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보는 북미 비핵화 협상의 로드맵, 작은 조치들과 미국의 상응조치 이후 핵 리스트 신고, 북한에 이례적으로 과감성 요구,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소신, 친서 내용 공개 이유와 답신보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주역이 됐다. 힘의 논리를 이겨내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주도했다. 우리가 노력하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경험하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집권 이후 가장 잘 풀렸던 대북 문제만큼은 어느 분야보다 대통령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으로 “머지않은 시기에 개최될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평화를 확고히 다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고 평화가 완전히 제도화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선진국형 경제 구조로 접어든 만큼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남북 경제협력은 곧 “평화가 곧 경제”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며 “북한의 조건없고 대가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한다.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의 사이에 풀어야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무박 2일간 김 위원장이 4차 방중을 한 것에 대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궁금했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까워졌다는 걸 보여주는 징후”라며 “아마도 이쯤 되면 정말 머지 않아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고위급 협상의 소식을 듣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미는 상호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핵 리스트 신고이고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종전 선언과 제재 완화다. 하지만 2018년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작은 신뢰쌓기 차원으로 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 갱도 폭파를 시연했고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 미국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유예했고 △남북 철도 공동조사와 착공식을 위한 최소 물자 교류가 가능하도록 제재의 예외를 용인했다. 

하지만 작은 거래들로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 핵 리스트 신고와 제재 완화 둘 중 하나라도 부분적으로 빅딜되는 조치가 필수적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해법으로 미국 사찰단이 직접 <풍계리 →동창리 →영변 →강선> 등 주요 핵 시설을 검증해서 폐기한 뒤 부분적 제재 완화를 해주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큰 신뢰를 쌓고 결국 단계적 핵 리스트 신고와 순차적 제재 완화를 동시에 교환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사진=청와대)
직접 질문자를 지정하고 진행을 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양쪽(북미)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랜 세월 불신이 쌓여있어 서로 상대를 믿지 못 해 상대가 먼저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간극 때문에 1차 회담 이후 2차 회담이 지금까지 미뤄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늦어지는 동안 양쪽에서 입장 차이에 대한 접점들이 상당히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만약 2차 회담이 머지않은 시간 내 이뤄진다면 그 점에 대한 무엇인가 의견 접근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다 긍정적으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고 관측했다. 

로드맵도 제시됐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북한의 신고부터 먼저 하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신고의 검증과 진실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하다가 결국 실패하는 식의 패턴을 되풀이했다”며 이번에는 다르다고 역설했다.

추가적인 핵이나 미사일 발사 중단(선언) →핵 실험장(풍계리) 폐기 →미사일 시험장(동창리) 폐기 →미국의 상응조치를 전제하고 국제사회 참관 하에 영변 핵 시설 폐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IRBM(중거리탄도미사일)의 폐기 →생산 라인이나 다른 핵 단지들의 폐기

문 대통령은 “(로드맵을 밟아가면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이뤄지고 신뢰가 깊어지면 그때는 전반적인 신고를 통해서 전체적인 비핵화를 해나가는 프로세스들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진=청와대)
매번 질문 타이밍에 수많은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 (사진=청와대)

한편으로 문 대통령은 “결국 대북 제재의 해결은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보다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유럽 순방 중에 문 대통령이 내놓은 일관된 메시지는 국제사회가 인센티브 차원의 대북 제재 완화를 해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북한의 과감성을 거론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5일 방송된 노무현재단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북한도 풍계리 빼놓고는 행동으로 보인 게 없다. 풍계리 핵 실험장이 3분의 2 이상 파괴됐다고 하는데 이것도 검증해야 한다. 북한이 구체적 행동을 보이면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말 대 말 협상 양상이지만 행동 대 행동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미국의 양보를 주로 요구해왔던 기조였지만 지금 타이밍상 미국 내 야당과 언론의 감시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도 있으니 북한이 좀 더 과감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문 대통령은 북한이 과감해지는 것과 동시에 “북의 비핵화를 촉진하고 독려하기 위한 상응조치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며 “아마 그 점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서는 “싱가폴 회담에서 합의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그동안 북미 간에 서로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차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2차 북미 회담을 통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다자 협상으로 평화체제 전환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문 대통령은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와 연계됐기 때문에 비핵화 끝 단계에 이르게 되면 그 전쟁에 관여했던 나라들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후 평화를 담보하는 일을 위해서도 다자 체제가 필요하다”고 공감했다.

그 전 단계로 “일단 그런 식의 길로 나아가자는 정치적 선언으로서 종전 선언을 설정했던 것”이라며 “서로 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자는 정치적 선언이 이어지면 북한도 비핵화를 속도감 있게 하고 평화협정도 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기는 조정됐지만 프로세스는 살아 있다”고 밝혔다.

그런 구체적 의제가 명확해진 상황인데 “1차 북미 정상회담은 좀 추상적인 합의에 머물렀기 때문에 2차에서는 그에 대한 반성에 입각해서 북미 간의 구체적 조치에 대해 분명한 합의들을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재 완화와 핵 리스트 신고라는 알맹이 교환 이전에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순서의 대전환과 탑다운 협상이 과거 북미 접촉과는 다른 점인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은 알맹이 교환을 담보해주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사진=청와대)
모두발언 연설문을 발표하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이런 걱정도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비핵화에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종전 선언 이후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불안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일단 김 위원장은 나에게나 트럼프 대통령에게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직접 만난 각국의 정상 지도자들에게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며 “김 위원장은 비핵화 문제가 특히 종전 선언 문제와 주한미군의 어떤 지위 같은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한미군은 비핵화의 프로세스에 따라서 연동돼 있는 문제가 아니라 주권 국가로서 한국과 미국 간 동맹에 의해서 미군이 한국에 와서 있는 것”이라며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난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는 전적으로 한미 양국의 결정에 달려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김 위원장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청와대 출입하는 외신 기자들도 손을 들었다. (사진=청와대)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10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반드시 (서울) 답방할 것”이라면서 “최소 신년사에서 발표한대로 트럼프 대통령의 성의를 바라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좀 풀어라. 그렇게 하는데 그걸 문 대통령과 협의를 할 것이고 문 대통령은 그렇다고 하면 지금 변죽만 울리지 말고 영변의 핵 시설 생산하는 곳을 전문가 초청해서 폐기한다는 것을 약속해라.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좋은 선물을 내놔라. 아마 완충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성격이 비슷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서 왁자지껄하는 것보다는 문 대통령이 차분한 조정을 해서 가면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손흥민 선수가 아니라 어시스트하는 게 아니라 황의조 선수처럼 골을 한 방 딱 넣는 것이고 그렇게 돼야 또 김 위원장도 결국 경제 협력 문제는 문 대통령과 협의한다”고 분석했다.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는 서울 답방을 오려면 선물을 줘야 하기 때문에 북미 관계가 풀려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고 문 대통령도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연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이뤄지고 나면 그 이후에 김 위원장의 답방은 좀 더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우리와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사상 최초로 최고 지도자가 남쪽 서울을 답방하는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고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그 고심도 좀 헤아려 가야 하고 그래서 북한 답방에 대해서 재촉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손에 꼽히는 대북 외교통인데 누가 맞을지 주목된다. 

한편, 문 대통령은 최근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 내용의 일부를 공개한 것에 대해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임에도) 새해에 자주 만나길 바라는 여러 내용이 담겨 있어서 국민에게 그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답방 무산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친서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고 필요한 부분 일부를 공개하겠다고 (북한에) 미리 알려주고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도 성의를 다해서 친서를 보냈다. 그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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