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출마선언
선언문과 질의응답 모두 원론적 
한국당 외연 확장과 관련 플랜 제시
민중당 고발에 통진당 해산 인용한 헌재 정당성 피력
똑같은 헌재가 만장일치로 박근혜 탄핵 인용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화법을 구사했다. 원론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제1야당 당대표 출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지지율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본 소양 부족으로 지적을 받았지만 아버지 후광을 입고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던 기세와 닮아 있다.

황 전 총리가 29일 오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황교안 전 총리가 공식 출마 선언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황 전 총리의 출마 선언문은 “지난날 대한민국은 젊음과 역동의 나라였다”로 운을 뗀 뒤 지금 그 역동성이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상실됐고 나라가 엉망이 됐다는 큰 줄기를 바탕으로 ①문재인 정부 하의 경제 현실 나열 ②안보 현실 나열 ③2020년 총선 승리를 위한 투쟁과 통합의 한국당 비전 설파 등으로 구성됐다. 

황 전 총리는 “모든 고통과 불안의 뿌리에 문재인 정권의 폭정이 있다”고 주장했고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2015년 5월5일 어린이날 청와대 행사)”고 했던 박 전 대통령의 감성 화법과 같이 “첫사랑을 기억하는가. 한국당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내 마음은 첫사랑과 같은 열정으로 가득하다”는 표현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나씩 살펴보면 먼저 ①은 경기 불황에 대한 긴 묘사였다. 

황 전 총리는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 철 지난 좌파 경제 실험 소득주도성장이 정권의 도그마가 됐다”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붕괴 △중소기업들의 해외 탈출 △청년 실업 △실업자와 폐업 100만명 시대의 고통 △강성 귀족 노동조합의 노동 개혁 방해 △탈원전 강행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어떤 경제 철학과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고 경기 불황의 현실만 강조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황 전 총리는 원론적인 발언으로 질의응답과 출마 선언문을 채웠다. (사진=박효영 기자)

②에 대해 황 전 총리는 “지금까지 북핵 폐기는 제자리 걸음”이라며 남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에 힘입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폄하하는 방식을 구사했다. 한국당과 보수진영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인데 작년 6.13 지방선거 정국에서 “위장평화쇼”를 주창하다가 참패하고 무릎을 꿇었을 때와는 사뭇 온도차가 감지되는 부분이다.

황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가 “2차 미북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면서도” △북핵 폐기가 아닌 동결 △주한미군 대폭 감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의 주특기인 색깔론도 나왔는데 황 전 총리는 이런 외교안보 분위기에 따라 “김정은을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당당하게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 전 총리는 “과연 이 정권이 추구하는 통일과 국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통일이 같은 것인지 걱정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며 “북한의 독재와 인권 탄압을 놔두고 진정한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 수 없다”고 발언했고 북핵 완전 폐기 차원의 “비굴하고 불안한 평화가 아닌 당당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역시 구체적인 비전과 로드맵은 없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황 전 총리는 현재가 대북 제재 국면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질의응답 과정에서 황 전 총리는 대북 정책에 강온 전략이 있을 수 있다면서 “상황에 맞는 정책을 택해야 한다. 많은 대화와 협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거듭된 핵 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며 “국제사회를 향해 핵 보유국을 선언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사회는 지금 제재 국면이라고 보고 북한을 제재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미국을 비롯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의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은 맞지만 2018년 초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추가 핵 개발이나 무력 도발을 하지 않고 국제사회와 협상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보수정권 10년을 거쳐 2017년까지의 북한 상황이라면 황 전 총리의 설명이 적합하지만 그 이후는 현실 진단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지금은 객관적으로 대북 제재 국면이 아니라 완화를 위한 협상 국면이다.  

③에서는 그나마 황 전 총리의 공약이 나왔다. 

이를테면 “정책과 공약을 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동력으로 삼겠다”며 △2020 경제 대전환 프로젝트(연내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등 주요 정책 폐기) 추진 △총선 승리를 위한 우파의 대통합과 당의 외연 학장 △탕평의 당직 인선 △대권 주자들을 위한 대통합 정책 협의회 설치 △인재풀 확대 등을 약속했다.

특히 황 전 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폐기를 위해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국민과 함께 거리로 나서겠다. 결연하고 가열차게 모든 걸 걸고 황교안이 투쟁의 선봉에 서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황 전 총리의 논리 구조에 따르면 그냥 투쟁하면 안 되고 ‘품격있는 투쟁을 통해 국민 신뢰의 기둥을 높이고 →그 기둥으로 빅텐트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고 →그래야 대통합이 가능하고 →외연 확장’도 이뤄낼 수 있다. 

이날 현장에는 황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모여서 "황교안! 당대표!"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현장에는 황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모여서 "황교안! 당대표!"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진=박효영 기자)

무엇보다 “확고한 원칙이 외연 확대에 장애가 된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 오히려 단단하게 땅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좋은 인재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에 뜻을 같이 한다면 폭넓게 품고 함께 가는 큰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바른미래당 유력 주자들(안철수·유승민)에 대한 질문에 “헌법 가치에 뜻을 같이 한다면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당대표의 공천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언론에서 보도된 계파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 했다. 공천은 가장 중요한 게 공정성이다. 나는 계파 정치를 하려고 한국당에 입당한 것이 아니다. (한국당의 계파 문제는) 바뀌었고 (나도) 바꾸려고 들어갔다”고 밝혔다. 

황 전 총리는 지난 15일 한국당 입당식에서 “국민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당권 출마를 기정사실화 했는데 실제 보수진영 대권 주자로서 연일 지지율 상위권을 구가하고 있는 현상을 국민 기대로 치환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21일~25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성인 2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응답률은 7.3%이고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에 따르면 황 전 총리는 17.1%로 15.3%를 기록한 이낙연 총리를 처음으로 앞지르고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황 전 총리도 “국민들께서 정말 살기 어렵다고 하는 마음을 자유 우파를 향해 표했다고 생각한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 함께 해야겠다”고 밝혔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는 황 전 총리.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비극을 온 국민이 봤듯이 일종의 이미지와 정치적 아우라만으로 높은 자리에 갔을 때 탈이 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당 당권 주자들의 황 전 총리에 대한 ‘무혈 입성’ 비판도 그런 맥과 닿아 있다. 기본적으로 대결적 정치 구도 아래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면 바로 친박의 기세가 보수 정당을 장악할 여지가 생기고 기본 소양과 컨텐츠없이 정치적 담금질을 겪지 않는 인물이 급부상할 수 있다. 

전여옥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있다가 완전히 실망해서 결별했다. 전 전 의원은 2012년 출간한 자서전 <i 전여옥>을 통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식견, 인문학적 컨텐츠도 부족하고 신문 기사를 깊이 있게 이해 못 한다. 박근혜는 늘 짧게 대답한다.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혹평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11월8일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한중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도 우리 한중 관계는 협력적 관계로 이렇게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지속이 될 것이고 더 업그레이드시켜 나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렇게 협력을 이뤄왔지만 그 관계가 더욱 이렇게 지속이 되면서 또 나아가서 더욱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그 중요한 협력적 동반자이기 때문에 이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나가고 업그레이드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세 차례나 동어 반복했다. 컨텐츠가 부족할수록 원론적인 화법과 동어 반복을 일삼게 되는데 전 전 의원을 이를 베이비 토크라고 규정했다.

황 전 총리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짧고 무의미하고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예컨대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해서 책임 당원 자격이 돼야 출마할 수 있는 것과 관련해서 황 전 총리는 “당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리라 생각한다”고 일축했고 탄핵과 친박 프레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부탁한다는 질문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시장경제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헌법 가치를 확고히 해야 한다. 이에 대해 나 또는 한국당이 원칙을 지켰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회피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에 대해서도 “정무적인 판단이다. 우리 국민들의 여론과 염원을 종합해 기회가 되면 하게 되리라 본다”고 짧게 답했다.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있는 황 전 총리. (사진=박효영 기자)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있는 황 전 총리. (사진=박효영 기자)

황 전 총리는 “태극기 세력이란 그 분들도 나라에 헌신하고 봉사한 귀한 분들이다. 쉽지 않겠지만 그런 분들과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화하고 소통하면 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본다”며 포용 의사를 밝혔고 관련해서 통합진보당 해산을 업적으로 말한 것에 대해서도 “통진당은 헌법에서 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정당”이라며 “헌법이 해산하도록 규정한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년 10개월 동안 헌법재판소 심리를 통해 충분히 통진당의 위헌성이 입증됐다. 재판관 9명중 8명이 위헌 판단을 내려 해산시켰다. 나는 법에 따라 헌법 가치에 반하는 정당에 대해 헌재 해산 심판을 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선 논란이 더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14년 12월19일 박한철 헌재소장을 비롯 8명의 헌법재판관(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기각)은 통진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에서 인용 결정했는데 2년여 뒤 2017년 3월10일 박 전 대통령은 그 헌법재판관들 8명(박 전 소장은 임기 만료로 퇴임)에 의해 만장일치로 파면됐다. 황 전 총리가 말하는 헌법적 기본 질서의 판단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 부대에 대한 포용 의사를 표명해서 모순적인 대목이 있다. 

결국 2018년 하반기부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 하락이 황 전 총리의 출마로 이어졌다고 읽혀지는데 지금 기세로는 당권을 거머쥐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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