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나의 맛있는 시 감상(211) // 노는 물 / 권애숙
최한나의 맛있는 시 감상(211) // 노는 물 / 권애숙
  • 최한나 기자
  • 승인 2019.01.07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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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한나 기자
(사진 = 최한나 기자)

 

노는 물

권애숙

 

한때 소나기 다녀가셨나

패인 구덩이에서 고물거리는 소문들

간밤은 요란하게 문제만 쏟아놓고

뒤집힌 천변은 답도 없이 어둑하게 말뚝을 친다

흘러갈 것은 늘 뒤도 없이 흘러가는데

휩쓸리지 못한 이름만 남아 웅덩이란 몸으로 웅성거린다

파닥거리며 넘어가는 것은 숨이 아니다

모여라 다 모여

비린 바닥들이 맞장구를 쳐댄다

어떤 이는 젖지 않은 그림자로 빠져나간다

무릎을 꺾기엔 수위가 너무 낮아 기웃거리다 마는 바람

옮겨 갈 것도 없이 한나절 햇살로도 본색이 드러날

소문은 그렇게 또, 페이지를 넘긴다

 

-권애숙 시집 『흔적 극장』(2018. 포엠포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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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지 못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이라는 운명공동체 생활로부터 인생이 출발하며 학교, 사회생활 등을 거치면서도 누군가와 무리지어 호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친구라는 말, 이 두 글자는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 소중한 단어인가! 우리는 모두 동지, 혹은 친구를 원하며 필요하다. 또한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다. 유유상종,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무리들 속에 있는가? 몇몇 친구들끼리 단체로 수다를 떠는 수다방이 있고 동인모임 동문모임, 혹은 형제자매 교류 톡방이 있고 나만의 인터넷 계정도 있고... 이렇게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사람을 매장시키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세상이다. 빛의 속도로 소통 가능한 소중한 사람들인데 왜 늘 이렇게 결핍과 갈증이 내재해있는지 잠시 스스로 놀라며 잘 하고 사는지 돌아본다.

나 새댁 시절만 해도 동네 골목에 나가 또래 애기 엄마들끼리 음식을 나눠 먹으며수다 떠는 것이 유대였고 유선 전화와 편지로 친구들과 소식 주고받는 소통의 수단이었다. 불과 몇 십 년이 흐른 것도 아닌 이 시대는 어떤가? 전파의 지배 속에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그 격랑을 타고 헤쳐 나가며 생존하기위해 저마다 인터넷 세상에 작은 집 하나씩 지어놓고 산다. 나 역시 오늘도 SNS를 습관처럼 기웃거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잠시 들러본 꺼리들 중 동시 한 편과 가을이 오는 길목 내가 가보지 못한 어느 산골의 풍경과 파랗게 높아진 하늘과 희귀한 야생화를 감상하며 기분 좋게 출근을 했다.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세상 내가 가보지 못하고 접하지 못한 세계를 볼 수 있고 호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복인지 뿌듯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모든 문명의 이기가 그 이면의 마각 같은 추한 모습이 있다는 것,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아서 고통 받는 몫 또한 감내해야한다는 것. 누군가의 인생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혼란 혼돈에 빠지게도 하는 야누스의 또 다른 얼굴은 결국 인간이 자초한 모습이기도 하다.

웅덩이 혹은 파문, 그 얄팍한 흙탕물에 발목 빠져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고 뿌리 없이 생성된 검은 허방인지를... 인간이 당하는 부상은 다 아픈 후유증을 남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舌火다. 오늘도 손가락으로 대신하는 혀의 칼날들이다. 폭우가 지나간 후 자잘하게 만들어지는 웅덩이들은 햇빛에 타들어가거나 땅에 스미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이 그 생명력이 참 대단한 것 같다. 기껏해야 햇빛의 먹이일 뿐이지만 그 웅덩이는 지나가는 죄 없는 아이들 혹은 방심한 어른들의 발목들을 노린다. 오늘날 네티즌들의 노는 물이 되어버린 SNS 등의 부작용과 유사하다. 끝내는 인간의 목숨을 죄지우지 하기도 하는 것임을 우리는 오늘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인간은 원래 혼자서 살기는 어려운 존재다. 누군가와 뭔가를 공유하고 싶고 내말에 누군가가 귀기울여주고 동조해주는 그 맛에 삶의 동력을 얻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나 역시 한 때 몹쓸 웅덩이에 발목 빠져서 허우적댄 그런 경험을 한 적 있다. 억울함은 더욱 더 나를 갉아먹는 야차가 되어 칼날 위의 무수한 밤들을 디디며 심리치료까지 받았던 경험이 있다. 아직도 그 야차 같은 후유증은 시시때때로 찌르며 검은 옷자락 펄럭이며 찾아오는 시퍼런 고통이다. 크고 작은 웅덩이들은 만만한 복숭아뼈 하나 노리며 짐짓 하늘을 담은 거울인양 고요하다가 발목 하나 잡으면 그 마각으로 분탕질을 하고 마는 것이다. 끝내 회복 불가능한 얼룩으로 남기도 하는...

도도히 푸른 몸으로 흘러가는 강은 말이 없다. 그저 바다로 바다로 모든 이야기 싣고 흘러갈 뿐이다. 소나기 지나간 자리에 잔챙이 웅덩이들이 생긴다. 웅덩이는 잠잠한 듯하지만 왱왱거리다 마는 날파리들의 놀이터일 뿐이다. 그러나 잠시 다가가 들여다보면 나의 모습이 살짝 얼비친다는 것, 냉정하고 예리한 눈으로 들여다 볼 일이다.

노는 물!

우리는 어떤 물에서 놀고 있는가? 놀다 오면 찜찜하고 비린 갈증만 더 하는 그런 물은 아닌가? 그 물의 색깔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화자의 역할 또한 인간이다. 내 힘으로 정화할 수 없는 물도 있다. 그런 물은 늘 달콤하거나 중독성이 강한 법이다. 그러므로 고립감과 소외감을 해소하고픈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일은 지혜로운 분별력일 것이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했다. 까마귀는 누구이며 백로는 누구인가? 오늘도 잠시 머릿속이 어지럽지만 내가 먼저 좋은 물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 또한 좋은 물을 만나리라는 희망이 나를 살게 한다. 간밤에 쏟아진 소나기에 골목에 생겨난 웅덩이 몇 개가 짐짓 거울인양 파란 하늘을 반사한다.

쉿! 발목 조심! 아차! 손가락 조심!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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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애숙 시인 /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 및 1995년 <현대시> 등단

시집 차가운 등뼈 하나로 카툰세상 맞장 뜨는 오후 흔적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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