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기준, 자영업 폐업률, 전년 대비 10.2%포인트 높은 87.9%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찬바람이 불면 핫쵸코가 생각난다. 아니 찬바람 불면 붕어빵이 생각난다.새벽 겨울한파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나선 직장인들이 가장 기다려지는 건 저녁 퇴근시간.

어스름한 퇴근길에 서로 지친 어깨를 토닥이며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곳. 마음 가는 동료와 왁자한 목로주점도 좋겠지만 찬바람 불 때 생각나는 것은 역시나 달콤한 붕어빵이 있는 포장마차다. 어릴 절 추억이 곁들여져서일까. 

오늘도 1호선 경인선이 지나는 전철역 부근의 황금붕어빵 포장마차에는 퇴근길 행인들이 약속처럼 하나 둘 찾아든다. 직장인 D씨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는 퇴근길이면 일부러 이곳에 들렀다 가는게 습관처럼 되었다.

 “음마, 오늘은 겁나게 춘디 어째 그리 빈약시럽게 입었을까. 감기 들면 어쩔라고. 올 감기는 겁나게 독하다는디. 슈크림 아니고 팥붕어빵이지?”

붕어빵 장사 김 여사

포장마차 안의 붕어빵 장사 김 여사는 D 씨의 얇은 입성을 염려에 이어 그의  취향을 물을 것도 없이  팥붕어빵만을 골라 담아 건넨다. 천원에 세 개. 2천원이면 허기를 채우고도 너끈한 포만감이다.수북하게 구워낸 붕어빵틀 옆에는 김이 하얗게 오르는 어묵국물과 떡볶이 순대까지 곁들여져 있다. 붕어빵을 먹으면 누구든 어묵 국물은 서비스다.

 “오늘은 어째 아저씨가 안 보이시네요?”

뜨거운 붕어빵 꼬리를 후후 불어 입에 넣던 D 씨가 포장마차 안을 둘러보며 묻는다. 순간,  김 여사의 표정이 사뭇 어두워진다. 늘 김 여사 곁에 나란히 붙어서 붕어빵을 굽던 그가 보이지 않으니 다른 이들도 궁금한 듯 안을 휘둘러본다.  

“애고, OO아빠 허릿병이 도져서 오늘 못 나왔어, 예전에 공사판에 다닐 때 철골이 떨어져 다친 것인디 그게 나이가 드니 영 고약시럽게, 쉽게 낫지를 않아, 날이 추우니 더 안 좋은 모양이야, 이 양반이 저녁에도 잠을 못 자고 끙끙 앓아서 내가 오늘은 그냥 푹 쉬라고 혔어. 이게 얼마나 벌린다고 나 혼자 고생하면 되지.”

김 여사는 밀가루 반죽이 말라붙은 앞치마를 멋쩍게 쓸어내리며 여전히 환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니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이 어째 더 짠하다는 표정이다.

다름아닌 붕어빵장사 김 여사 부부는 이 동네 후미진 골목의  월30만원 월세살이 힘겨운 삶이라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는 60대 중반.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퇴근길 포장마차에 들른 D씨와 초등학교 동창인 큰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으니 이 동네 토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연수이기도 하고.

(사진=신현지 기자)

D 씨가 처음 김 여사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그녀가 초등학교 급식실의 보조원이었을때다. 김 여사가 동네 마트의 계산원이었을때는 D 씨가 중학교 때다. 학교  앞 분식 가게를 차렸을 때는 매일같이 김 여사가 만들어 낸 떡꼬치를 사먹었다는 것도 그는 기억한다.  어디 떡꼬치 뿐이었는가. 이 동네 아이들은 김 여사 부부의 핫도그와 호떡을 먹으며 자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이들 부부는 뭐든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은 누구도 모르지 않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그런 부지런한 김 여사 부부가 동네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걸 관심있어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D씨가 김 여사를 다시 보게 지난 겨울, 전철역 부근의 붕어빵 포자마차였다. 겨울 찬바람에 붕어빵을 찾아 들른 포장마차에서의 두 부부의 모습을 발견한 D 씨는" 울컥 올라오는 삶의 배신감 같은 것이 먼저였다"고 말한다. 

“친구 부모님이시라 예전부터 잘 알죠. 진짜 열심히 사셨는데 그럼 전보다는 나아져야 하는 데. 포장마차 안에서 딱 뵙는데 마음이 진짜 안 좋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씁쓸했어요.”

그러나 정작 김 여사는 아무렇지 않다는 웃음이다. “우리 같이 없는 사람은 밤낮 일해서 남 존일만 하고 사는 것 아닌감. 실컷 일해서 가게세 내고 집세 내고 나면 손에 남는 건 빤하잖여. 조금이라도 싼 집 찾아 이 동네 저 동네 옮겨 댕김서 살다 보니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오게 되더라고.

물론 손해 본 세월만도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다.  "빈손으로 시작한 우리가 이만큼 살아온 것도 본전이다 생각하면 맘이 편한 거지. 보기는 이래도 이 포장마차가 가게세는 안 나가니 속은 편혀. 애들 아빠만 안 아프면 걱정이 없는디  젊어서 공사판 쫒아댕김서 일한 것이 골병이 든 건지. 조금 무리를 혔다 하면 여지없이 꿈쩍을 못혀"

이렇게 연신 붕어빵 틀을 돌려 타지 않게 구워내는 능숙한 솜씨를 보이던 김 여사가  문득 늘어진 한숨을 앞세워 D 씨를 바라본다. 

"그보다 우리 애들이 걱정여, 직장만 잡으면 정말 아무 걱정이 없겠는데 둘 다 아직도 취직을 못하고 저러고 있으니. 가들 대학까지 내놓으면 우리도 허리피고 살겠거니 생각혔는디, 아직도 자들이 저러고 있으니.  이봐, 우리 애들 어디 취직자리 좀 없을까? 어디라도 좀 알아봐줘 봐 으응 제발 좀 부탁허네." 

지푸라기라도 잡듯 간절한 김 여사의 눈빛에  D씨는 그제야 주섬주섬 붕어빵을 챙겨들고 황급히 포장마차를 나온다. 아마도 당분간 D 씨의 퇴근길 붕어빵 포장마차는 조금 어렵겠다는 느낌이다.  

자영업 10곳이 문을 열면 8.8곳은 문을 닫아...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자영업 폐업률은 전년 대비 10.2%포인트 높은 87.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소매업과 음식, 숙박업 등 자영업 4대 업종은 48만3985개가 새로 생겼고 42만5203개가 간판을 내렸다. 10곳이 문을 열면 8.8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이처럼 우리사회가 갈수록 생존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영세 상인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니 이러다 골목 곳곳 붕어빵 굽는 포장마차만 느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찬바람 부는 날이면 붕어빵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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