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까지도 예측 안 돼, 두 대표의 단식 끝, 3당의 농성 해제, 직후 개헌 논의부터 디테일을 보면 방심하기에는 일러, 임종석 실장도 대통령의 의지 전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두 당대표(손학규·이정미)의 사활을 건 단식 투쟁 이후 10일이 지났고 마침내 5당의 선거제도 개혁 합의문이 발표됐다. 전날(14일)까지만 해도 12월 임시국회 개최(17일)에만 합의를 봤고 구체적인 의제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원내수석부대표들끼리의 협상에 남겨뒀는데 하루 만에 큰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5당 원내대표(홍영표·나경원·김관영·장병완·윤소하)는 15일 13시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월 임시국회 내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라는 데드라인을 명시한 선거제도 개혁 합의문을 발표했다.

14일 12월 임시국회 개최한 5당 원내대표들 하루 만에 가장 핵심인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에 대해 합의를 이뤄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①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②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석 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 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합의에 따른다. 
③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④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  
⑤정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다. 
⑥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 

이로써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은 막을 내렸고 3당의 농성 모드도 해제됐다. 

직후 14시에 열린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농성 해단식에서 그동안 고생했던 각 당의 당직자들과 지지자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지지자들은 로텐더홀 중앙에서 손 대표를 원으로 둘러싸고 “대한민국의 지도자 손학규”를 외치면서 환호했다.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대표는 단식을 감행했고 3당은 농성 모드로 총력전을 펼쳤다. (사진=박효영 기자)
로텐더홀 정중앙으로 와서 손 대표를 연호하는 지지자들. (사진=박효영 기자)
곧바로 단식 농성장이 철수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는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들을 언급했다.

먼저 “많은 어려움 중에 내게 가장 큰 어려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선거제도 개혁의 중대성이 폄하되는 게 참 어려웠고 두 번째는 이거 되겠어? 이런 회의주의였다. 잘 안 될거야. 너무 오래 걸릴텐데 몸 생각해야지 이런 말씀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 수 있는 골든타임을 넘겨버리면 이제 이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단식이 10일, 20일, 30일 되는 것보다 지난 30년을 기다려온 세월의 무게를 생각하고 이 싸움을 긍정적으로 견뎌왔다”고 강조했다.

당초 김성태 전 원내대표에 비해 연동형에 좀 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예상됐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나 원내대표 취임하고 속으로 걱정했다. 다른 당무를 살피느라 선거제도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면 어떡하나 각오도 단단히 했었다. 이 문제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국회의 시급한 일로 처리해주신 데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공동행동을 했던 동지에 대해서는 “3당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장 든든했던 것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단식을 결의한 손 대표께서 옆에 계셨다는 사실이다. 항상 옆에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왔다. 단식에는 함께하지 않았지만 엄동설한에 이곳 저곳을 누비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설득해준 정동영 평화당 대표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정미 대표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환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촉구했던 근본적인 이유와 관련해서는 “나는 한국 정치의 악마가 민주당도 한국당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악마는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대결 정치다. 연동형으로 가는 길은 그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는 길이다. 정책과 의견대로 국민께 평가받고 지지받고 이것을 토대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생산적인 정치를 만들게 될 것”이라며 “24살의 김용균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지금 죽음의 외주화를 멈출 수 있는 많은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그런데 논의조차 되지 못 했다. 온 국민의 애도 물결은 넘쳐나는데 왜 국회는 그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드시 실행해야 할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데 이 대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양당 독점을 위한 승자독식 선거제도는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에 양당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앞으로 한 달간의 논의 과정도 험난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토론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 이제 연동형이라는 선거제도의 실제 내용을 우리가 다 함께 설계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5당 합의문과 교섭단체 합의문. (사진=민주당 제공)

실제 합의문 ①을 보면 “도입한다”가 아니라 “도입을 위한 검토를 한다”라고 돼 있다. 또한 초안과는 달리 ②은 급하게 수정됐는데 기존의 “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가 아니라 “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로 의원정수 증원에 대해 못을 박지는 않았다.

우인철 우리미래(청년 정당) 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제 합의라고 속보가 뜬다. 이건 오보다. 들리는 이야기로 정확히는 검토 합의다. 특히 의원정수 10% 이내 확대 검토로는 비례성 보장 효과가 너무 적다. 좋은 일이지만 이제 시작이자 출발 단계”라고 주장했다.

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정수 증원이 불가피하다. 기존에 제시된 △330석 △360석 △380석 중에서 제일 낮은 30석 증원으로 범위를 못박았고 이조차 확정이 아니라 여부를 검토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그동안 민주당과 한국당이 국민의 정치 혐오 정서를 핑계로 정수 증원은 절대 안 된다면서 손사레를 쳤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도 진일보 했다고 볼 수 있다. 

합의문을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5당 원내대표들. 왼쪽부터 윤소하·장병완·홍영표·나경원·김관영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작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⑥이다. 한국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포함된 대목인데 개헌 권력구조 문제는 집권하고 있는 민주당과 권력을 국회로 최대한 가져오고 싶은 한국당 사이에서 매우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쟁점 사항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 당시 개헌 정국이 펼쳐졌을 때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고수하는 민주당과 이원집정부제를 고수하는 한국당 간에 끝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동시 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그때 3당이 개헌 연대를 조직해서 절충안으로 내놓은 총리추천제 역시 수용되지 못 했었다. 이번 합의문에는 선 공직선거법 통과 후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명확하게 밝혀뒀지만 언제라도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연계돼 협상 결렬의 요소로 작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원외 활동을 이끌어온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회는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며 끝까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는 점을 환기했다. 

교섭단체인 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은 오는 17일부터 열릴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의제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공공부문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12월17일까지 구성하고 국정조사계획서를 처리한다.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등 환경노동위원회 계류 법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의견을 참고하여 처리한다. Ⓒ사립유치원 관련 개혁 법안을 적극 논의한 후 처리한다.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고 표결 처리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임종석 비서실장이 이날 점심시간 때 농성장을 방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12시 반 즈음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단식 농성장을 찾아 “국회가 비례성 강화를 위해 여야 논의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면 이를 지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를 대신 전달했다.

임 실장은 “대통령이 정치를 해오는 동안 비례성 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다.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를 골자로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이 2015년에 발표됐을 때도 그것이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이 먼저 이렇다 저렇다 하기 보다는 국회 합의를 지지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하고자 왔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표는 “이것은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기에 나는 이 길을 민주당도 한국당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신뢰를 갖고 협상을 해 나아가자. 만일 우리 정치가 다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나는 언제든지 다시 이 자리에서 농성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는데 3당의 농성이 재개되지 않고 1월 안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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