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초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 분량만 300쪽
한동훈 검사가 설명하는 향후 계획
연루 판사들에 대한 기소 여부 검토
이후 외부 인사 공모 여부 판단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모든 게 최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됐다. 

한동훈 3차장검사(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수사팀장)는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기소 방침을 밝혔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불구속으로 기소했다. 

한동훈 검사(오른쪽)를 비롯 수사 검사들이 사법농단 수사 결과와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 내용에 대해 브리핑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총 47개이고 공소장만 296쪽에 달한다. 적용 죄목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퇴임시까지 재판 거래 등 사법농단의 우두머리로서 최종 컨펌을 내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판 거래 의혹 사항들만 해도 16개(콜택 해고·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시국선언·진도군 민간인 희생·키코·통상임금·코레일 자회사 법인설립등기·철도노조 파업·긴급조치 국가배상 소송·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쌍용차 정리해고·문인 간첩단·이석기 전 의원·KTX 해고 승무원·긴급조치 불법구금·대구 10월·전교조 법외노조)에 이른다. 

이밖에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한 사례들(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 고의 지연·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등)도 많다. 끝이 아니다. 비자금 조성, 법관 블랙리스트, 민간인 사찰, 헌법재판소 정보 불법 수집, 법률신문 기사 대필,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압박 등 크고 작은 불법 혐의들은 더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맞는 재판 결과를 만들어주고 △상고법원 도입 △법관 해외파견 등의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는 대가성을 상정해놨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에 응하는 전략으로 3가지 즉 △물증이 확실치 않으면 일단 무작정 부인 △결재 서명과 같은 물증이 있으면 실무자에 떠넘기기 △사실관계 인정하더라도 범죄 불성립 주장 등을 구사했다. 이를테면 현직 대법원장임에도 김앤장 로펌 소속 변호사(일제 전범기업 측의 변호 담당)를 만난 팩트를 통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추궁당하면 양 전 대법원장은 그런 적이 있지만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끝내 구속되고 사상 최초로 법정에 서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끝내 구속되고 사상 최초로 법정에 서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법농단의 범죄 성립 유무를 가르는 직권남용죄는 보유한 권한 범위 내에서 그 권한을 남용해야 한다. 법률의 헛점이지만 권한 밖의 지시를 해서 남용하면 법망을 피해갈 수도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약한 고리를 최대한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을 법정에 세웠으므로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진두지휘 했던 한 검사는 이렇게 8개월의 수사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앞으로 공소 유지만 남았다. 

한 검사는 “결과적으로 정의가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판도 매우 중요하다. 그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겠다. 아직 법원에서 몇 개 재판부에서 진행할 것인지 등이 결정이 안 됐다. 그것에 따라 투입되는 인원이나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 과정에서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 대략 100명에 대해서는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더라도 대법원에 징계를 위한 사실 통보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연루 판사들에 대한 추가 기소 여부를 판단한 뒤 외부 인사들의 공범 여부를 가리겠다고 밝힌 한 검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추가 기소의 기준에 대해 한 검사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범죄 혐의에 가담한 정도, 중대성, 수사에 협조한 정도”를 제시했다.

재판 청탁에 연루된 전현직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법원 외부 인사에 대한 처벌 여부는 법원 내부 인사에 대한 기소 여부 처리 이후에 진행될 것”이라며 “내부 인사들 처리가 우선적으로 정리돼야 법원 외부 인사를 공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박병대·고영한·임종헌 등 네 사람에 대한 기소에만 집중했다. 법관 내부 인사들의 기소에 대해서는 당시 지위나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겠다. 양 전 원장을 비롯한 이들에 대한 기소를 위해 하나 하나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나머지 관여 법관들에 대한 기소 기준은 오늘 기소 이후에 집중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관여의 정도를 비춰봤을 때 양 전 원장을 비롯한 네 사람에게 견줄 만한 대상이 있지 않다는 것에 다른 분들도 동의할 것이다. 오늘 기소는 정확히 양 전 원장 구속 만료에 맞춰서 이뤄진 것이다. 특정 사람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사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 검사는 수두룩한 혐의들이지만 각각 성격이 다르다는 의미로 “포괄일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반복성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유사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안은 그렇지 않다. 실체적 경합으로 보는 것이 맞아서 그렇게 기소했다”고 말했다. 

여러 형태로 재판에 영향을 주는 일체의 행위에 대해 한 검사는 검사 동일체 원칙(검찰권의 행사에 있어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하복종관계)과는 달리 “개별 재판과 절차에 대해서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 사법 시스템은 절차와 재판의 내용이 직결된다. 재판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한다든가 내용에 대해서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확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네 사람(양승태·임종헌·박병대·고영한)에 집중했다는 한 검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 증거와 정황을 구성하는 하급 판사들의 진술 그리고 결재 서명 등이 있지만 혐의 입증에는 다툼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한 검사는 “문건을 실제 작성한 분들의 진술도 있고 문건이 보고된 경위를 보면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지시한 것에 대한 답변이 있다든가 지시를 내부적으로 검토를 했다고 하면 지시에 대한 답 같은 것이 내부 이메일에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 소송과 관련 재판부 배당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에 대해 한 검사는 “(박 전 대법관의 의도 아래) 실질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배당이 이뤄졌다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법원행정처 지시에 따른 것이다는 진술이 있어서 이번 공소장에는 포함됐다. 다만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달라서 이 부분을 아직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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