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은 2월 말 베트남 유력
비건과 김혁철 전 대사의 막판 협상
핵 시설 폐기 수위와 상응 조치 내용
비건의 로드맵 내용
강온 전략을 동시에 사용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쏙 들어갔던 종전 선언 이야기가 미국 측에서 먼저 나오고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임박한 상황에서 막판 실무 회담이 한반도에서 열리게 됐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새로운 파트너인 김혁철 전 주 스페인 북한 대사와 실무 협상을 하기 위해 3일 중으로 방한한다. 이 소식은 2일 오전 국내 언론에 타전됐다. 

비건 대표는 4일 김 전 대사와 판문점에서 만날 것으로 보이고 언제까지 마주하게 될지는 미정이다. 지난번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남북미가 2박3일 마라톤 협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비건 대표는 4일 오전 이도훈 외교부 본부장(한반도평화교섭본부)을 먼저 만나고 오후에 김 전 대사와 마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 비건 대표가 스탠포드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강연을 위해 이동하다가 기자들을 만났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미 2차 회담에서 발표될 합의문 조율이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번에는 막판 비핵화 수위와 상응 조치를 두고 최종 담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타결 방식으로 미국의 부분적 제재 완화와 북한의 단계적 핵 리스트 제출이 동시 교환되는 패키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곤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핵 리스트 제출을 바로 요구하기 전에 미국 사찰단이 직접 <풍계리 →동창리 →영변 →강선> 등 주요 핵 시설을 검증해서 폐기한 뒤 선제적 제재 완화를 해주고 신뢰를 쌓는 모델을 제안한 바 있다.

그렇게 가야 단계적 핵 리스트 신고와 순차적 제재 완화를 동시에 교환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실무 협상은 폐기할 핵 시설이 무엇 무엇인지와 그에 따른 상응 조치를 얼마나 제공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되는 상응 조치는 △종전 선언 △연락 사무소 △인도적 지원 △남북 경제협력에 필요한 제재 완화 등이 있다. 국제사회의 자금과 물자가 단계적으로 유입될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서는 미국이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라 그것은 무리일 것으로 보인다. 

영변은 그 자체로 북핵 생산 기지의 시그니처인데다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 △핵 연료봉 제조 시설 △재처리 시설 △핵 연료 저장 시설 △폐기물 보관고 △고농축 우라늄 제조 시설 등이 몰려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사찰을 허용하고 폐기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도훈 본부장과 비건 대표가 작년 12월21일 서울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앞서 우리 시간으로 1일 새벽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비건 대표의 스탠포드 대학 강연록이 보도됐고 그날 아침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다음주 초 2차 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발표하겠다. 대부분이 정상회담 장소(베트남 다낭이나 하노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게 큰 비밀은 아니지만 정확한 날짜는 2월 말”이라며 “북한 측이 이번 만남을 매우 원하고 있고 그들이 정말로 무언가 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막연하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자주 던져왔는데 이날 비건 대표는 강연을 통해 그 구체적인 내용을 펼쳐놨다. 

먼저 “어느 시점에서 북한의 포괄적인 핵 신고(declaration) 리스트를 반드시 받을 것이고 주요 시설에 대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가들의 접근과 감시 방법을 북한과 합의하겠다”며 목표를 전제했다.

비건 대표가 제시한 로드맵은 ‘①핵 시설 사찰 하에 폐기 →②종전 선언 →③대량살상무기(WMD) 폐기 ④핵 리스트 신고 →⑤평화체제 수립 →⑥북미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제재 완화를 비롯한 다양한 인센티브가 제공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를테면 “비핵화가 끝나기 전에는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미국은 상대방이 모든 걸 하기 전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We didn’t say we won’t do anything until you do everything)”고 표현했다.

즉 “오늘과 같은 기회는 외교라는 뼈에 약간의 살을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that’s why an opportunity like this today is so important to be able to maybe put a little bit more flesh on the bones of our diplomacy)”는 것이다.

 비건 대표는 남북미 비핵화 협상의 핵심 인사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핵심은 ④이다. 하지만 강 장관이 제안한 것처럼 ①부터 시작하는 것에 현실적인 무게가 실리고 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이 기존에 제안한 풍계리와 동창리 뿐 아니라 북한 내 모든 핵 시설 폐쇄를 촉구할 것이다. 시설들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 프로그램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지만 지난 10년간 어떤 종류의 국제 사찰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 관련 협력을 재개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협상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 측이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라 영변과 그 이상의 시설을 폐기할 의사가 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의 폐기와 파괴를 약속했다. 북한은 더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①의 우려 지점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맥락에서 비건 대표는 “북한은 그 능력을 완전히 해체하고 폐기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신호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단지 풍계리 자체 폭파 이벤트만 진행)”고 말했다.

그래서 완전한 비핵화 이전까지 인센티브 제공을 고려하지 않던 기존의 강경한 원칙을 고수하기 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무장관으로 하여금 압박과 인센티브를 결합해 외교적으로 개입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완전한 그림이다. 미국은 (북한이 ①에만 머물고 ③④으로 나아가지 않는 기세를 보이더라도) 속아 넘어가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거나 (일부러) 필요한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런 미국 정부의 기조에 대해 비건 대표는 “이것을 절대적인 관점에서 동시에 상대적인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묘사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이 1월19일 미국 워싱턴DC의 듀폰서클 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작년 초중반에 남북의 최대 화두였던 ②과 관련 비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 정권 전복을 시도하지도 않을 것(President Trump is ready to end this war. We are not going to invade North Korea. We are not seeking to topple the North Korean regime)”이라고 밝혔다.   

⑤⑥도 중요한데 비건 대표는 “우리는 다른 미래를 위해 준비돼 있다. 그건 단순히 비핵화보다 의미가 더 크다. 미국은 모든 것을 동시에 추진한다. 핵 무기가 북한에서 사라지고 제재가 해제되고 대사관에 깃발이 올라가고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것과 같은 일이 한시에 벌어지는 게 완벽한 결과가 이뤄지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이행 정도에 따라 동시적으로 관계 정상화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사이에 제재 완화도 얼마든지 제공될 수 있다. 

비건 대표는 “투자와 외부 협력, 무역과 한반도의 놀라운 자원 등으로 인해 촉진될 북한의 밝은 미래는 미국 성공 전략의 일환이다. 적절한 시점에 비핵화가 이뤄지면 미국은 북한과 다른 많은 나라들과 함께 북한 주민들이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풍요로운 미래를 전적으로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투자를 끌어 모으고 사회기반 시설을 향상시키고 식량 안정화를 높이고 경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을 준비를 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즉 “이런 번영은 비핵화와 평화와 더불어 북미 관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비전”이라는 게 비건 대표의 결론이다.

다시 정리해서 “우리가 탐험할 수 있고 우리 외교의 다른 부분에 힘을 실어줄 지점이 많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지금 변곡점에 있다. 거의 2년 동안 최대한의 압박 활동을 벌였고 압박을 점차 강화해 2017년에는 정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우리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양의 장애물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재를 유지할 것이고 동시에 우리는 외교 활동을 진전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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