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다시 한 번 연동형의 당위 강조,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방향과 소신 뚜렷, 이미 두 번이나 돌파구 마련, 또 지지부진해진 상황에서 문 의장의 역할 중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다. 

문 의장은 3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치 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대원칙은 국민이 원하는 투표율 비례로 의원수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우면 최소한 그것에 가깝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스타일의 정치 개혁보다 최우선시되는 것이고 (그동안 해왔던 그 어떤 것보다) 제일 가는 효과를 볼 것이다. 만약 이것만 되면 정치 상황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문희상 의장은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에 대해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도 원칙적으로 비례성 강화라는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다만 정당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해왔던 기득권을 최대한 덜 내려놓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서 어물쩡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거대 양당의 기대 의석수 감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의 정치적 효과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15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을 풀면서 “나는 한국 정치의 악마가 민주당도 한국당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의 악마는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드는 지긋지긋한 대결 정치다. 연동형으로 가는 길은 그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나 모두가 사는 길이다. 정책과 의견대로 국민께 평가받고 지지받고 이것을 토대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생산적인 정치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는 말 그대로 1등 외에는 전부 탈락하기 때문에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적대적 양당 정치체제로 귀결된다. 여기서는 제1야당이 정부여당을 무조건 반대하고 망하길 바라는 저주 정치가 횡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여당은 무조건 정부를 엄호하기 바쁘다. 진영논리와 내로남불이 구조적으로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그동안 이러한 폐해를 수도 없이 지적했고 ‘합의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독일식 온건 다당제’를 말하기도 했다.

문 의장은 이런 가치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이미 진정성을 두 번이나 행동으로 보여준 바 있다. 

먼저 민감한 의원 정수 증원론을 수면 위로 올린 일이다. 문 의장은 2018년 9월3일 보도된 <the 300>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국회의원의 월급을 줄여 그 재원으로 의원수를 늘리면 국민들도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할 것이다. 촛불혁명의 완성은 개헌이고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의 핵심이다. 총선 때 득표수에 비례해 의원수를 정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칙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10% 대략 30명을 늘려야 한다. 의원을 늘리는데 국민들의 반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300명이 쓰는 예산을 330명이 쓰도록 하면 된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결국 연동형 도입의 관건은 정수 증원인데 민주당 출신 의장이 먼저 정수 증원론을 꺼냈기 때문에 양당의 국민 반감 ‘핑계’에 경종을 울렸다. 사실 양당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 결정을 종종 하곤 하는데 연동형을 도입하기 꺼려하기 때문에 정수 증원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에 기대어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정수 증원론을 일찌감치 꺼낸 문 의장. (사진=박효영 기자)
정수 증원론을 일찌감치 꺼낸 문 의장. (사진=박효영 기자)

두 번째는 손 대표와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고 있던 2018년 연말 정국 때였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당시 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은 양당만의 예산안 본회의 처리를 두고 “적폐 연대”라며 강하게 투쟁 중이었다. 3당은 49석으로 예산안 처리에 실력 행사를 해서라도 절박한 심정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관철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산 편성 철학이 극과 극인 양당은 3당을 배제하고 처리해버렸다.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은 해야겠는데 실력 행사의 수단은 마땅치 않으니 두 대표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감행한 것이다. 5당 지도부가 연동형 도입을 반드시 하겠다는 큰 틀의 문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요구조건이었다.

하지만 양당은 몇몇 지도부 인사만 단식 현장을 방문했을 뿐 계속 눈치만 봤고 단식 정국은 장기화됐다. 

문 의장은 12월14일 급하게 문재인 대통령과 회동을 요청해서 만났고 다시 한 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했다. 이런 메시지는 민주당에 전달됐고 한국당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로 작용했다. 이런 과정에서 민주당의 ‘개헌 바로 논의(6항)’라는 양보 조항이 도출됐고 한국당이 협상을 거부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게 5당 합의문이 나왔다.

연내에 큰 틀의 합의문이 나온 것도 성과였지만 2항에 최초로 정수 증원론을 공식화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 합의문이 나오기까지 문 의장의 적극적인 행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문 의장은 선거제도 개혁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다.

문 의장은 “내가 알라딘 요술램프나 도깨비 방망이로 뚝딱뚝딱 해버리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며 “정개특위가 열려 있고 아슬아슬하게 시한 만료가 가까웠는데 그게 연장됐고 앞으로 거기서 논의될텐데 정개특위를 지원하고 그들을 힘을 내게 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의장으로서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개특위는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기본 안이 1안, 2안, 3안으로 요약돼 있고 그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의장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고 기본 원칙은 투표에 따라 국민의 민의에 따라 의석수가 정해지는 대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런 제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올 한 해 여야 첨예하게 엇갈리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 중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 의장은 올 한 해 여야 첨예하게 엇갈리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 중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개특위 1소위 3당 간사단은 지난달 3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그동안 논의된 3가지 선거제도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A안은 정수를 유지한 채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남은 지역구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르는 것이고, B안은 정수를 유지한 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되 절반은 연동하고 절반은 연동하지 않는 형태로 나머지 지역구 선거는 도농복합 선거구제로 치르는 것이고, C안은 정수를 330석으로 증원하되 220(지역구) 대 110(비례대표)으로 비율을 맞추고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지역구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르는 것이다. 
 
3당은 C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문 의장의 말처럼 셋 중에 하나가 채택될 것인데 양당이 머뭇거릴 때마다 문 의장이 다시 한 번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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