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질책을 피해서 사퇴한 오영식 전 사장, 소는 진작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고칠 수 있을지도 미지수, 정비 인력 충분히 충원 못 한 게 크게 작용, 낙하산 사장과 민영화 근본 원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KTX 강릉선(806 열차) 탈선 사고를 정점으로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끝내 사퇴했다. 오 전 사장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캠프 출신 인사로 17대·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고 철도와 교통 관련 전문성이 전혀 없었다.  

오 전 사장은 한파를 탈선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발언을 했고 네티즌들로부터 러시아는 맨날 탈선이 일어나겠느냐는 힐난을 들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시공·점검·운행·사후 대처 등 총체적 난국이었던 코레일의 KTX 관리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오 전 사장은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가 시작되기 1시간 전 오전 10시 즈음에 급 사퇴를 공표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고 대신 출석한 정인수 코레일 부사장에 비판을 쏟아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질책을 받았다. 김 장관은 현재 강릉선 탈선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맡겼고 그 결과를 갖고 전체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오영식 전 시장이 11일 오후 대전 동구 대전역에서 코레일 본사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헌승 한국당 의원이 코레일에서 제출받아 12일 공개한 당시 관제 녹취록(8일 7시7분~7시36분)을 보면, 역무원이 강릉역 인근 ‘선로 전환기’의 고장을 감지했음에도 경보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정확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서울행 철로 주변에 설치된 전환기가 고장났는데 경보시스템은 강릉 차량기지에 있는 전환기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주변 전환기 두 개의 회로가 잘못 설치됐던 탓이다.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가 긴급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품 설치시 사용됐던 현장 ‘작업도’ 자체가 문제였다. 작업도대로 설치하면 회선이 거꾸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점만 이렇게 잘못 설치됐을 리도 없어서 코레일은 강릉선 전체 전환기(236개)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강릉선이 시험 운행 중이었던 지난 9월에도 전환기의 신호 오류로 큰 사고(1명 사망·6명 부상)가 있었고 그때 코레일이 이를 인식하고도 자체 진단을 통한 재발방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철도 노조가 공개한 중간 보고서에 그런 오류가 적시돼 있었지만 이후 점검을 전혀 하지 않고 똑같은 사고가 반복된 것이다.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간사(왼쪽)와 자유한국당 박덕흠 간사의 모습. 11일 강릉선 탈선 사고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하기 위해 소집된 국토위 전체회의. 이날 여야는 고성만 오갔지 실질적인 문제점을 따지지는 못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순자 국회 국토교통위원장(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간사(왼쪽)와 자유한국당 박덕흠 간사의 모습. 11일 강릉선 탈선 사고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하기 위해 소집된 국토위 전체회의. 이날 여야는 고성만 오갔지 실질적인 문제점을 따지지는 못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철도안전법에 따라 열차의 운전석에는 블랙박스가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어야 하지만 강릉선 어디에도 블랙박스는 없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다른 KTX 열차를 보면 블랙박스가 있어도 테이프나 스티커로 카메라 렌즈를 가렸던 위법적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은 우선 강릉선의 대부분이 법률 개정 이전에 발주된 열차라 블랙박스를 못 달았고 2019년 초에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코레일이 비용을 이유로 정비 인력을 충분히 늘리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예전에는 10km 점검을 10명이 맡았다면 최근에는 2~3명이 맡고 있다 보니 당연히 정비 소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년 전에 비해 현재 전체 코레일 직원은 1600여명 늘어났지만(2만9602명) 정비 인력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 하고 있다. 갈수록 코레일이 관리해야 할 선로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9693km) 선로 및 차량 정비 인력은 너무나 부족하고 늘어난 인력도 대부분 외주 용역이다. 4년 동안 코레일이 직접 고용 형태로 증원한 정비 인력은 고작 80명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의 고속 열차 신칸센은 실시간으로 유지보수(매일 정기검사·신호설비의 전압 전류 자동 검사)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해서 탈선 및 인명 사고는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오 전 사장이 11일 오후 대전 동구 코레일 본사를 나서고 있다. 오 전 사장은 철도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로 평가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궁극적으로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 코레일을 경영했고 △공기업 민영화의 여파로 인해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인데 보수와 진보 야당은 이 지점에 대해 지적했다.

10일 열린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박덕흠 의원(국토위 간사)은 “오영식 사장 말대로라면 앞으로 기온이 영하 10도, 20도 더 떨어진다면 선로 이상으로 인한 탈선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결국은 내 잘못이 아니라 날씨 탓이라는 말”이라며 “문재인 정부 낙하산 인사의 현실이다. 국민 공기업 사장이라면 최소한의 업무 지식을 가지고 발언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코레일 사장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가 맡아서 철도를 국민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어쩌다가 국민 공기업 코레일이 사고뭉치 공기업이 되었는지 오 사장께서 더 잘 알 것”이라고 밝혔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11일 논평을 내고 “철도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2013년 이후 600건이 넘는 열차 안전 사고와 고장이 발생했고 지난달 KTX 열차와 굴착기 충돌 사고부터 최근 3주간 열차 사고가 10건이나 일어났다”며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더 큰 가치로 두는 민영화와 외주화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코레일과 철도공단에서 추진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민영화 문제를 다시 돌아보고 철도의 공공성과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