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전직 대통령도 섰는데 피해간 검찰 포토라인, 수많은 정황과 증거들, 전면 부인으로 일관할지 대응 주목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가 의전서열 3위였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을 패싱하고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자기 변명만 늘어놓고 검찰로 바로 들어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아침 9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모든 인생을 법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 번 들렀다가 가고 싶었다.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는지에 대해)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내가 누차 이야기했듯이 그런 선입견을 갖지 말기 바란다. 검찰 출석 시간이 다가와서 부득이 가야겠다”고 밝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이 아닌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오디오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항의하는 법원 노동조합이나 민중당 등이 큰 소리로 절규했기 때문이다. 언론의 취재보다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법관 후배들의 부끄러움이 훨씬 컸다.

사실 어찌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이미 전두환·노태우·노무현·박근혜·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이 줄줄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하지만 선출직 최고 권력자가 아닌 3부 요인이 검찰에 출석하게 되는 경우는 초유의 일이고 그만큼 양 전 대법원장은 조직적 범죄 혐의자로서 책임이 막중하다. 

한동훈 3차장 검사(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사법농단 수사팀장)는 청사 15층 특별조사실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신문하게 된다. 죄목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이지만 사법농단의 총 책임자로서 피의자 신분이기 때문에 자정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추가 소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범죄 혐의는 40개 이상이다. 

특히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은 재판거래는 크게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배배상소송 지연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이 있는데 여기에 모두 양 전 대법원장이 총괄 연루됐다는 증거들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법관 블랙리스트 △비자금 조성 등 여러 혐의가 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 현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 동안 재임했고 전임 이용훈 전 대법원장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는 압박감을 받아 임기 중후반기부터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을 획책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구속기소 됐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수 차례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았다. 이들도 최윗선이지만 최종 책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이고 보고받고 지시를 내린 정황이 수두룩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2018년 6월1일 성남시 자택 주변에서 소위 ‘놀이터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까지만 해도 양 전 대법원장은 당당했다. 

이를테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로서만 이렇게 표현하는 건 부족할 정도로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재판 독립의 원칙을 정말 금과옥조로 삼는 법관으로서 42년을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남의 재판에 관여하고 간섭을 하고 꿈을 꿀 수 있겠나”라며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법원 전체를 그렇게 재판을 의심받게 한 적이 없었다. 혹시 국민 여러분께서 이번 일로 대법원 재판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다면 정말 그런 의구심을 거두어주실 것을 내가 앙망한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당시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에서 수사를 한답니까?”라며 여유를 보였지만 7개월이 흐른 지금 수많은 사법농단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졌고 사람들의 증언으로 모아진 스모킹건과 증거들 역시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은 말은 그렇게 해놓고 수 개월간 두문불출한 채로 전문 변호인단을 꾸려 법적 대응을 준비해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이 인파 속에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래서 검사들의 추궁에 양 전 대법원장이 전면 부인으로 일관할지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 변호를 맡은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여러 차례 만났던 사실 등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한 검사는 이미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에 양 전 대법원장으로서는 전면 부인으로 일관하는 데 부담이 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의 경우 수많은 증거들로 혐의가 소명됐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부인 일변도의 태도가 영장 발부의 빌미가 됐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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