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직장인 A(34세) 씨는 매일아침 진한 커피 한잔에 잠을 털어낸다. A 씨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까까머리 고 3때였는지 아니면 대학 미팅에서 만난 그녀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어쨌거나 이제 A 씨에게 커피는 일상에서 끊어낼 수 없는 애호품인건 분명하다. 어디 A 씨뿐인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커피만큼 사랑받는 기호식품도 없을 듯싶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연간 커피 소비량은 1인당 428잔으로 매일 한 잔 이상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만인의 사랑을 받는 커피는 언제 이 땅에 들어온 것일까?

1890 당시 커피... ‘가배차’ ‘양탕’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을 전후한 시점이었다고 전해진다. 문헌에 따르면 1800년대 후반 조선에 들어온 각국의 외교관과 선교사들이 조선 왕실과 관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들에게 커피를 제공했다.

유길준의 서양 기행문인 ‘서유견문’(1895년)에서는 커피와 홍차가 1890년쯤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스와 커피를 조선 사람들이 숭늉과 냉수 마시듯 한다고  소개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커피를‘가배차’ ‘양탕’이라고 불렀다고도 적었다.

특히 커피와 관련해서 대한제국의 고종은 빠질 수 없다. 고종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는 동안 커피 애호가가 되어 환궁 후에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전한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곳이 정관헌이다. 정관헌은 1900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다과를 들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덕수궁 안에 지은 회랑 건축물인데 이곳에서는 늘 커피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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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고종은 커피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손탁호텔의 ‘정동구락부’... 최초 다방
고종 황제의 커피 시중을 들었던 독일국적의 손탁은 고종 황제로부터 옛 이화여고 본관이 들어서 있던 서울 중구 정동 29번지 왕실 소유 땅을 하사받았는데 이 자리에 손탁호텔을 지었다. 이때 손탁은 실내장식을 서구풍으로 꾸며서 손탁빈관을 경영하는 등 서구식 호텔영업을 운영했는데 이곳의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점이 들어서 우리나라 다방의 시초를 열었다.  

1930년 ‘제비다방’, ‘69다방’, ‘쓰루(鶴)다방’, ‘무기다방’
1930년대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예술의 전유물처럼 다방을 소통의 장으로 이용했는데 특히 이상은 종로에서 ‘제비다방’, ‘69다방’, ‘쓰루(鶴)다방’, ‘무기다방’ 등 여러 다방을 운영했을 만큼 커피 애호가이기도 했다. 이를 입증하는 자료는 이상의 작품 속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이상은 소설 ‘날개(1936)’에서 주인공이 지금의 서울역인 경성역 2층에 있던 국내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 ‘ 그릴’에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가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깨닫고 돌아선다는 내용으로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 뻔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을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나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라고 커피에 대한 애찬을 내놓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일본인들에 의해 커피가 확산되면서 명동, 충무로, 종로 등에 다방이 등장했다. 하지만 커피값이 너무 비싸 정부의 고위 관료나 모던보이들만이 주 이용객으로 사의 찬미로 유명한 성악가 윤심덕이도 이 중 한 사람이었다. 

근현대의 상징적 공간이었던  '그릴'에서 관람객들이 100여 년 전의 커피맛을 즐기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근현대의 상징적 공간이었던 '그릴'에서 관람객들이 100여 년 전의 문화와 함께 커피맛을 시음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민주화 운동의 산실... 음악다방으로 한 시대 풍미
광복 이후에는 미군에 의해 인스턴트커피가 들어와 다방이 성행하게 됐는데 1960년대는 퇴폐적인 곳으로 발전하는 예까지 생기면서 공무원과 회사원들의 다방 출입에 제한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산실로써 김지하, 황석영, 김민기 등 문학 예술계 인사들의 공간 제공에 이어 대학가 젊은이들의 젊음을 발산하는 음악다방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에 이 땅에 들어온 커피는 약 100여 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한국의 문화사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는 커피 없이는 하루도 못 살겠다는 커피애호가들로 골목골목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들어서 밥값보다 비싼 커피로써 대접을 받고 있다.

문화역 서울284... 100여 년 전의 커피 문화 재현
이와 관련하여 옛 서울역인 문화역 서울284에서 커피를 통한 사회문화 읽기 展이 열리고 있다. 서울역인 문화역서울284 공간은 근현대의 상징적 공간으로 그릴, 1·2등 대합실 티룸에서 본격적인 커피문화가 시작된 공적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즉, 이번 '커피 사회'는 1930년대 근대적 문물을 소개하던 경성역의 다방과 양식당 등에서 우리의 100년 커피 문화를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커피가 상징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

다방에서 찻집, 그리고 카페로 진화해온 과정에 담긴 문화적 징후인 시간적 흐름은 물론 커피와 커피문화를 담았던 시간성과 장소에 대한 추억, 사물 등 오늘날 커피의 문화에 대한 담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소설가 이상·박태원, 시인 정지용 등이 드나들던 제비다방, 낙랑파라 같은 문예다방부터 해방 이후 돌체다방 등의 음악다방, 90년대 이후 등장한 카페에 이르기까지 커피를 둘러싼 공간의 변천사를 돌아보는 동안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제공하는 프로페셔널 그린빈 바이어(greenbean buyer), 커퍼(cupper), 로스터(roaster), 바리스타(barista)의 퀄리티 컨트롤을 통한 최상의 스페셜티 커피도 제공받을 수 있다.  

전시실에 한곳에는  DJ가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던 80년대식 음악다방이 재현되어 한때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음악에도 빠져볼 수 있다. 서울역 귀빈실과 고종황제, 황실사진과 사진관 탁자의 커피. 천연당 사진관 등. 한국 근 현대사의 대표 기호품인 커피와 사진관의 관계성을 추적할 수도 있다. 

특히 커피사회 아카이브에서는 커피의 기원과 전래 과정, 대중화되던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화해 온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600여개의 삽화와  전시장 중앙의 기찻길 레일을 모티브로 구성한 커피 연대기에서는 수백 년에 걸친 커피의 역사와 함께 아련하게 기억되는 추억도 꺼내 볼 수 있다. 

커피 사회는 내달 17일까지 열린다. 마음 통하는 이와 함께  100여 년 전의 커피 맛을 음미하며 또 하나의 연대기를 쓰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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