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책에 대한 후퇴 공통 지적
경제 기조로 나눠보는 원내 5당 질서
평화당 내 개혁적인 정동영 대표의 외침
이정미 대표의 한국 경제 현실 진단
개혁 벨트에 대한 필요성
두 대표의 공동 교섭단체에 대한 의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진보 야당의 수장인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신년을 맞아 한 목소리로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를 지적했다. 

정 대표는 16일 오전 국회 주변 식당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은 최근 경제 위기론이 확산되자 친재벌 정책과 실패한 기득권 경제 논리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공공시설을 민간 투자 사업 대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도 17일 오전 국회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정부 개혁의 속도는 가파르게 후퇴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기득권 카르텔에게 역주행의 고속도로를 깔아줬다. 재벌 주도 경제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사라지고 인터넷전문은행이나 규제프리존과 같은 재벌 민원은 신속 처리됐다”고 꼬집었다.

진보 야당의 두 수장인 정동영 대표와 이정미 대표가 각각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 개혁 후퇴를 지적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5당 체제와 경제 포지션

국회를 원내 5당 체제라고 할 때 흔히 보수 야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분류될 수 있는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치경제 개혁의 측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진영이 평화당과 정의당이다. 

바른미래당 내에도 채이배 의원과 이수봉 전 인천시당위원장 등 진보적 경제관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아주 드물게 있지만 평화당 내부를 경제관으로 나눠보면 크게 두 진영이 있다. △장병완 원내대표와 유성엽 수석최고위원 등 보수파 △정 대표와 천정배 의원·박주현 수석대변인 등 진보파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경제 이슈(은산분리 완화 등)에서 당론 일치가 안 되기도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경제 기조를 맹공하는 것과 평화당의 비판 수위는 결이 다르다. 평화당의 당권은 진보파가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기조로만 따져봤을 때 원내 구도는 2.5(민주당·정의당·평화당 진보파) 대 2.5(한국당·바른미래당·평화당 보수파)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경제 기조 변화를 단계적으로 구분해보면 ①수출 대기업 주도의 성장 전략 ②대다수 국민의 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전략 ③시장의 파이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경제민주화 전략이 있는데 정 대표는 논란이 많은 ②을 강조하기 보다는 ③의 필요성을 어필했고 이 대표는 ③과 함께 ②을 정통성있게 밀고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3대 기조(혁신성장·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로 ①②③을 포괄하고 있지만 경기 불황과 함께 보수 야당 및 언론의 맹폭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자 현 시점에서는 ①과 그나마 직결될 수 있는 규제완화 차원의 혁신성장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를 두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말머리를 돌렸다”고 표현했다.

진단과 해법

정 대표는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조치는 적극적으로 취하되 경제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된다. 이제 개혁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도 없다”며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면 안 된다. 공정경제 확립과 고용과 분배 구조 대전환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시장 질서의 공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의 경제 정책 청사진은 시장 질서의 공정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재벌 중심 경제는 양극화와 저성장을 낳았다. 이제 오래된 경제 논리와 결별할 때”라며 “대기업을 대변하는 대통령 시대에서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중통령 시대로 바꾸자. 9988이라고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데 이대로 두고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역설했다. 

이를테면 “구조 개혁과 공정한 시스템을 만드는 근본적인 해법”을 찾자는 것이고 그동안 시장에서 단가 후려치기·불공정 계약·기술 탈취 등 대기업 갑질을 당해온 대다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체질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정 대표는 △중소기업의 이윤 보장 차원으로 대·중소기업 간 협력이익공유제 도입 △4차 산업혁명 분야(자율주행차·로봇·인공지능·의료·금융·교육 등)의 산업구조 개혁 △중소기업 노동자의 사회적 임금 상승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강화(주거 복지 확대를 중심으로) 등 3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기득권 카르텔이 다시 공고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는 “기득권 카르텔이 대한민국을 거꾸로 돌려놓고 있다”면서 그 징후들을 나열했다.

하나씩 보면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이권 추구와 개혁 저항 △4조5000억원 분식 회계를 저지른 삼성 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부실한 처벌 △재벌 대기업의 규제에 대한 볼멘소리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일방적 주장만 언론 지면에 도배 △탄핵된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정치권에 데뷔 등이다. 

이 대표는 “촛불을 들었던 2년 전이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라며 “2018년 최저임금에서 시작된 대결은 2019년에는 우리 사회 모든 진지에서 전면전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기득권 카르텔은 사활을 걸고 나섰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교사와 공무원들의 일터 미복귀 △규제 샌드박스를 포함 박근혜식 규제 프리 정책으로의 회귀 등 대다수 시민들의 재량권을 확대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호는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결국 정부가 약속한 소득주도성장은 레토릭만 남게 됐다. 믿기지 않는 변신의 이유에 대해 정부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시민들은 경제 난국이 모두 정부 책임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난지 오래”라며 “경제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묵묵히 자기 약속을 지켜가는 대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약속을 바꾼 것이야말로 정부의 경제 정책이 불신받게 된 이유”라고 고언했다.

더 나아가 간명하게 묘사해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것만 빼고는 이전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마저 나온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단언컨대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는 생산과 성장의 위기가 아니라 분배와 정의의 위기”라면서 재차 경제 불평등의 증거들을 나열했다.

△1년 반만에 부동산 가격은 1000조원 증가했지만 직장인은 13년 동안 한 푼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마련 불가능 △최저임금 노동자의 174만원 월급(2019년 노동시간 기준)이 많다고 비판하지만 신동빈 롯데 회장은 옥중에서 152억원의 연봉 수령 △임금소득 상위 0.1%가 하위 10%의 1000배이고 상위 0.1% 대기업이 전체 기업 소득의 54% 차지 △격차 만연의 사회에서 암호화폐와 부동산 갭투자 횡행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는 한국 경제의 암울한 현실을 나열했다. 이 대표가 들고 있는 호빵은 故 노회찬 전 의원의 부재로 치러질 보궐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날 기자들에게 제공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한국 등 경제 규모는 선진국이지만 속사정은 불평등과 격차 심화로 살기 팍팍한 국가들을 꼬집듯이 이 대표도 “3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와 5000만명 인구)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은 그림의 떡일 뿐”이라며 “이미 시민들은 매일 매일 너무도 적은 자신의 몫을 체감한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원래 “불평등의 극복에는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체제 전환 비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미국인 누구도 세후 2만5000달러 이상의 순소득을 집에 가져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주의 독재자라는 거센 비난을 들었지만 나라를 파시즘과 전쟁으로부터 구해냈다. 경제 체질 변화를 말하는 정부 관계자 그 누구에게도 체제 전환 비용을 치를 의지와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득주도성장은 재벌, 기득권, 불로소득이 주도해온 지난 60년 경제와는 다른 가보지 않은 길이다. 불평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 역시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며 “정의당은 소득주도성장의 정통 노선을 계속 걸어 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구체적으로 이 대표는 △땀이 땅을 이기는 나라 △확장적 재정과 강력한 복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모든 노동이 당당한 나라 등 4대 슬로건을 내걸었다.

개혁 벨트

천 의원이 가장 먼저 개혁입법연대를 주창한 바 있었는데 정 대표와 이 대표 모두 개혁 벨트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당장 재벌개혁, 조세개혁, 재정개혁, 교육개혁은 공수처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법, 공정거래법, 상법 개정 등 전부 입법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정리해고 요건 강화,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이익공유제 등도 마찬가지다.

국회 298석의 의석수 현황을 보면 △민주당 129석 △한국당 112석(구속된 2인 제외하면 110석) △바른미래당 29석(평화당 활동하는 비례대표 3인 제외하면 26석) △평화당 14석(17석) △정의당 5석 △민중당 1석 △대한애국당 1석 △무소속 6석(강길부·서청원·손금주·이용호·이정현·정태옥) △문희상 국회의장으로 돼 있다. 

진보적 개혁 입법을 완료하기 위한 의결정족수는 최소 150석(재적의원 과반 이상 출석에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의결)이다. 한국당의 반대로 개혁적인 안건이 상임위원회나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을 때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으로 본회의에 직행시키려면 180석(재적 의원 60% 이상 또는 해당 상임위 60%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한국당을 제외한 4당에 민중당을 업고 동참이 예상되는 무소속을 다 합치면 181석이고 바른미래당을 빼면 155석이다. 

정 대표는 180석의 개혁 벨트를 활용하지 못 하는 여권을 답답해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180석의 개혁 벨트를 활용하지 못 하는 여권을 답답해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선의만 앞세우지 말고 개혁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개혁은 혼자 할 수 없다. 못 할 것이 없는 180석의 개혁 연대를 (여권이) 왜 활용하지 못 하는지 안타깝다”며 “한국당과 손잡고 개혁할 수 있는가. 국정 운영에 개혁 야당의 협조는 선거제도 개혁에 동참하면 해결된다. 기득권에 기대거나 스스로 기득권화 되지 않아야 개혁 동력이 살아난다. 대통령이 개혁 야당과 소통하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도 “사실 개혁 블록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선거제도 개혁”이라고 밝혔다.

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이 사활을 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민주당이 적극성을 보여야 개혁 벨트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전제조건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금 국회 안에서 어떤 개혁 입법도 (본회의)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것에 5당이 다 합의해야 한다는 명분에 갇혀서 추진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 선진화법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야당도 몇 가지 법안은 한국당을 빼면 합의할 수 있는 게 있다. 분류해서 일이 되는 국회를 만들자는 것이 근본 취지”라며 “불평등과의 전쟁을 위해 국회 내 개혁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불평등과의 전쟁에 나서야 할 여당의 개혁 의지는 어디에 있는가. (김용균법·윤창호법·유치원 3법 등)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당사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법이 만들어지는 슬픈 입법 과정이 이번에도 반복됐다. 국회가 이토록 무력해진 것은 과거로 주소지를 바꾼 한국당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여당 또한 한국당과의 파트너십을 최우선시 하고 오늘의 개혁을 내일로 미뤄왔다”고 꼬집었다.

이어 “남은 20대 국회 임기 동안 계속 야당 탓만 하면서 다음 총선에서 압승해 개혁을 하겠다는 꿈을 꾼다면 그것은 망상일 뿐”이라며 “이제 한국당과의 파트너십을 끝내고 국회 내 개혁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개혁 블록으로 정부 정책의 후퇴를 막고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개혁을 단 1cm라도 전진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 대표는 이 대표와 함께 공동 교섭단체를 다시 구성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이 대표와 함께 공동 교섭단체를 다시 구성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박효영 기자)

구체적으로 “모든 법안에 최대 의석을 모을 수가 없다면 150석이 필요한 법은 150석 대로 180석이 필요한 법은 180석대로 정당과 정파를 뛰어 넘는 다각도의 블록을 형성해 개혁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평화와정의(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 교섭단체)가 故 노회찬 전 의원의 타계로 무너졌는데 정 대표는 “(최근 민주당 입당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한 손금주·이용호 두 의원에 대해) 앞으로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진 뒤에 평화당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바른미래당이 보수 통합설로 인해 한국당에 흡수된다는 가정 하에 구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에 대해) 정치는 가치와 노선으로 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식구들과 언제라도 함께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도 “일단 우리가 평화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했고 또 한 석이 부족해서 깨진 상황이기 때문에 만약 공동 교섭단체를 다시 구성한다면 평화당과 될 것”이라며 “이번 승리(4월3일 창원성산 보궐선거)를 통해 무산됐던 공동 교섭단체를 재구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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