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10주기에 돌아보는 강제 퇴거의 현실
용산 참사 이후 강제 퇴거의 문제를 막기 위한 법 제도들
통과되지 않고 계류
경찰과 관공서의 방치와 무책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치와 돈이 만나 인허가권을 등에 업고 약자인 입주자를 쫓아내는 강제 퇴거 문제가 심각하다. 2009년 1월20일 벌어진 용산 참사는 강제 퇴거의 상징이다. 10년이 지났다.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용산 참사 10주기 강제 퇴거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고 용산 참사의 유가족인 전재숙씨는 “여전히 국가 폭력과 쫓겨나는 철거민들의 문제에 대해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거 현장에서는 끔찍한 폭력이 묵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재숙씨는 용산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거 현장에서의 폭력이 만연하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주민·정동영·윤소하·권미혁 의원들의 공동 주최로 열린 증언대회.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폭력적인 강제 집행 영상이 상영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용산 참사는 재개발이 결정된 뒤 기존 입주자들에게 현실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거 강요를 받고 여기에 저항하다가 공권력이 투입돼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비싼 권리금을 내고 남일당 건물에 들어온 입주자들 입장에서 재개발 조합이 제시한 휴업보상비 3개월분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다시 자영업을 재개하기 어려웠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동계 강제 철거가 예고되자 철거민 시민단체 활동가 2명을 비롯 11명이 옥상에 망루를 짓고 시너와 화염병을 이용해서 철거 집행에 저항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 하의 경찰청은 이들 시민들을 테러 집단으로 간주하고 3개 중대 300여명에 달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 작전에 나섰다. 

전씨는 “10년 만에 그날의 일이 과잉 진압으로 인해 벌어졌고 이를 덮기 위해 여론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정부 사과도 받았다. 그러나 주요 책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석기 전 경찰청장에게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윤소하 원내대표는 용산 참사를 시대의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재개발로 소액의 보상금만 받고 생계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들이 옥상 점거 농성을 시작한지 불과 25시간 만에 새벽 6시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7명이 사망했다. 용사 참사는 시대의 비극”이라며 “지금도 자본 개발과 정부 공권력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소시민들의 삶을 앗아가버리는 일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도심 한 가운데 화염이 치솟고 철거민들의 다급한 외침이 담긴 뉴스 장면이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기억에 선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용산 참사에 대한 재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진상조사를 방해하고 외압을 행사해서 조사가 막혀있는 것 자체가 용산 참사가 10년 전 과거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다뤄져야 할 이유”라고 역설했다.

권 의원은 강제 집행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요건, 절차, 구제 등에 관한 규정을 세부적으로 담아서 정부가 인권 침해 방지 및 안전사고 예방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지난 18대 국회 때 제2 제3의 용산 참사를 막기 위해 강제 퇴거 금지법을 발의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 했다. 그래서 2018년 3월 강제 퇴거 제한에 관한 특별법을 다시 발의했다”며 “이 법은 강제 퇴거 현장에서 용역업체를 동원한 폭행이나 협박을 금지한다. 거주민을 거리로 내쫓는 것을 금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라는 카피를 내걸었다. 용산 참사 당시 옥상에서 터져 나온 단말마의 비명은 여기 사람이 있다였다. 사람이 먼저라면 사람이 있는 곳에서 더 이상 강제 퇴거와 철거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박주민 의원은 강제 퇴거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입법을 완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주민 의원은 강제 퇴거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입법을 완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주민 민주당 의원 역시 “폭력적 강제 집행 근절을 위한 민사집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용역업체 직원을 비롯한 노무자, 집행 보조자들이 일체의 유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유형력을 행사한 이들을 집행에서 배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박 의원은 △주거용 및 상가용 부동산 인도 집행시 대상·시기·집행권원·집행관의 인적사항을 채무자에게 미리 서면 통지 △집행관이 채무자의 인적사항을 지자체에 사전 통보해서 긴급 주거지원이나 행정적 지원 △동절기나 재난시 주거용 부동산 강제 집행 제한 등 여러 관련 법안에 대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속히 논의하고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청량리 철거지 강제 퇴거(서울 동대문구)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 관련 수협과 강제 집행(서울 동작구) △상가 세입자 강제 퇴거 사례들(파리바게트 서울 종로구/우장창창 서울 강남구/궁중족발 서울 종로구) 등 피해 당사자 및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백채현 위원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철거 현장의 참혹한 현실을 증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백채현 위원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철거 현장의 참혹한 현실을 증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백채현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위원장은 “사람이 먼저라고 했다. 사람을 먼저 죽이는 게 개발 지구의 현실이다. 더 이상 이런 참담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개발지구에 사는 사람들도 사람이다. 쪽방촌에 사는 사람도 사람이고 집창촌에 사는 사람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최소한의 인권이 지켜지는 개발지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불법적인 용역업체의 행패에는) 수많은 불법들을 묵인하고 있는 관공서와 경찰이 존재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가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사는 동안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그것이 욕심인가”라며 눈물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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