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다시 한번 팔을걷어붙인 것은 하반기 물가환경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연초 공급 충격에서 시작된 물가
상승세가 수요 압력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가세하며 서비스품목으로 번지고 그동안 억눌러온 공공요금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0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긴급 물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물가안정을 위한 22개 정책수단을 내놓았다.

◇공공요금
인상 임박.."물가 0.3% 끌어올릴 듯" 정부는 곧 하반기 공공요금 운용방안을 일괄 발표할 예정으로 중앙과 지방의 공공요금이 이르면 다음 달부터 차례로 오를 예정이다.

우선 중앙 공공요금은
전기료도시가스(도매), 우편료, 열차료, 시외·고속버스요금, 도로통행료, 국제항공요금, 상수도(광역), 통신료, 유료방송수신료 등 11개가운데 통신료와 유료방송수신료 등 일부를 제외하고 인상안을 최종 조율 중이다.

전기료는 지식
경제부가 수요가 급증하는 7월부터 7.2% 올리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내 협의과정에서 인상 폭이 줄고 인상 시기도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는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주택용 전기료의 인상폭은 최소화하는 대신
산업용 등을 올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도시가스료는 지난달부터 평균 4.8% 올랐으나 인상요인(7.8%)을 다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4분기에
추가 인상이 유력하다.

전기료와 도시가스료가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가중치가 각각 1.9%, 1.61%로 크기 때문에 전기료와 도시가스료가 각각 5%, 3% 인상한다면 전체 물가는 0.15% 상승하게 된다.

이밖에
장기동결됐던 도로통행료와 광역상수도, 우편료 등도 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국제항공요금은 7-8월 유류할증료 인상이 예정됨에 따라 인상이 불가피하다.

지방 공공요금도 물가 가중치가 높은 대중교통 요금을 중심으로 인상이 임박했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의 물가 가중치 합은 1.5%로 도시가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대전시는 지난 1일 시내버스와 도시철도 요금을 15.8%씩 인상하는 안을 확정했으며 대구시와 울산시, 경북,
전북 등 광역단체들도 시내버스요금을 10% 안팎으로 올릴 예정이다.

4년째 동결했던 서울시의 지하철
기본요금도 들썩이고 있다.

상하
수도 요금제주도가 8월부터 가정용 수도요금을 11.7%, 하수도요금을 5% 올리기로 했고 전주시는 7월부터 가정용 상수도 요금을 18.4%, 하수도 요금을 90.0% 인상해 시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SK증권 염상훈 애널리스트는 "공공요금 인상요인은 하반기 물가를 0.3%정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외에 전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 부처의 `물가당국화'.."창의적 물가안정방안 발굴해야" 재정부가 물가 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에 전달한 물가안정 정책수단은 크게 ▲총수요 관리 ▲생산
비용 절감 ▲유통구조 개선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 및 경쟁촉진 ▲신기술 및 신상품 개발 ▲수급조절기능 강화 ▲시장유인기제 강화 등 7개 항목이다.

항목별로 1~4개씩의
세부 정책 아이디어들이 담겨 총 22개로 구성됐다.

당시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재정부가
준비한 발제자료에 물가안정 정책수단 20여 가지를 망라했다"면서 "각 부처는 정책수단을 최대한 모두 가동하고 있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추가로 노력을 기울일 여지가 있는지 다시 점검해달라"고 당부했다.

22개 정책수단은 박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부터 직접 준비한 아이디어들로, 관계부처가 모두 `물가당국'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게 재정부 설명이다.

우선 재정부는 총수요 관리를 위해 '금리·환율·재정 등 거시변수의
안정적 운용'을 내세웠다.

특히 환율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은 눈에 띈다.

물가안정을 위해 당국이 환율
하락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 측은 이에 대해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억제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거시·통화·재정정책을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용해간다는 원론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시장유인기제 강
화' 방안으로 거론된 시간별·요일별 가격차등제와 첨두부하(peak load) 가격제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계획과 관련된 정책수단이기 때문이다.

바탕에는 박재완 장관이 언급한 `
콜렛-헤이그' 규칙이 깔려 있다.

도로통행료와
전기요금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고속도로통행료의 경우 이미 시행 중인 출퇴근시간대 할인제도를 확대 개편해 평일 출퇴근 시간대의 요금은 깎아주는 반면 주말과 공휴일 요금은 지금보다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첨두부하 가격제란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에 요금을 할인해 주는 것으로, 재정부당국자는 "전기요금을 일률적으로 올리기보다는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는 인상 폭을 높이고 그렇지 않은 시간대에 대해선 인상폭을 줄여 수요관리도 하고 물가 부담도 줄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생산
비용절감 항목에서는 생산요소비용 안정, 보조금 지급 및 세제지원, 준조세부담 완화, 작업공정 개선, 에너지효율 향상 등 원가절감 등의 정책수단이 제시됐다.

세제지원 중에서는 관세를 감면해주는 할당관세가 대표적인 수단이다.

준조세부담 완화는 사회
보험료나 기부금과 성금 등 `준조세'의 부담을 낮추거나늘어나지 않도록 억제해 서민생활 안정을 기하자는 아이디어다.

이에 대해 재정부 당국자는 "이미 해오던 준조세
정비작업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복지시스템을 내실화하고 사회복지전달 체계를 잘 구비하면 준조세 인상요인이 줄어들어 서민부담도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통구조 개선 항목에는
전자상거래 활성화, 직거래 등 유통단계 축소, 비축제도 활성화, 입찰제도 등 관료적 형식주의(Red Tape) 개선, 재활용시장 활성화 등의 정책수단이 담겼다.

불필요하게 발생하던 유통비용을 줄이고 입찰제도를 투명화해 가격 문턱을 낮추자는 아이디어로, 주로
농산물식품 유통구조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제 곡물가 상승에 따라
국내 곡물과 가공식품연관산업의 가격동향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다"며 "곡물 유통구조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것과도 연결된다.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과 경쟁촉진 항목에는 진입장벽·가격규제 완화 등 경쟁촉진,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 및 독점이윤 축소, 매점매석·담합 등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 소비자단체 감시활동 강화 및 가격정보 공개 확대 등이 포함됐다.

신기술 및 신상품 개발 항목에는 신공법 개발, 결합·복합상품 개발, 맞춤형 서비스 개발, 불필요한 부가서비스 축소 등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윤종원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22개 정책수단에 대해 "그동안 관계부처가 물가안정을 위해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도 못한 것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달라는 일종의`체크리스트'로 보면 된다"며 "재정부가 제시한 정책수단들을 통해 각 부처가 물가안정 방안을 창의적으로 발굴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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