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의 하루] 늙기도 설워라커든 칼바람에 폐지를...
[독거노인의 하루] 늙기도 설워라커든 칼바람에 폐지를...
  • 신현지 기자
  • 승인 2019.01.02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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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대림동 골목을 가다…“애들은 하지 말라는데 그냥 무료해서”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하루에 5천원 벌기 힘들어, 그래도 방에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나아. 사람도 만나고...”
새해 첫날인 1월 1일. 대림동의 한 골목에 서울 영하 8도의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왜소한 체격의 두 노인이 수레 가득 폐휴지를 세워둔 채 지친 숨을 달래고 있었다.

그 중 지팡이로 의지하는 유모차에 몇 개의 폐지를 올려 담은 노인이 수레 가득 폐지를 실은 노인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고 집이는 오늘도 많이 혔네, 어디서 이렇게 많이 혔어?”
그러나 맞은 편 노인은 수레 가득 실린 부피가 크게 보일 뿐 정작 5천원도 안 된다는 답이었다.

“남이 다 주워가고 동네 아는 식당에서 모아준 것인데 이렇게 한 짐 실어가도 5천원이 될까 말까 혀”

이렇게 말하는 정(78세)노인은 매일 새벽이면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선다고 했다. 집 나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지체했다 싶으면 역시나 폐지 한 장 줍기 힘들어 그런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그런데 돈이 궁해서 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답이었다.

“우리 애들은 절대 못하게 하지. 아프면 약값이 더 든다고 가만히 계시라고. 그런데 어디 그래. 사지육신 말짱한데 뭐라도 꿈지럭 거려야지. 그래서 추미삼아 나오는 거야.”

혹여.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정 노인은 묻지도 않은 말을 정신없이 주워 삼켰다. 78세에도 뭔가를 해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정 노인은 3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뜨고 현재 혼자라고 했다.

“애들 셋  다 출가하고 영감님은 3년 전에 저 세상 가시고 나 혼자야, 그러니 사람이 그립지. 그래서 처음엔 노인정에 나가고 그랬는데 재미가 없어. 다들 자식자랑에 돈 자랑에, 거기 나가서 괜히 남 자랑 들어주느라 힘 빼지 말고 단돈 100원이라도 버는 게 낫다 싶어서 나오게 된 거여.”

(자료=통계청 제공)
(자료=통계청 제공)

유모차를 의지한 권(82세)노인도 비슷한 답이었다. “그럼 우리가 이것 주워서 얼매나 되겠어. 하루 2천원 벌기도 힘들고, 우리 애들이 용돈은 다 붙여줘. 약값도 다 챙겨주고. 그러니 이걸  알면 깜짝 놀라지.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뭐하겠어. 자꾸 아픈데만 생기지. 다른 일거리가 있으면 좋은데 그런 것도 없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많아서 이것도 경쟁이 심혀, 많이 주우면 좋은데 어디 그게 쉽나.

아는 식당 같은데서 챙겨주기도 하는데 그런데는 허접쓰레기도 같이 치워줘야 좋아하지 그냥 이것만 가져올 수는 없어. 암튼 이거 하고부터는 돈 아까워서 다른 거는 못 사먹어. 500원치 주을라면 얼마나 힘든가 그 생각을 하면 암것도 못 혀.”

그러니까 노인들이 폐지를 줍는 건 생활고 때문이 아닌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해서 폐지를 줍는다는 말이었다. 물론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의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은 것이었다.   

동네 고물상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매일 오시는 노인들은 약 30명 안팎으로 상자 파지는 1㎏당 50원으로 많이 가져오시는 분들이 하루 1만원 벌어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고물상협회에 따르면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을 150만명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OECD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노인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응답자 1000명의 26.0%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생활고를 답한 노인도(43.2%)를 차지했다. 

특히 2018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시 총인구 1,012만 5천명 중 독거노인이 3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거노인 중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노인은 25.8%이며 이중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는 6만명(19.7%), 저소득 노인은 1만 9천명(6.1%)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노인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는 올  4월부터 저소득층 노인의 기초연금액이 월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조기 인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만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즉, 노화로 인해 경제권에 밀려나면서 생활고는 물론 자존감 상실 등으로 삶의 위기를 맞고 있는 노인들에게 일자리가 우선이 되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천시는 올해 노인일자리를 전년 목표 대비 5400여개 늘어난 3만2719개 창출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이에 투입될 총 사업비는 920억원으로 전년대비 203억원이 늘어나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증액됐다.  

시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일자리 참여를 통해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이 될 수 있도록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근로욕구를 반영한 신규 노인일자리를 발굴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율은 2018년 11월 기준 14.7%에 달해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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