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한국당 연루돼
대법원이 문건 공개 거부
검찰도 공소장 공개 어려워
결국 검찰의 수사로 압박
서 의원 케이스로 보는 중대성
3당 공조로 양당 압박 가능하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에 대한 탄핵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탄핵 소추를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그게 작년 11월이었다. 이미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의 특별재판부 설치 입법 공조를 공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적시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재판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당은 스탠스가 애매해졌다.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국회의원의 재판 청탁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바른미래당은 <국회의원 재판 청탁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무엇보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법원 간의 관행이라는 반응이 나오자 3당은 더더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재판 청탁 관련 요구서를 전달하고 있는 김관영 원내대표, 채이배 의원, 오신환 의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법사위 소속)은 김관영 원내대표와 함께 지난 7일 대법원을 항의 방문했다. 채 의원은 사전에 대법원을 상대로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적시된 행정처 생성 문건들 △20대 국회의원과 친분있는 법조인 평판 정리 문건 △재판 관련 법관에 대한 내부 윤리 규정 등을 공개하라고 요청해놨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사 및 재판 절차가 진행 중” 그리고 “비실명화 등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개인정보나 사생활 비밀을 과도하게 침해되고 그걸 막기 어려워 실질적으로 내용을 비공개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고 개별적으로 의원의 자료 제출 요청이 있을 경우 해당 의원에 대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음”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문건 공개를 거부했다.

채 의원은 1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지금 법원행정처장(조재연 대법관)도 굉장히 보수적이다. 계속 (대법원이) 국회와의 관계를 조심하는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은 당연히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수사팀장이 갖고 있는 만큼 검찰에 요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채 의원은 “검찰이 이것은 수사 증거 내용이기 때문에 공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공소장을 직접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채 의원은 “결국 압박할 수 있는 것은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거다. 검찰이 가서 법원을 더 압박하는 거다. (압수수색 영장이 따로 더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다. 지금까지 (검찰이 수사를) 해놓은 게 있기 때문에 (대법원이 자진해서) 관련 서류를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따로 검찰이 수사를 추진하라고 (압박)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채 의원은 검찰 수사를 통해 법원이 압박받는 상황을 예측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무엇보다 다른 사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법원에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되지만 상대가 대법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방법이 없는 답답한 형국이다.

현재 서 의원 외에도 유동수 의원(민주당), 전병헌 전 의원(민주당), 홍일표 의원(자유한국당), 노철래 전 의원(한국당), 이군현 전 의원(한국당) 등이 모두 재판 청탁을 했다는 사실이 문건으로 기록돼 있다. 민주당이 관행이라고 치부했고 무엇보다 대법원이 절대 문건 공개를 하지 않을 기세를 보인 만큼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의원들이 연루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법사위 간사)은 대법원 앞에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과거 관행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법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관행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말한 관행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 (스스로)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의 재판 청탁 내용은 이런 거다. 

서 의원은 지역구 선거를 치를 때 연락사무소장으로 도움을 준 지인의 아들 A씨 재판(강제추행 미수)에 대해 딱하게 생각해서 국회에 파견된 법관을 직접 의원실로 불러(2015년 5월) 구체적인 사항을 청탁했다. A씨는 2014년 9월 피해 여성에게 접근해 바지를 내리고 추행을 시도했지만 여성이 우산으로 방어해서 기수에 이르지는 못 했다. 과연 A씨가 피해자 코 앞까지 다가가 껴안으려 한 것이 강제추행 미수에 해당되는지 법리 다툼의 소지가 있었다. 양형이 무거운 강제추행 미수가 아닌 공연음란죄로 죄목을 바꿔달라는 게 서 의원의 청탁 내용이었다. 청탁은 ‘국회 파견 판사 →임 전 차장 →문용선 전 서울북부지방법원장 →담당 판사’로 전달됐지만 내용대로 죄목이 바뀌지는 않았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지인 사정을 딱하게 여겨 민원성 청탁을 해왔던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간단치 않다. 피해자 측도 법관을 불러내 원하는 판결을 내려달라고 부탁해서 그게 사법부 내 실세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제로다. 소송 당사자가 재판부에 합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변호인 의견서와 탄원서 뿐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채 의원은 이해관계 방지법 입법 관련해서 1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시도에 대해 집권 여당이 너무 안일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구나 최근 들어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법정구속 선고 이후 민주당이 뒤늦게 재판 결과를 강하게 문제 삼고 사법농단 청산을 외치면 옹색해질 수밖에 없다. 

문정선 평화당 대변인은 7일 논평을 내고 “사법 개혁과 재판 불복을 나란히 세워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헷갈린다. 민주당의 목표가 사법 개혁인가? 사법부 길들이기인가? 사법 개혁이 목표라면 재판 불복이 아니라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부터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워낙 이슈들이 많이 터지고 있음에도 재판 청탁 문제에 대해 3당의 공조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양당은 각각 이해관계가 걸리게 돼버린 상황이라 결국 3당이 협조해서 전방위로 압박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1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와 만나 “애초에 (재판 청탁 논란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강하게 제기했던 문제라서 그 부분은 충분히 (3당이) 같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정신없이 이슈가 일어나다 보니까. 사실 맨 처음 특별재판부, 법관 탄핵이 나오다가 그것도 다 뒤죽박죽 섞여 버린 것이다. 실타래를 딱 잡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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