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사무관의 기자회견, 기재부는 공무상비밀누설로 고발, 정무적 판단의 성격, 청와대와 대통령제에서 정무적 재정 정책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직접 나섰다.

신 전 사무관은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모 스터디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께서 GDP(국내총생산) 대비 채무비율을 2017년에 낮추면 안 된다고 말했고 39.4%라는 숫자를 주시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적어도 그 위로는 올라가야 한다”는 식으로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청와대 비서관의 실명까지 공개해서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같은 날 기재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5급 사무관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도의 결정이 이뤄지는 국채 발행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를 잘 모른다는 기재부의 주장에 신 전 사무관은 “수출입은행에서 간부 회의하면서는 차관보가 실무진이 같이 들어가자고 해 국장과 과장 나까지 4명이 들어갔다. 국회 내 간부회의실에서 부총리가 언급하는 것을 나도 배석하면서 들었다”고 반박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이런 거다. 

①정권교체기인 2017년에 의도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채무비율을 높게 유지하려고 했다. ②적자 국채 28조7000억원 발행 계획대로 20조원을 발행했고 나머지 8조7000억원을 남겨둔 상태에서 예상보다 세입이 14조원 더 걷힐 것이라 실무진이 반대했는데도 청와대와 기재부 윗선이 강행하려고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발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 전 부총리가 발행 강행을 고집했다가 실무진과 논의 끝에 의사를 접었고 그 결과 추가 발행을 하지 않겠다는 기재부 보도자료를 배포하려던 것을 차영환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다시 발행하라고 끝까지 압박했다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은 1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당시 기재부 차관보가 보낸 “핵심은 2017년 국가채무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카카오톡 대화 캡처를 올렸는데 이런 배경과 맞물려 있다. 

신 전 사무관이 제시한 증거 카카오톡 자료. (캡처사진=고파스)

몇 가지 따져볼 게 있는데 크게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에 대한 공무원과 선출직 정치인의 인식 차이 △합리적 국가 경제 운용을 위한 재정 정책인지 △정권의 이익을 위한 일시적 착시 효과를 노린 것인지 등 3가지다.

사실 청와대 경제 보좌진이나 경제부총리는 정무적 판단을 하는 자리이고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 경제를 합리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정무적 판단인지, 박근혜 정권에 비춰 문재인 정권의 이익을 위한 정무적 판단인지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은 후자가 아닌 전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 당장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재정 투입 계획을 고려해서 바로 국채 발행을 꾀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그저 박근혜 정권에 비해 양호한 국가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는 취지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채무비율을 줄일 수 있고 세입도 충분했는데 그러지 않고 추가 국채를 발행한 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신 전 사무관은 “국민에게 죄송하고 부끄러웠던 것이 (기재부의 급한) 바이백(이미 발행된 채권들을 사들이는 것) 취소였다. 그날 금리가 치솟았고 이 과정이 비상식적이다. 비상식적 의사결정에 기반한 행위인데 기재부에서 당연히 이유를 말하지 못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재부는 결론적으로 적자 국채 8조7000억원을 추가 발행하지 않게 됐고 만약 이를 발행했더라도 실제 채무비율은 0.4%p 밖에 오르지 않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고 차 전 비서관이 전화를 한 것은 “보도자료 취소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보고가 아직 안 올라갔으니 잠깐 기다려달라”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국정 최고 컨트롤타워로서 청와대는 국채 발행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할 권한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에서 직접 (기재부) 국과장에게 전화해서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했다. 내 기억에 12월 국채 발행 계획이 나오는 날 엠바고(보도유예 시점)가 걸린 시점으로부터 1시간 전에 자료 배포되고 과장이 기자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으로 안다. 기사를 지금 내리면 안 되는지 취소하면 안 되는지라고 한 이때가 청와대 전화를 받고 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기재부가 국채를 사들이는 기조에서 갑자기 바이백을 취소한 것에 대해 신 전 사무관은 “큰 문제다. 한 달 전에 한다고 하고 하루 전 취소하면 기업이나 어떤 누구는 고통받는다”고 밝혔다. 

자신이 이런 내용을 폭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딱히 다른 의도는 없다. 정치적 세력도 없다. 단 하나 내가 나서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고 조금 더 합리적이고 나은 곳(기재부)이 되면 좋겠다. 공익 신고자가 나로 인해 또 나왔으면 좋겠다. 고발당하고 법적 절차 밟고 사회적으로 안 좋게 되면 누가 용기를 내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경황이 없어 제대로 알아보지 못 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공익 제보 보호) 절차를 밟겠다. 법적인 보호를 받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 기자들이 한 가득 모였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부의 정당한 재정 정책 수단이라는 반론도 있다. 

골수 친문 인사로 알려진 박시영 윈지코리아 부대표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제에서 청와대는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 청와대는 정책적 판단을 하면 안 되는 곳인가? 부처가 결정내리면 그냥 따라야만 하는 곳인가? 확장적 재정 정책 시도는 다 잘못된 것인가? 김태우 사건보다 더 치졸하고 수준 이하다. 그가 어떤 의도로 폭로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언론학 전문가인 김동환씨도 페이스북에 “국회에 허락받은 금액 범위를 넘지만 않으면 그 안에서는 적자 국채를 발행하든 어쩌든 대통령 마음이다. 대통령은 여러 관련 부처에서 정보를 취합해 통치자로서 나름의 판단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토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협의 내용을 받아들일지 말지 역시 대통령의 마음”이라며 “의사결정의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 속에서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면 공무원은 까라고 했을 때 까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것도 독자적 판단을 못 하고 일일이 부처 사무관 쫓아다니면서 설득해야 할 것 같으면 도대체 대통령제를 뭐하러 하는가”라며 무엇보다 정무적 결정에 대해 “나는 박근혜 정부보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한 문재인 정부의 판단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겪은 뒤숭숭한 해에 새로 대통령을 맡은 사람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신호가 있어야 나라가 안정될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즉 “그 무형 효과에 비해 적자 국채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은 약소한 마케팅 비용 정도일 것이다. 한낱 사무관에게는 큰 돈으로 보이겠지”라는 설명이다. 

이와는 별개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의 모든 공익제보자들을 위해서 기재부가 형사고발 만큼은 철회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며 “지금 이렇게 신 전 사무관을 궁지로 몰아넣으면 스스로 직권남용죄 피해자임을 자처해서 관계자를 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청와대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토록 지시한 것도 외형만 따져보면 그들 나름대로 정무적 판단에 의해 문화 거버넌스의 자치를 해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분노했던 것이다. 물론 정무적 판단의 개입 자체가 직권남용죄로 되는 것은 바람직한 법의 발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법률가로서 감시하겠지만 이런 난장판을 촉발하는 오버액션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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