 들어보니 나 의원이 계속 울면서 본인이 하겠다(고 해서 안 됐다)”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그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신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결정과정 등이 특정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등 민주적이지 못 한 부분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다. 민주적 절차를 확보해 가는 것을 지켜보고 합류하기로 한 것”이라며 탈당을 감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해명했지만 이 의원의 증언은 정치권의 정설로 남아있다. 

나 원내대표는 피켓 시위나 장외 투쟁에 대해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편,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나 원내대표의 중립 표방에 대해 “중립이란 세가 유리한 쪽으로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하는 소신 없는 기회주의자를 이르는 것인데 한국당에는 그런 의원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선거가 좋기는 참 좋다. 내내 당내 총질만 하다가 선거철이 되니 대여 전사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젠 의원 대부분이 계파없는 비박이다. 몰락한 친박에 붙어 봐야 정치적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계파를 떠나 싸울 수 있는 용장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라”고 저격한 바 있다.

나 원내대표는 “내가 지지를 받은 것은 복당파로부터도 받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 작년에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당선됐을 때의 득표수와 비교해 보면 특정 계파나 특정 잔류파냐 복당파냐를 가리지 않고 널리 지지를 받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는데 실제 103표 중 68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것이 맞다. 

그렇지만 한국당의 112명 의원들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나 원내대표가 먼저 소신껏 방향성을 제시하고 여기에 대해 찬반 견해가 나오면서 당내 여론이 생기는 것인데 모든 것을 상시 의총을 통해 ‘의원들과 소통하겠다’는 원론적인 방침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난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자존심이 센 의원들의 중구난방 여론을 하나로 모아내기 위해서라도 원내 사령탑의 소신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 대해 나 원내대표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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