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사관은 개인이 저지른 것, 특감반의 역할, 신 전 사무관에 대해 정책 결정의 논리 설명, 적폐청산 작업으로서 권력기관 개혁, 20대 지지율 하락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 여성 차별 문제에 부끄러운 현실 인정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일정 중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도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던 이유가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의 논란 소위 “김태우 사태”는 한 달 넘게 정국을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또 하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도 최대 관심사였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김태우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전 특감반원)이 제기한 문제는 자신이 한 행위를 놓고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모든 공직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부단히 단속해야 하는 것인데 김 전 수사관이 한 감찰 행위가 직분 범위를 벗어났느냐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옆에 신임 노영민 비서실장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과 기자회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간인 사찰은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적 대상이나 이슈와 관련된 인사를 도감청, 미행하는 것인데 김 전 수사관의 경우는 윗선 지시없이 스스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개별적으로 자행했다는 취지다. 

무엇보다 김 수사관이 건설업자 지인에 대한 수사정보를 청와대 업무를 빙자해 경찰에 알아보거나 골프 접대를 받은 의혹 등 개인 비위로 민정수석실의 역 감찰을 당하고 쫓겨나자 앙심을 품고 폭로전을 하고 있다는 정황도 형성돼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경험이 있고 그런만큼 “특감반은 민간인을 사찰하는 게 임무가 아니다. 하위 공직자도 관심이 없다. 가장 출발은 대통령 그 다음에 대통령 주변 특수관계자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를 감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대통령 주변이나 특수관계자 또는 고위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 때문에 국민에게 준 상처가 얼마나 큰가”라며 “앞에 두 정부의 대통령과 그 주변이 그런 일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하라고 특감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정부에서는 과거 정부처럼 국민에게 실망을 줄만한 권력형 비리라든지 이런 것들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감반은 말하자면 소기의 목적을 잘 했다”고 자평했다.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손을 들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 말하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신 전 사무관에 대해서는 “젊은 공직자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소신을 갖고 자부심을 갖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고 또 그런 젊은 실무자들의 소신 그런 것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공직 문화 속의 소통이 강화돼야 한다”면서도 “(신 전 사무관은) 자기가 보는 좁은 세계 속의 일을 갖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책 결정은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신 전 사무관이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 결정 권한은 장관에게 있는 것이다. 결정 권한이 사무관이 소속된 국에 있는데 상부에서 강요하면 압박이지만 결정 권한이 장관에게 있는데 장관의 바른 결정을 위해 실무자가 의견을 올리는 것이라면 장관의 결정이 본인의 소신있는 판단과 달랐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무적 정책 결정을 마치 위법적인 일이 있는 것처럼 폭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세간의 일반론을 다시 풀어서 설명했는데 문 대통령은 “정책의 최종 결정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라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로 뽑은 것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구분을 신 전 사무관이 잘 이해하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문제를 너무 비장하게 너무 무거운 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며 “전체를 놓고 판단한다면 본인의 소신은 소신이고 그 다음에 소신을 또 밝히는 방법 같은 것도 얼마든지 다른 기회를 통해 밝힐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그런 주변을 걱정시키는 국민을 걱정시키는 선택(자살 시도)을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재부가 1조원에 달하는 바이백(채권 매입)을 원래 계획과 달리 하루 전에 급 취소한 것이나 본질적으로 공익적 폭로의 범위에 정책적 비합리성도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고민은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김 수사관과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여권의 대응이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수준 낮게 진행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전국에 생중계 된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촛불로 탄생한 정부로서 한시도 잊을 수 없는 소명”이라며 “정부는 출범과 함께 강력하게 권력 적폐를 청산해 나갔다”고 강조했다. 

정권 차원으로 권력기관(군대·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에 과거사청산위원회를 두고 잘못된 권력 남용을 바로잡았는데 문 대통령은 “이들 권력기관에서 과거처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지난 정부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잘못된 과거로 회귀하는 일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제도화로 마무리짓고자 한다. 정권의 선의에만 맡기지 않도록 공수처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국정원법, 검경수사권 조정 등 입법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커다란 적폐 말고도 생활 적폐를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생활 속의 적폐를 중단없이 청산해 나가겠다. 유치원 비리, 채용 비리, 갑질문화와 탈세 등 반칙과 부정을 근절하는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 국민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체감할 때까지 불공정과 타협없이 싸우겠다”고 공언했다. 

손을 들고 있는 기자들을 보고 말하고 있는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로라 비커 BBC 기자는 외신 언론인으로서 한국의 성차별 문제에 대해 질문했는데 문 대통령은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새 정부 들어 우선 고위 공직에 여성들이 더 많이 진출하게 하는 노력을 비롯해 여성들이 겪는 유리천장을 깨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부터 여러 정책적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고 무엇보다 2016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문제는 정권 차원에서 무시하고 지나가기 어려운 이슈가 됐다. 

관련해서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문 대통령은 “(20대 남녀의 젠더적) 그런 갈등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이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이다. 난민 문제라든지 소수자 문제라든지 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갈등을 겪고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그런 갈등 때문에 국정 지지도 격차가 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20대 지지율 하락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다 희망적 사회로 가고 있느냐 아니면 희망을 못 주고 있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본다.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가 되도록 보다 잘 소통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비교적 여유롭게 기자회견을 진행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비교적 여유롭게 기자회견을 진행한 문 대통령. (사진=청와대)

당장 얼마 전 단행된 청와대 2기 비서라인에 대해 문 대통령은 “노영민 비서실장 인사를 놓고 친문 더 강화했다는 언론의 평가에 대해 조금 안타깝다. 청와대는 다 대통령 비서들이라 친문 아닌 사람이 없는데 더 친문으로 바뀌었다고 하면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섭섭하지 않을까”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발탁된 배경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은 3선 의원을 거쳤고 강기정 정무수석도 마찬가지로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혀줬다. 정무적 기능을 강화했다. 정무적 기능은 여당은 물론 야당과의 대화를 활발히 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있다. 노 실장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오래 있었고 산자위원장도 했다. 산업 정책에 밝고 산업계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불출마로 담보되는 헌신과 경제 문제 집중 차원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자들의 질문 내용이 적혀 있는 프롬프터.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불어민주당은 분명 야당 시절 정연국 전 대변인(MBC)과 민경욱 전 대변인(KBS) 등 현직 언론인을 청와대로 바로 데려오는 것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김의겸 대변인(한겨레), 윤도한 국민소통수석(MBC), 여현호 국정홍보비서관(한겨레)까지 진보 매체 소속의 언론인들을 사실상 현직에서 바로 청와대로 영입했다.

문 대통령은 “비판한다면 그 비판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말씀도 드리고 싶다”며 “아주 공정한 언론인으로서 사명을 다해온 분들은 공공성을 살려온 분들”이고 “역시 공공성을 제대로 살려야 할 청와대로 와서 공공성을 지켜줄 수 있게 해준다면 나는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강변했다.

종교, 경제, 정치 등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언론인의 사명인데 청와대의 국정 수행을 홍보하거나 후배 언론인들의 비판에 맞서 방어하는 자리에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완전한 포지션 전환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의 서로 길들여진 사람들 간 한 목소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관점, 시민적 관점, 비판 언론의 관점을 끊임없이 제공받는 것이 좋겠다”고 정당화했다.

이어 “정권은 언론에 특혜를 주고 언론은 정권을 비호하는 관계에서 권언 유착을 강화하기 위해 현직 언론인을 데려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도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권언 유착 관계가 지금 정부에서는 전혀 없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홍보라인이 앞으로 치명적인 언론 보도라도 합리적이고 근거가 있다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지켜보면 될 것 같다.

공공선과 선의 차원에서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말미에 “꼭 하나 잊지 말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언론과 정부는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더 나은 대한민국,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 혁신적 포용국가 이런 목적을 향해 가는 면에서는 같다”며 “우리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한 팀이라는 생각을 늘 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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