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특위 인적 청산두고 계파 대리전 치른 나경원과 김병준, 친박계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나경원, 김병준은 인적 청산에 서두를 수밖에, 보수의 가치 혁신은 뒷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당내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던 비박계가 나경원 신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선출 이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도 전원책 변호사를 영입했다가 실패한 뒤 인적 청산 작업에 마음이 급하다.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15일 당무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21명의 현역 의원을 당협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총 253개 당협위원회 중에서 173곳은 감사를 통과했고 79곳은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나 원내대표가 친박계 잔류파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됐던 만큼 친박 인사만 내칠 수는 없었고 친박(최경환·홍문종·윤상현·김재원)과 비박(김무성·권성동·황영철·홍문표·김용태)을 적절히 안배했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친박과 비박의 계파 대리전을 치르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문종 의원 등 친박이 기세등등한 상황에서 감사 결과 발표 직전까지 나 원내대표는 당무감사에 대해 우려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나 원내대표는 12일 방송된 YTN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서 “112명의 의석도 많지 않은 의석이어서 사실 우리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크게 해하는 쪽의 쇄신에 대해선 좀 우려한다. 그러나 또 국민들 눈높이에서 보는 쇄신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거라서 이런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13일 방송된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는 “너무 큰 폭의 인적쇄신은 실질적인 대여 투쟁의 에너지를 떨어뜨리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 가급적 최소한으로 하는 게 맞지 않나. 문재인 정부 실정에 맞서 헌법 가치를 파괴하는 부분은 막아야 하는 상황에 장수가 112명인데 장수 숫자를 자꾸 줄이겠다고 한다”고 말해 사실상 인적 청산 작업에 대해 거듭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친박과 비박을 금기어로 해야 한다고 발언했고 보수 통합을 외쳐온 나 원내대표는 2020년 4월 총선이 다가왔을 때 공천 심사 과정에서 인적 청산을 진행해야 한다며 ‘시기 유예’를 대놓고 주문했다.

나 원내대표는 13일 처음으로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나서 “인적 쇄신 자체엔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 시기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나는 112명의 의원들을 모시고 싸워야 한다. 군사 한 명 한 명이 중요하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고 우리 당의 단일대오를 흐트러뜨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원조 비박계 나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도움으로 당선됐다. 정우택 전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김 위원장은 “나중에 할 것은 나중에 하고 지금 해야 할 것은 지금 해야 한다. 내가 비대위원장으로서 강력하게 요구 받은 것이 바로 인적 쇄신이다. 1차는 이번에 하는 것이고 2차는 전당대회를 통해서 이뤄질 것이다. (내년) 공천이 3차 인적 쇄신이 될 것이고 4차는 국민의 선택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며 나 원내대표의 입장과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당대표인 김 위원장과 원내 사령탑인 나 원내대표의 이런 견해차는 마치 친박과 비박의 대리 계파전을 보여주듯 긴장감을 형성했다. 

홍 의원은 12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비대위라든가 이런 분들이 그동안 탈당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그분들 의견을 대변해왔다. 지금 무슨 누구를 어떻게 하고 몇 사람 이름을 발표하고 하는 일들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고 당내에 굉장히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비대위의 정당성을 깎아내렸다.

이렇게 2016년 말 국정농단 이후 숨죽여 지냈던 친박이 들고 일어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비박은 2019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더욱 치열하게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나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통합을 강조했지만 계파 경쟁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계파 갈등을 봉합하는 것 보다 한국당이 신경써야 할 본질적인 문제는 무너진 보수의 가치를 세우는 것인데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14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비박이었던 나 의원이 귀순해서 친박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원내대표가 됐고 지금 현재 김 위원장의 인적 청산에 반대하는 걸 보면 시대정신에 멀어지고 있다. 개혁을 하지 않고 국정농단에 대한 인적 청산을 하지 않고 어떻게 나경원 호가 제대로 국민적 지지를 받겠는가. 잘 해낼까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지도부를 장악했던 비박계 인사들(김성태·김병준·김용태). 하지만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뒤 나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0월6일 방송된 KBS <엄경철의 심야토론>에서 “지금 비대위는 한국당 내에서 일종의 세력 간의 힘의 교착관계 속에서 잠정 휴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혁신은 기존 힘의 관계를 깨트리고 변화를 주는 것이다. 이걸 계속 유지하는 게 혁신의 좋은 신호는 아니다. 한국당의 혁신 동력과 에너지는 어디서 오고 그 주체는 누구인가. 보이지 않는다”며 “혁신의 시작은 반성과 성찰인데 없다. 두 분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는데 누구 하나 내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한국당 내 계파 교착관계 때문에 비박계 수장 김무성 의원이 친박계 중진들을 만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재판 결의를 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보수하면 전통을 말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시대와 소통하고 변화하는 것이 보수다. 그런 변화를 하지 않으면 수구라고 한다”고 규정했는데 한국당이 수구의 길이 아닌 제대로 된 보수 정당으로 혁신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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