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아들 잃은 어머니가 국회에 온 사연, 구의역 김군 사고 이후 2년 후에 화력발전소에서 또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한국당의 반대, 위험한 작업환경, 정치 부도의 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이렇게 호소했다.

“돈과 권력이 있는 그런 사람들만 살 수 있는 나라.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은 인권도 무시되고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게끔 법이 만들어져 있고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 우리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인데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나라 법이 왜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우리도 권리를 찾고 살고 싶다. 어린 동료들 용균이 같은 동료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국민 여러분도 그렇고 국회의원들도 그렇고 우리 용균이를 다시 살려주기 바란다. 우리 동료들 다 살려주기 바란다.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해찬 대표에게 고통을 호소한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씨. (사진=연합뉴스 제공)

비정규직 노동자 故 김용균씨를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는 전날(23일) 저녁 서울로 올라와 ‘꿀잠’(비정규직 노동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김씨는 24일 아침 일찍 마포구 상암동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스튜디오에서 방송 녹화를 마치고 국회로 향했다.

김씨는 <뉴스공장>에서 “원청에 사람 취급 안 하고 구조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 나라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컨베이어벨트에 아이가 껴서 몸체는 두 동강 났고 등은 갈아지고 타서 정말 기가 막혔다. 온전한 몸으로 그냥 죽어도 원통한 일인데 이렇게 죽으니까 원통하고 분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비참하게 죽어간 아들에 대한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김씨는 무엇보다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한 제도화를 촉구했다.

김씨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서 “대기업이란 이곳이 정말 열악하고 위험하고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던 게 너무 많다. 그 애들을 다 살려야 한다. 비록 우리 아들은 갔지만 나는 정말 몰랐다. 내가 저런 (열악한) 곳을 믿고 보냈구나. 조금이라도 애한테 관심을 두고 시켜서 알았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 여러분께서 도와달라. 이번에 법안이 제대로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 아들들 또 죽는다. 나는 그런 꼴을 보기 싫다. 너무 아프고 힘들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제발 부탁드린다. 정말 제대로 된 법안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막을 수 있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김씨를 만난 자리에서 “사실 올해 국정감사 때 1·8호기를 담당했던 한전산업개발에서 찾아와서 그 이야기를 했다. 정규직화 안 돼도 좋은데 죽지 않고 일하게만 해달라고. 그때 거의 절규를 하고 간 것인데 그 신호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기업도, 국회도 그 신호를 책임감 있게 받아들였으면 용균이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도 너무 많이 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의당은 원내에서 가장 노동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이정미 대표는 지난 15일 선거제도 개혁 관철을 위한 단식을 끝내고 바로 김용균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6년 5월28일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김군(당시 19세)이 사망했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비극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국회 상황을 보면 산업안전보건법 정부안이 연내에 통과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산안법 정부안의 주요 내용은 ①산업재해 사망에 대한 처벌 하한선(징역 1년 이상) ②산재 사망 사고를 낸 기업에게 징벌적 손해배상 ③유해 위험 및 생명안전업무 도급 금지 등이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가 심각한 위험을 감지했을 때 ‘작업 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유해한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기업이 당국에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 등도 있다. 

이장우 한국당 의원은 21일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소위) 회의에서 “정부안을 많이 검토했는데 굉장한 과잉 입법이고 개념이 아주 모호하다. 국가 경쟁력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강행 등으로 고용 시장이 완전히 엉망이고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고 이렇게 하다가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정부안을 도저히 심의할 수 없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장우 의원은 노동자의 죽음이 지속되더라도 기업의 비용 경쟁력을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한 근로환경에 투입해야 할 비용을 쓰지 않고 경쟁력을 얻는다면 그 경쟁력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러한 비용 경쟁력의 반대급부로 노동자들의 생명이 짓밟혀도 된다는 것인지 한국당의 입장이 이해되기 어려워 보인다.

이정미 대표는 “정말 정신을 한참 못 차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 십 년 동안 대기업을 보호하다가 우리 생때같은 자식들 다 보내고도 정신을 못 차렸으면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니라 이런 법도 통과 못 시키는 국회가 망하는 것”이라며 “우리 어머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런 식으로 어깃장 놓고 법안 통과 가로막는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국당을 규탄했다.

이수진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인가? 그러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야 나라 경제가 유지되는 것인가? 산업재해율이 낮아야 진짜 선진국이다. 한국당은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의 죽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 벌써 2년째 산안법이 상임위도 통과되지 못 하고 묶여있다”고 밝혔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김씨를 만나 “이런 문제를 일일이 챙기지 못한 데 대해 비대위원장으로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 우리 사회의 안전과 관련해서 생명의 고귀함을 알고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정치권이 그렇게 하지 못 한 부분이 있다. 법 전체를 개정하느냐 부분을 개정하느냐를 놓고 국회 안에서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우리 사회 안전성을 높이는 데 매진하겠다”고 말했지만 환노위 한국당 의원들의 입장은 딴판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한국당의 역할을 끌어낼 수 있을지 봐야겠지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국당은 근로자 안전 담보라는 명제에 절대적인 찬성 입장임을 다시 밝힌다”며 “민주당이 원하는 산안법은 민주노총 등 기득권 노조의 목소리만 담겨있다는 산업계의 우려가 매우 크다. 한국당은 민생과 경제가 파탄지경인데 기업 경영 환경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또한 대안을 제시했다”고 항변했다. 

결국 노동자가 죽어나가더라도 기업 경영의 위축을 우선 고려한 것인데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김씨를 만나서 “반드시 이번 27일 본회의에서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정부안은 내용이 방대한 만큼 가장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이후 다른 내용은 내년 2월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논의에 앞장서겠다”며 한국당의 소극적인 행보와는 차별화 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공언했다. 

손학규 대표는 정부안이 176개로 방대한 만큼 오늘 내일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80여개의 법안을 묶어서 일단 통과를 시키고 산안법의 전면적인 개정은 다음 임시국회에서 검토해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용균씨는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태안화력발전소(서부발전 산하)에 파견된 계약직 노동자였고 매우 위험한 작업장에서 근무했다. 사고는 예견돼 있었다.

이해찬 대표는 “금요일(21일)에 가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사업장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사업장인지 알았더라면 자식을 누가 거기에 보냈겠나. 위험할 뿐만 아니라 석탄가루가 많이 날려서 진폐까지 우려되는 열악한 사업장이라는 것을 저희가 가서 확인했다. 더군다나 안전장치나 보호 장구 같은 것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위험에 노출된 일을 하고 있던 것을 봤다”고 말했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이 닫혀 있었지만 조명도 바뀌고 문을 연 상태였더라도 굉장히 위험한 곳이었다. 떨어지는 석탄 부스러기를 퍼내야 했던 김용균씨는 고개를 숙이고 석탄을 끄집어내는 일을 하다가 외롭게 자기가 죽어가는 순간에 누구에게 알리지도 못 하고 사망을 하게 된 것이다. 안전 줄이 있다고 하는데 위험한 상황에서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전 줄조차 고개를 들이밀고 석탄을 끄집어내는 일을 할 때에는 잡아당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런 위험한 일을 외주화 할 수 있을까. 거의 죽음의 사업장처럼 느껴졌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열린 소위에까지 방문해서 소위원장인 임이자 한국당 의원에게 재차 부탁했다.

하지만 이장우 의원 등 한국당 의원들의 회의적인 관점으로 정부안에 대한 소위의 합의는 난망해 보인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이해찬 대표는 “정 안 되면 다른 비상대책을 강구해서 김용균씨의 죽음이 의미가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국민적 열망과 김씨의 국회 방문까지 있었던 마당에 연내 처리를 이뤄내야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는지 여야는 소위의 만장일치 합의 방식이 아닌 3당(민주당·한국당·바른미래당) 간사 논의 체제로 전환해서 결론을 내기로 했다. 이장우 의원도 간사들의 대타협이 있으면 여기에 따르기로 입장을 밝혔다.

임이자 의원을 만난 김씨.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김씨와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태의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이정미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반대하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저희가 회의장에 직접 들어가서 발언할 기회를 주면 고맙겠지만 안 주더라도 지켜보겠다. 논의가 어떻게 되는지 심의가 어떻게 되는지 법안 처리가 누구 때문에 왜 안 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약자의 비극과 민심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권의 상황이 답답할 뿐인데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뉴스공장>에서 “국가 부도의 날이라는 영화 제목도 있지만 정치 부도의 해로 본다. 왜 통과시킬 민생 법안들을 안 통과시키는가. 그리고 국민들의 촛불민심에 국민 주권 돌려주겠다고 해 놓고는 공항 갑질(김정호 민주당 의원)이 웬말인가. 국회의원이 권력인가. 특권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해야 되는데 그런 갑질의 형태 이것이 과연 2018년에 일어나야 될 일인가”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장윤선 사회자는 “정치 부도의 날이 아니라 국회 부도의 날? 왜냐하면 좀 답답하다. 국회가 좀 역할을 제대로 해주면 되는데 거기가 마치 개혁의 마지막 종착역 같은 느낌이 든다. 거기서 개혁 입법들이 통과가 안 돼서 국민들이 답답해 한다”고 호응했다.

답답한 국회가 연말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입법에 완료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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