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농가 “ 산란일 표기는 영세 양계농가 울리는 탁상행정...”
계란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상온 유통 금지가 우선
소비자 "건강위해 야채에도 적용" "식탁물가 인상 신호탄"

(사진=신현지 기자)
충남의 한 양계 농가.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축산물 표시기준 개정으로 양계 농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살충제 달걀 파동 이후 정부는 후속대책 하나로 달걀 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19년 2월 23일부터 산란일자 표기의무화 방침을 내세웠다.

시중에 판매되는 계란에 생산지가 아닌 닭이 알을 낳은 날짜 4자리를 달걀 껍데기에 반드시 적어야 한다는 축산물 개정법이다. 이에 양계농가들의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대한양계협회 소속 등 양계 농민 1천500여명이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식약처 앞에서 '산란 일자 표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 과정 중에 일부 양계 농민은 약 30m 길이 식약처 철제 정문을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이날 양계농가들은 계란의 안정성과는 무관하게 산란일자만으로 달걀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소비자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식용란 선별 포장업 등 영세한 양계농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산란 일자 표기 시행을  철회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기존 생산자의 고유번호와 사육번호 등 6자리 외에 산란일자 4자리를 추가로 표기하도록 하는 이번 개정은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으로 소비자와 생산자와 간에 불신을 심어주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산란일 표기로 덤핑 처리되거나 비싸지거나...계란 하나 구입에도 빈부 양극화 가능성

실제로 지난 16일 천안의 양계농가 김준석(54세)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계란에 산란일자 표기는 유럽에서 해오다 유통상의 시행착오를 겪고 철회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계란은 가공품이 아니고 매일매일 산란하는 생산물이다.

중간 상인은 필요한 만큼만 가져간다. 오늘 100개 낳았다고 해서 100개가 소비되면 문제가 없지만 30개 소비되고 70개가 남으면 이를 어떻게 하겠는가. 소비자들은 최대한 산란 직후의 계란을 찾을 것이고 결국 최근 산란 계란이 아니면 덤핑 처리되든지 아니면 대량의 폐기처분 될 것이다. 그럼 소비자들 역시도 덤핑처리의 계란을 사먹는 층과 비싼 계란을 사먹는 층으로 나누어지게 될 것인데 계란 하나 구입에서도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가중시킬 것인가.”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또한 “지난 계란 파동에 수입산 계란을 잔뜩 들여와 판매했는데 수입 유통기간이 두 달씩이나 걸리는 그 계란의 신선도는 왜 생각해보지 않았느냐, 산란일 표기가 아닌 유통기한을 표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13일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열린 '계란 산란 일자 표기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식약처 정문을 밀어 넘어뜨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13일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열린 '계란 산란 일자 표기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식약처 정문을 밀어 넘어뜨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계란의 신선도 유지 위해서는 산란일 표기가 아닌 상온유통을 금지하는 것이 우선 

안산의 양계농가 서민욱 씨도 “계란의 신선도를 위해서는 상온 유통을 금지하는 것이 우선이다.”며 “산란일자 표기로 계란의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하면 이 기준에 맞춰 팔지 못한 계란은 모두 농가 손해로 돌아오는데 그럼 이걸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줄 것이냐”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일일이 계란마다 산란일자를 표기하는 것 자체도 현재 6자리에서 10자리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 영세농가에서 그 시스템까지 갖추기에는 5억에서 10억 가까이 드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생산물의 정확한 정보 알 권리 있어...산란일 표기로 먹거리 안심할 수 있게 해야 

소비자들의 입장도 분분했다. 여의도 강 모 주부는 “소비자들은 시중 판매 모든 생산물의 관련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며 “그런데 지금껏 시중에 판매되는 계란의 표기가 산란일이 아닌 생산지만을 표기한건 뜻밖이고 생산지만을 표기하여 판매가 계속 될 경우 신선도를 상실한 계란도 손질 포장해서 싱싱한 것처럼 판매할 농가가 전혀 없다는 걸 누가 보장하겠냐”며 반발하는 양계농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아울러 그녀는 “산란일을 표기하지 않겠다고 시위하는 건 지금껏 소비자들이 신선도가 떨어진 계란을 식탁에 올렸다는 걸 생산자들 스스로가 보여주는 것이다.”며 “이번 기회에 계란뿐만 아니고 야채도 수확한 날짜를 표기하여 먹거리만큼은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수입산 계란도 먹었는데 양계농가들 부담 가중으로 계란값만 부추기는 건 아닌지... 

반면 이천의 김연아씨는 “계란 파동 때 수입산 계란도 먹었는데 이제 와서 계란에 산란일자 표기 등으로 양계농가에 부담을 가중시키면 계란 값만 부추기게 되는 것 아니겠냐.”며 “소비자 입장에서 신선한 계란을 먹는 건 당연이 환영이지만 가격이 비싸진다면 그렇게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김연아씨는 “어디 계란만 오르겠는가. 계란이 들어간 식품들이 연달아 오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식탁물가가 연일 고공행진인데 서민들 더 힘들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산란일자가 표기 된다면 비싸도 최근 산란일자의 계란을 구입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식약처는 지난 9월 ‘축산물 위생 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을 예고하고 축산물 표시 기준을 바꿔 계란 난각 표시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것을 밝혔다.  

이에 기존의 시도별부호와 농장명을 기재했던 표기 방식에서 앞으로는 난각에 산란일자, 생산자 고유번호, 사육환경 번호를 표기해야만 출하가 가능해진다.

산란일과 고유번호가 계란 껍데기에 표시되지 않으면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15일과 해당 제품 폐기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생산 농장의 업체명과 소재지는 식약처 식품안전나라 사이트와 농림축산식품부 홈페이지에 공시될 예정이다. 농장에서 임의로 코드를 위조 또는 변조하면 제품을 즉시 폐기하고 영업 폐쇄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예정대로 2월 말부터 개정안을 시행할 방침이지만, 농가 반발을 고려해 행정처분 등 단속은 6개월간 보류한다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에 따르면 습도 80%에서 3∼5℃의 온도 저온 보관되는 계란은 최대 5주까지 보관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