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전대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조용할 날 없는 게 정치권이다. 세계의 선진국으로 통하는 미국은 트럼프를 둘러싼 온갖 스캔들이 그칠 날 없다. 게다가 불법 이민자들의 행군으로 멕시코 국경을 지키느라고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민소녀의 죽음의 파장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영국은 메이총리의 불신임안은 극복했지만 유럽연합 탈퇴문제는 아직도 발목을 잡는다. 프랑스는 젊은 대통령 마크롱의 일방통행에 화난 군중들이 연일 극성스런 데모로 퇴진을 압박받고 있다.

강력한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제외하고는 아직 조용한 편이다. 베트남의 정치는 축구에 가려 ‘박항서’만 부르고 있어 열외다.

문제는 한국이다.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을 자처하면서도 정치는 최하위 후진국 수준이다. 고질적인 정파싸움에 여념이 없던 정치권은 때마침 12월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날카로운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대여야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이면협상을 통해 두 당만으로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에 소외된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정의당 이정미대표들은 국회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목표는 선거법개정이다.

현재 국회의원총수는 ‘300인 이내’로 되어 있어 원래 299명이었다. 세종시가 새로 생기면서 한 석을 늘려 300명으로 되었지만 수학공식으로 따진다면 300의 이내(以內)는 299다. 입법기관이 위법을 하고도 여야합의라는 이름으로 호도(糊塗)되고 있을 뿐이다.

소수야당 3당의 주장은 정당투표를 허용하고 있는 현행법의 취지에 따라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연동형으로 바꿔 자당의 득표수에 따라 의원 숫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방법이 시행되고 있어 크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국회의원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정의당의 심상정은 30석을 증원하자고 한다. 국민들이 이를 용납할까.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특권만 행사할 줄 아는 의원숫자를 오히려 대폭 줄여야 한다는 여론도 꾸준히 증가한다.

더구나 과거 전국구(현재의 비례대표) 시절에 여야를 막론하고 막대한 정치헌금으로 의원직을 사고팔았던 전력(前歷) 때문에 비례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나쁘다. 공천이 아니라 ‘돈천’이라는 비아냥도 생겼다. 전국구(錢國區)라는 별명도 얻었다. 의원정원을 그대로 고수하며 연동형으로 고치려면 지역구를 대폭 줄여야 가능한데 현역지역구 의원들과 이해(利害)가 상충한다.

정당득표=의원수라는 취지는 맞지만 지역구 기득권을 빼앗는 것이 쉽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에 반대 입장을 가진 민주당 측에서 약간의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어 어떤 결말로 매듭지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단식을 끝내게 하려는 방법으로 섣불리 실행도 하지 않을 약속을 한 것이라면 더 큰 불덩어리를 가슴에 품은 것과 뭐가 다르랴. 이것이 첫 번째 얼굴이었다면 두 번째는 광주광역시장을 지낸 윤장현이 가짜 권양숙에게 속아 4억5천이라는 거금을 날린 사건이다.

국제범죄 조직인 보이스피싱 때문에 현역판사까지도 몇 천 만원을 송금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전문 범죄꾼들의 교묘한 속임수에 잠시 혼돈을 일으켰던 사건에 불과하다.

필자의 친구들 중에서도 제법 똑똑하다는 사람이 3천만 원을 뜯긴 일이 있어 보이스피싱의 무서움은 익히 들었지만 윤장현의 경우는 보이스피싱이 아니다. 서버를 외국에 둔 국제범죄도 아니다.

전화 한 통화만 제대로 했어도 당할 일이 아니었다. 전직 대통령의 부인이라면 직접 만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광주시장 정도면 얼마든지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아니한가. 장장 몇 달에 걸쳐 12회나 직접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는 268회나 교환했다고 하니 아예 사기꾼의 허점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닐까.

민주당 공천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시점이어서 그가 사기 당한 것은 선거와 관련 있다는 검찰의 기소는 법원에서 다툴 일이 되었다. 마지막 얼굴은 자유한국당 조직 강화특위의 당협 위원장 대거 물갈이 결정이다.

내후년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건곤일척대격전을 벌일 일선 위원장 79명을 이 판에 물갈이 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거기에 현역의원 21명이 끼어있다. 여당도 이런 대폭 교체는 못한다. 하물며 야당에서야. 한국당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정권을 빼앗긴 후유증 탓도 있지만 절치부심 새로운 정치를 구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교체대상인 현역들을 살펴보면 김무성을 비롯한 복당파들과 홍문종 윤상현 등 친박 중진 그리고 험지가 아닌 낙지(樂地)에서 다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비율이 엇비슷하다. 스물 한명의 의원들이 당을 박차고 나가면 원내교섭단체 정당이 되겠지만 그들의 성향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은 0%다.

상당한 반발과 진통이 예상되지만 다음 공천신청을 통해서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기에 탈당사태는 크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한국정치의 세 얼굴은 낙후한 정치 진면목이다.

북핵으로 인한 치열한 한・미・북・중 눈치 보기 싸움이 새 해 들면 어떤 형태로든 매듭이 지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내정치도 이에 맞서 통일과 평화를 담론하는 비전을 제시해야만 살아갈 수 있음을 명심하고 넓고 멀리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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