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보다는 딴짓으로 사고났다?
괘씸한 범죄자 박상준에게 검사는 10년 구형
블랙박스 공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
사죄가 아닌 감형받으려는 전략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양형을 줄여보고자 하는 의도가 뻔했다. 故 윤창호씨의 목숨을 앗아간 음주운전 치사 범죄자 박상준씨(28세)와 이민 변호사(법무법인 창과방패)는 반성이나 유족에 대한 사죄로 진정성을 보이기 보다는 죄목 적용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형사4 단독 김동욱 판사)에서 박씨에 대한 1심 공판이 열렸다. 여기서 충돌 직전의 블랙박스 상황이 공개됐다. 

지난 1월11일 1심 공판에서 윤창호씨 부친 윤기현씨는 직접 법정에서 고통스러운 심경을 증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씨는 2018년 9월25일 새벽 2시25분 신호대기 중인 차 안에서 동승자 여성과 웃고 떠들면서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음주운전 범죄자들을 많이 변호해왔던 이 변호사는 이 지점을 파고들고 박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가 아닌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지난 공판(1월11일)에서 변호인이 음주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는지 합리적인 의심이 증명되었는지 살펴봐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사고 직전 영상에 대한 증거 조사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원래 예정된 선고 공판을 2월13일 오전 11시로 미루고 이날은 변론을 재개했다.

분명 3명이 보드카 2병과 데낄라 4잔을 나눠 마셨고 이에 따라 박씨는 혈중알콜농도 0.181%인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특정범죄가중법의 구성요건인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로서 음주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동승자와의 스킨십에 정신이 팔린 상태가 사고의 중대한 원인이었다는 게 이 변호사의 변론 전략이었다. 

이 변호사는 “사고 직전 운전자 손이 자신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는 동승자 진술을 보면 모종의 성적인 행위가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더라도 운전자가 술에 취한 것은 맞지만 정상적으로 운전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교특법을 적용해달라”고 주장했다. 

지난 공판 때 박씨의 스킨십 시도가 검사 표현으로 “딴짓”으로 전파됐고 언론 보도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서 집중됐다. 하지만 이 변호사와 박씨 입장에서 충돌 직전 스킨십이 부각되면 교특법 적용에 유리할 수 있다.

박씨는 “좌회전을 할 때 핸들을 풀어야 했는데 풀지 못 했다. 브레이크도 밟을 수 있었는데 급 좌회전을 하는 바람에 못 했다”고 진술했다.

이 변호사는 박씨 사건을 수임한 직업인으로서 사건의 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당연히 양형을 줄여보고자 애를 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가법 5조11의 양형 범위는 징역 1년~30년이고 교특법 3조2항은 징역 5년 이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이 있지만 판사의 결정을 법적으로 강제하지는 못 한다. 그래서 이 변호사가 교특법 적용을 노리는 것이다. 

이민 변호사는 음주운전 사건을 많이 수임한 로펌 대표다. (캡처사진=연합뉴스 TV) 
법무법인 창과방패는 SOS 음주운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자료=창과방패)

특가법 5조11에 명시된 범죄 구성요건은 ①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 ②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 ③자동차를 운전해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함 등 3가지다. 박씨에게 ①③은 명백하다. 과연 ②에 해당되는지를 두고 이 변호사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판례와 법제처의 법령 해석에 따르면 음주운전의 모든 경우를 ②으로 보지 않는 것은 맞다.  

즉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없는 우려가 있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고 운전자가 술에 취해 전방 주시를 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자신이 의도한대로 조작의 시기 내지 정도를 조절해 핸들 또는 브레이크를 조작하는 것이 곤란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구체적으로 “피고인의 주취 정도, 사고 발생 경위, 사고 위치, 피해 정도, 사고 전후 피고인의 상태”가 고려된다. 사고 전후 피고인의 상태라는 것은 △충돌 직전 주행 △거동 △혀가 꼬여 말을 제대로 하는지 △횡설수설하는지 △사고를 제대로 기억하는지 등이 있는데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12월12일 뮤지컬 연출가 황민씨는 음주운전으로 동승자 2명을 죽게 만들고 2명을 다치게 만들었음에도 교특법이 적용돼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8월27일 23시경 경기도 구리시 도로에서 만취상태(0.104%)로 스포츠카를 몰았다. 그때 2차로에서 1차로로 차로 변경을 시도했던 버스를 제때 발견하지 못 하고 이를 피하다가 우측 갓길에 주정차 중인 25톤 트럭을 들이받았다. 보통 0.1%가 넘으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간주되는데 황씨는 그럼에도 시속 167㎞로 달렸고 소위 말해 칼치기(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이를 지나가며 빠른 속도로 추월하는 위험한 운전 행위)를 시도했다. 이런 운전 능력을 보였던 점에서 ②에 해당되기 어려워 특가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반면 박씨는 신호대기 중이었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90도 가까이 극단적으로 좌회전을 했다. 

검사도 “박씨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선처를 바라는 것은 가식적이다. 보드카와 칵테일을 마신 운전자가 만취 상태에서 500m를 이동하면서 중앙선을 침범하고 급격하게 좌회전을 하는 등 운전 조작 능력과 정보처리 능력을 상실해 발생한 사고”라며 “특가법상 위험운전 치사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동승자와 스킨십을 했든 안 했든 다시 출발하면서 그렇게 좌회전을 했다는 것은 ②에 해당될 수 있다. 남녀 간의 스킨십은 만취 상태든 맨정신이든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② 여부를 가리는데 변수로 작용한다고 보기 어렵다.

가해자 박상준씨는 신호대기 중이었다가 다시 출발할 때 90도 가까이 극단적으로 좌회전을 했다. (캡처사진=블랙박스 영상)

최단비 변호사(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월31일 오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모든 사실관계를 봤을 때 교특법 적용이 안 될 것 같다”며 “변호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주장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뒤에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생각도 없고 복수할 것이라고 했다면 죄질이 불량해서 반성을 전혀 안 하는 것이니까 형량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하면 (교특법인지 특가법인지는 결국 판사가 판단하는 것인데 윤창호법 제정 이후로는)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로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 변호사가 얘기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음주로 인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정황상)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1월11일 열렸던 공판에서 담당 검사는 박씨의 스마트폰 통신 내역을 최소한으로 공개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박씨는 △보험금을 타서 무슨 쇼핑할지 사용 계획을 이야기하거나 △피해자 유족 측에 대한 경찰 조사 소식을 듣고 사회적 관심이 잦아들고 재판이 종료되면 신상을 알아보려고 한 것을 문제삼겠다(검사 표현으로 보복)는 내용으로 지인들과 상의를 했다.

윤창호씨는 지난해 11월9일 끝내 눈을 감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변호사가 진정성있는 사죄 코스프레를 하는 것 보다는 사고 원인을 다퉈 죄목을 바꿔보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실제 당시 공판에서 박씨는 수사기관을 통해 피해자 측에 자필 사과 편지를 전달하려고 했다거나 어머니와 친척 등이 윤창호씨가 입원 중이던 병원을 8번이나 찾아갔다는 진술을 했다. 결과적으로 편지도 전달이 안 됐고 박씨 가족이 윤창호씨의 부모를 만나 직접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확인할 수 없는 사과 시도 행위만 어필했던 것이다. 

아들을 간호하느라 생업을 접고 병원에 살다시피 했던 부모의 입장에서 윤창호씨 모친 최은희씨는 8번이나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갔다는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분노했다. 

박씨와 이 변호사의 태도로 인해 검사는 기존에 8년 구형했던 것을 취소하고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윤창호씨 아버지 윤기현씨는 1월31일 오전 기자와의 통화에서 “양형 차이가 없으면 굳이 교특법을 적용해달라고 얘기할 필요 자체가 없다. 교특법을 해달라는 것은 감형해달라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