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포용국가로 기존 3대 기조 설명, 기존의 수출주도 성장 전략을 벗어나야 하는 배경, 혁신성장 정책의 포부, 복지정책과 사회안전망, 노동진보계와 산업보수계 사이에서, 규제 철학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내 부족했던 점을 자성했다.

“무엇보다 고용지표가 양적인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전통 주력 제조업의 부진도 계속되고 있다. 분배의 개선도 체감되고 있지 않다. 자동화와 무인화, 온라인 소비 등 달라진 산업 구조와 소비 행태가 가져온 일자리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도 낮아졌다. 정부는 이러한 경제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무엇보다 “경제 정책의 변화는 분명 두려운 일이다.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더라도 궤도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직접 질문자를 선정하고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 문재인 대통령이 지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8년 6.13 지방선거를 분기점으로 80% 대의 국정 지지율을 보이다가 40% 대까지 급락했던 요인도 결국 경제였다. 체감 경기가 어려웠다.    

김주영 리얼미터 이사는 10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50% 대로 국정 지지율이 상승한 요인은) 최근 몇 주간 진행된 문 대통령의 민생 경제 행보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경제에 소홀하다. 경제에 무능하다는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조금 약화되면서 상승 요인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의 민생경제 행보가 바빠질 수밖에 없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불안해지지만 문 대통령은 기존의 3대 경제기조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혁신적 포용국가”와 “사람중심 경제”로 다시 지칭한 뒤 힘을 실어줬다. 

그 길이 옳다고 보는 배경이 있다.

“국가 경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삶이 고단한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 우리가 함께 이룬 경제 성장의 혜택이 소수의 상위 계층과 대기업에 집중됐고 모든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기간에 걸쳐 GDP(국내총생산) 대비 기업 소득의 비중은 경제성장률보다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가계 소득의 비중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이미 오래 전에 낙수효과는 끝났다. 수출의 증가가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어느덧 우리는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 1대 99 사회 또는 승자독식 경제라고 불리는 경제적 불평등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다. 그리고 세계는 드디어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장의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한국적 불황은 최근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보여주듯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형성됐다. 

문 대통령은 “사회안전망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맞은 경제 위기는 공동체의 불안으로 덮쳐왔다. 고용 불안과 양극화가 커져가는 것을 막지 못 했다. 지난 20년 동안 매 정부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충분히 경험한 일”이라고 묘사했다. 

유머와 함께 가벼운 분위기가 있었던 신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제공)
유머와 함께 가벼운 분위기가 있었던 신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래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IMF(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와 주요 국가들은 포용적 성장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정하게 경쟁하는 공정경제를 기반으로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성장을 지속시키면서 함께 잘 사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야말로 사람중심 경제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수출과 내수의 두 바퀴 성장을 위해서는 성장의 혜택을 함께 나누는 포용적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반적인 가계 실질소득을 늘리고 의료, 보육, 통신 등의 필수 생계비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주장이다. 

체감 경기는 어려웠지만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피부로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면 결국 문재인 정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완급 조절을 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보완하면서 반드시 혁신적 포용국가를 이뤄내겠다. 국민 여러분 올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려면 성과를 보여야 한다”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이 국민과 함께 성장하고 지역이 특성에 맞게 성장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혁신성장의 포부와 관련 “기존 산업을 부흥시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신산업을 육성할 것”이라며 “추격형 경제(Fast follower)를 선도형 경제(First mover)로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새로운 시장을 이끄는 경제는 바로 혁신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기자들이 타운홀 방식으로 둘러앉아 문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설명한 정책적 조치들은 아래와 같다. 

△전략 분야 선정 △창업 생태계 조성 △전통 제조업(자동차·조선·석유화학) 혁신을 위한 스마트 공장과 스마트 산업단지 대폭 확대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시행 △어려운 지역 14개의 활력 프로젝트 추진 △공공 인프라 사업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세워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및 조기 착공 △생활밀착형 사회간접자본(도서관·체육관) △전국 170여곳의 구도심 지역에 도시재생 뉴딜사업 추진 △농촌의 스마트팜 △어촌의 뉴딜 사업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회안전망과 복지 정책에 대해 문 대통령은 6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①고용 및 사회안전망(근로장려금 확대·한국형 실업부조·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기초연금과 장애인연금 인상·건강보험보장성 강화·요양시설 증설·노인 방문건강관리 서비스 시행)
②아이들에 대한 투자(아동수당 대상 확대·국공립 유치원과 어린이집 확충·사립 유치원의 투명성 강화·온종일 돌봄 서비스 확대)
③안전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자수 절반 감소·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시행·일상과 밀접한 사고들에 경각심)
④혁신적인 인재 양성(혁신 분야 석박사급 인재·과학기술 ICT 인재 양성·인공지능 전문학과 신설·이노베이션 아카데미로 인재 양성·신기술 분야 직업훈련 비중 확대)
⑤소상공인, 자영업, 농어업은 국민 경제의 근간(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어려움 시정·공익형 직불제 개편 추진·스마트 농정 시행·수산직불금 인상·도서민의 여객선 차량 운임 지원 확대·생활필수품 운송비 국비 지원)
⑥문화적 자부심 누리도록(대중문화예술 창작자가 대우받는 환경 조성·문화 분야 생활 SOC  조성·저소득층 통합문화이용권 지원금 인상·장애인체육시설 30개소 건립·저소득층 장애인 스포츠 강좌 이용권 지급)

2019년도 국가 예산 470조5000억원인데 이는 국회에서 심의 의결을 거치기 전 정부가 그대로 편성한 원안이다. (자료=기획재정부)
2019년도 국가 예산 470조5000억원인데 이는 국회에서 심의 의결을 거치기 전 정부가 그대로 편성한 원안이다. (자료=기획재정부)

모두발언을 담은 연설문 속 기나긴 경제 이야기를 마치고 문 대통령은 첫 질문으로 취업자 수 증가폭의 둔화로 나타나는 고용지표 악화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참으로 우리로서는 아픈 대목이다. 우선 고용이 나쁘니 정부가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여러 긍정적인 요소들(고용보험 가입자 증가·가계소득 소폭 상승·청년 고용률 상승)을 후술했지만 이내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기대만큼 늘지 못 했기 때문에 국민이 체감하는 고용은 여전히 어렵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돌파구는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과 함께 “제조업을 다시 혁신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부분”이다. 즉 “제조업의 스마트화 등 혁신을 통해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또 벤처 창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도 마련해 나가기 위해서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고 공언했다. 

서울 중심주의적인 한국적 상황에 따라 공공 인프라 사업은 결국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면 수요가 상당한 수도권에만 허용되기 마련인데 문 대통령은 “지역은 인구가 적어서 예타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걸 해소하기 위한 방식이 예타 면제인데 무분별하게 될 수는 없다. 엄격한 선정 기준을 세워서 광역별로 1건 정도의 공공 인프라 사업들은 우선순위를 정해서 선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득주도성장의 취지와 달리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가 기업의 재량권을 늘려주는 식으로 노동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논의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우리 정부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역대 어느 정부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은 노동계가 인정해야 한다”면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은 우리 경제가 함께 살아나는 과정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즉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그 자체로선 좋지만 그것이 다른 경제 부분에 영향을 미쳐 오히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종국엔 노동자조차 일자리가 충분치 않게 되고 노동자의 고통으로 올 수 있다. 이런 노동조건의 향상을 얼마나 사회가 받아들이느냐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가 열린 마음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적혀 있는 프롬프터. (사진=연합뉴스 제공) 

보수 언론과 야당(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라면서 때리고 노동계(한국노총과 민주노총)와 정의당 및 시민사회(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는 소득주도성장을 경제민주화 조치로 뒷받침해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위아래로 샌드위치에 껴있는 문재인 정부의 처지는 어찌보면 숙명이고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은 노동계의 양보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혁신성장의 방향이 규제완화로만 이어지도록 요구하는 산업계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규제 때문에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거나 신기술을 제품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에 공감한다”면서도 “규제는 서로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규제 혁신을 통해 길이 열리고 여러 가지 편리해지는 면이 있는 반면에 그 규제를 통해서 지키려고 하는 가치는 또 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가치관 충돌이 생기고 이해집단 간 아주 격렬한 이해 상충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타협이 그래서 중요한 것인데 문 대통령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카풀”이라며 “하나 하나 이렇게 정부의 결단이 쉽지 않은 연유들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분들을 설득해야겠지만 생각이 다른 분들 간에 일종의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규제가 풀림으로써 입게 되는 손해와 규제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 간의 피해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정부가 적극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어쨌든 집권 이후 줄곧 소득주도성장은 뜨거운 감자였고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정책적 견해 갈등이 있었다. 야당은 새로 바뀐 김수현 정책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해 비판적이고 문 대통령이 여전히 경제기조를 고집하고 있다며 맹공 중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수립되면 그에 대해선 원팀이 되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분들을 (경제 정책 담당자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토론으로 결정됐는데도 다른 개인적인 생각을 주장하는 분이라면 원팀으로서 활동하기는 어려운 것”이라며 “탕평이라든지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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