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 완화를 요구, 2차 북미 정상회담 용의있음 환기,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전략 자산 비판, 북한의 자체적인 경제 건설 천명, 조건없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천명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시 한 번 미국의 제재 완화를 촉구했고 이를 위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언제든지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1일 아침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신년사를 발표하고 “이미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을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왔다”며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해 상응하는 실천 행동으로 화답에 나선다면 두 나라 관계는 보다 더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훌륭하고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집무실에서 안자 신년사를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 화답은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완화하거나 해제하는 것이고 만약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6.12 싱가폴 공동성명)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고 일방적으로 그 모습을 강요하려 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며 조건부 메시지를 던졌다. 

북미 정상은 싱가폴 공동성명 1항을 통해 “양국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북미 관계에 대해 “불미스러운 과거사를 계속 고집하고 떠안고 갈 의사가 없고 하루 빨리 과거를 매듭짓고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시대 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갈 용의가 있다”며 “언제든 또 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돼 있고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정부에게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고 외부로부터의 전략 자산(핵추진 항공모함·핵 잠수함·전략폭격기)을 비롯한 전쟁 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라며 한미 군사적 공조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다자 협상 적극 추진 △협력교류 전면 확대 등을 도모하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후자의 측면에서 특히 김 위원장은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 전문을 실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국 북미와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의 목적은 김 위원장이 ‘체제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으려는 것’과 직결돼 있고 이를 위해서는 더 이상 후진국형 경제를 유지하면서 군사력만 강화하고 또 공포 정치를 꾀했던 선대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김 위원장은 “주체의 인민권이나 인민 철학을 당과 국가 활동에 철저히 구현해 광범한 곤죽을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 당과 정권기관이나 근로작전기관은 무슨 일을 작전하고 전개하든 인민의 이익을 최우선 절대시하고 인민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인민이 바라고 덕을 볼 수 있는 일이라면 천사만사를 제쳐놓고 달라붙어 무조건 해내야 한다”고 발언했다. 

즉 이런 거다. 

남북 관계 개선 →남북 교류협력 활성화 →북미 관계 개선 →부분적 제재 완화 →핵 리스트 신고 및 비핵화 절차 돌입 →종전 선언 →평화체제 →북미 관계 정상화 →보통 국가화와 경제 건설 등 일련의 프로세스가 진행돼야 김 위원장이 체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개방과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 민주화 요구가 있을 수 있지만 중국·베트남·싱가폴의 자본주의형 개발 독재 모델도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목표는 이런 방향임에 틀림없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위원장이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왼쪽),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오른쪽)과 함께 노동당 청사에 마련된 신년사 발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진영은 북한이 선 비핵화에 돌입해야 경제 지원이나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프로토콜을 뒤바꿔서 먼저 관계를 개선해야만 비핵화나 제재 완화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기존의 북미 협상과는 다른 차이점이다. 협상 과정에서 좌초되지 않도록 정상간 탑다운으로 접근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런 접근법이 성공하려면 미국의 부분적 제재 완화와 북한의 단계적 핵 리스트 제출이 동시 타결되는 등 뭔가 빅딜이 있어야만 한다. 이게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남북미 비핵화 협상은 2018년 상반기와 달리 후반기에 지지부진했다. 

김 위원장은 지지부진한 상태를 타파하기 위해 한미에 뭔가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자력 갱생의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며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제일가는 중대사”라고 자체적인 경제 분야 건설을 천명했다. 

그 분야들은 △산림 복구 △군수공업 △문화예술 △도시 경영 △도로관리사업 △건축 설계 △관광 △경공업 △수산 부문 △축산업 △철도 교통 △기계제작공업 △농업 △금속공업 △화학공업 △제철 제강 공업 △석탄공업 △전력공업 △과학개혁사업 등이다.

김 위원장은 “인민 경제 모든 분야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수행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며 “우리는 올해에도 조국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거창한 대건설 사업들을 통 크게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역에서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 정치권의 반응은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경우 충분히 호의적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보수 야당을 살펴보면 될 것 같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보도자료를 배포해 “현재 핵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는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핵 보유국 지위에서 미국의 제재 해제와 같은 선제적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심지어 협박성 엄포까지 내놓았다. 대한민국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며 “핵 리스트 제출과 국제기구의 검증 및 사찰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북한 비핵화의 의미있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했는데 이는 수용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의 이러한 요구에 응해선 안 된다. 어김없이 (김 위원장이) 우리민족 끼리를 강조하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는데 정부는 한미 갈등을 겨냥한 북한의 이간책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부가 북한 제일주의 인식을 고집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 공조의 틀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반면 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용의를 시사한 것과 조건없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언급한 것에서도 평화 정착에 대한 김 위원장의 긍정적인 입장을 엿볼 수 있다”며 좋은 평가를 내렸다.

물론 “대북 제재가 해제되어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가 선결 과제라는 것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전제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북한의 국내 경제 개발 의지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경제 발전을 통한 정상국가화 노력이 꾸준히 지속돼야 할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2018년이 한반도 평화의 전기를 마련한 한 해였다면 2019년 새해는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진 해로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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