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 전 대법관은 허경호 판사가 또 방탄적 판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전략
한동훈 수사팀의 전략
후배 판사 탓으로 돌리기
이규진의 업무 수첩에 사후 조작 가능성 제기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새벽 2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감옥행이 확정됐다.

24일 새벽 2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같은 날(23일) 두 번째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은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은 기각됐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는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발부 사유를 밝혔다.

40년 최고 법관 코스를 밟은 엘리트 판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끝내 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40년 최고 법관 코스를 밟은 엘리트 판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끝내 구속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반면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는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의 수사 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다. 현재까지의 수사 경과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 및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5명(박범석·이언학·허경호·명재권·임민성) 중 명 판사는 검찰 출신이고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경력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3명(박범석·이언학·허경호) 보다는 그동안 사법농단 영장 심사에서 덜 방탄적으로 판단해왔다. 평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기각 결정을 거의 내리지 않음에도(지난 5년간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 1% 수준) 3명은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90%의 기각률을 보였다.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미 사법농단 관련 영장에 비정상적으로 줄줄이 기각한 바 있다. 방탄 판사들이라는 비아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미 사법농단 관련 영장에 비정상적으로 줄줄이 기각한 바 있다. 방탄 판사들이라는 비아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날(23일) 5시간 반 동안 진행된 심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한동훈 3차장 검사(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수사팀장)는 치열하게 격돌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 혐의가 기록된 분량만 260쪽에 달한다. 한 검사는 구속영장 청구서에 조직 범죄인 사법농단의 우두머리로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들을 빼곡히 적시했다. 창과 방패의 총력전이 펼쳐졌을텐데 검찰은 신봉수 특수1부장(서울중앙지검)을 필두로 8명의 검사가 나섰고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단은 최정숙·김병성 변호사가 출석했다. 

어찌됐든 검찰은 맥시멈 20일 동안 양 전 대법원장의 신병을 확보하게 됐고 좀 더 보강 수사를 진행한 뒤 2월 중으로 구속기소할 방침이다.

심사에서 눈에 띄는 검찰 측 논리 중에는 23일 법정구속 된 안태근 전 검사가 저지른 인사보복 조치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총괄 지휘한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가 훨씬 중대하는 지점이 있었다. 

신 부장은 “대법원장 재임 기간 수 십명의 법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의 무게가 서지현 검사 1명에 대한 인사보복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검사보다 수 십 배 무겁고 증거도 훨씬 탄탄하다”고 변론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 진술한 후배 법관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이미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소환 조사에서 △(증거가 구체적일 시) 범죄 성립이 되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실무자들의 일탈이라는 식으로 진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진술 조서를 확인하는 데에만 10시간 넘게 할애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인사의 경우 형사소송법 70조 1항과 2항에 따라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다는 전제 하에 사안의 중대성이 있거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으면 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결재 서명 △재판거래 차원으로 김앤장 로펌 소속 변호사를 만났다는 점 △명백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거나 후배 판사에게 책임을 떠넘긴 점 등을 적극 어필했다. 

특히 일본 전범기업의 사건을 수임한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를 만나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에 불이익을 끼치려 했다는 사실이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에 결재 서명을 한 것도 총괄 지휘의 증거로 제시됐다. 
 
검찰은 증거 인멸의 우려를 역설하는 차원에서 여러 물증이나 후배 판사들의 증언에 양 전 대법원장이 논박하지 못 하고 무작정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구속 기소가 되면 증인으로 출석할 핵심 후배 판사들과 입을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었고 이런 맥락에 대해 명 판사도 인정했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할 때나 나갈 때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할 때나 나갈 때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예컨대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판사들의 진술에 양 전 대법원장은 거짓 진술이라고 주장했고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업무 수첩에 ‘大’자(대법원장)가 여러 번 적혀 있었던 것에는 “사후에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사법농단의 주요 실행자로서 2015년 내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고 그걸 기록해놓은 업무 수첩만 3권 분량이다. 과거 국정농단 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의중을 그대로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지시했고 그것들이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 꼼꼼히 기록됐다. 소위 ‘종범 실록’은 태블릿PC와 함께 국정농단 제2의 스모킹건으로 작용해서 주요 혐의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도록 했다. 

검찰은 매우 상세하게 적혀있는 업무 수첩 내용을 토대로 판사들의 진술까지 확보해놨는데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조작 가능성을 거론하며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과 3차례 소환조사에 협조 △도주 가능성 없음 △소위 권한을 남용해야 성립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법리 다툼 △대법원장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 등의 근거를 들어 불구속을 주장했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경기도 의왕시 서울 구치소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양 전 대법원장은 바로 수감됐고 박 전 대법관은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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