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당 통치자들도 이미 인정해
북한군 개입설이라는 허구
5.18 특별법 조사 범위의 의미
4당의 대응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의 판단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던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2013년 6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자유당을 만들었고 민자당은 현재 자유한국당의 뿌리다. 김영삼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8일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공청회>가 열렸고 가짜뉴스를 주장하고 있는 지만원씨는 국회의원 초청으로 무대에 올랐다. 원내 1석인 극우 정당 대한애국당(조원진 대표)이 주최한 행사가 아니었다. 제1야당인 한국당 소속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주최했다.

이종명 의원은 이번 5.18 파동을 일으킨 3인 중에서 가장 강한 발언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종명 의원은 이번 5.18 파동을 일으킨 3인 중에서 가장 강한 발언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기서 두 의원과 함께 김순례 의원의 망언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원내 4당은 물론 한국당 내에서도 지탄과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거대 양당은 보통 명백한 잘못과 흠결이 수면 위로 떠올라도 부인하거나 적반하장식으로 소위 말해 내로남불의 행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론의 역풍과 정치권의 총공세가 빗발치자 세 의원도 꼬리를 내렸고 지도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뭔가 답답한 대목이 있다. 크게 △역사적 해석의 다양성 차원 △유공자 명단 공개 등이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청회에서) 발표된 발제 내용은 일반적으로 역사 해석에서 있을 수 있는 견해의 차이 수준을 넘어 이미 입증된 사실에 대한 허위 주장임이 명백했다. 또 일부 발제 내용 중에는 헌정 질서 문란 행위자를 옹호하는 대목도 있었음을 확인했다. 아울러 행사에 참석한 우리 당 의원들의 발언 역시 부적절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신념에 앞서 객관적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보수의 가치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우리 당 강령에 제1의 사명으로 명시하고 있는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 존중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알다시피 5.18 북한군 개입설은 지난 39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기관의 조사를 통해 근거가 없음이 확인됐다. 공당의 국회의원이 이런 주장에 판을 깔아주는 행동도 용인돼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를 미리 막지 못 한 책임이 크다. 당 중앙윤리위원회에서는 (세 의원 뿐 아니라) 비대위원장인 내 관리 감독 책임도 엄중히 따져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사실 행사를 미리 막지 못 해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한 망언에 대해 김 위원장도 역사 해석의 다양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 지점을 사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1일 오전 김 위원장은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보수 정당 안에 여러 스펙트럼과 견해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자체가 보수정당의 생명력”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9일 보도자료를 내고 “(5.18 민주화운동을 존중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5.18 단체들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위원 선임이 늦어졌다고 비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외면하고 누군가를 공격하고 폄하하기 위해 왜곡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아니고 날조이자 범죄 수준에 이르는 잘못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12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나찌 학살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면 아무도 동의할 수 없지만 그건 하나의 의견 형태를 띤 것이다. 그런데 나찌 학살 자체가 없었다고 하면 이건 의견이 아니다. 날조다. 5.18은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다. 이건 날조다. 의견이 아니다. 다양한 스펙트럼도 아니고 이런 날조를 소수 의견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거짓말을 보호하고 방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종명 의원은 12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마련된 5.18 진상규명법의 3조 조사범위에 명시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에 대한 검증과 다양한 의견 수렴은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본 임무다. 5.18 관련된 두 가지 큰 쟁점인 북한군 개입, 북한국 침투 조작 사건에 대해 이념 논쟁이 아닌 승복력 있는 검증 그리고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5.18 유공자 명단 공개가 즉각 이뤄지면 징계와 제명이 아닌 나 스스로 국회의원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가 명명백백히 규명돼 순수하게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광주 시민의 명예가 회복되고 명에 의거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희생된 국군의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5.18 어머니들이 국회로 향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작년 2월28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3조 6항을 보면 조사 범위 항목으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사건”이라고 돼 있다. 김 위원장도 언급했듯이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판단은 법원, 국방부, 보수 정부의 통치자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으로 일관적이었다. 다만 한국당까지 유인해서 법안 통과를 시키기 위해 그 문구가 정치적으로 들어간 측면이 있다.   

실제 작년 2월2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의원은 “법안의 초안을 보면 북한군 개입의 어떤 날조 조작 이런 것들을 조사하도록 했는데 그것을 조사하려면 규명 여부를 명확하게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지난번 공청회 때 내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를 규명 범위에 넣자(고 했다)”고 발언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기자와의 메시지 교환을 통해 “법 제정 과정에서 이종명 의원이 우겨넣었다고 나온다. 원래는 북한군 침투 조작사건이었는데 북한군 개입 여부를 이 의원 법안심사 과정에서 우겨넣은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리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다시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된 맥락을 보면 2017년 계엄군의 헬기사격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이밖에도 공군의 전투기 출격 대기와 집단 성폭행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그래서 기존에 클리어하게 규명되지 않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 대량 학살(광주 주남마을) △1980년 5월21일 13시 집단 발포에 대한 최초 명령자와 지휘계통 책임자 △5.18 행방불명자의 규모와 소재 △1988년 5월 청문회 대비를 위한 국방부와 국군 보안사령부의 ‘5.11 연구위원회’ 결성 및 진실 왜곡 등이 포함됐다. 함께 밝혀내자는 특별법 제정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지만원씨가 한국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논의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5.18 어머니들이 국회를 찾아 농성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정선 평화당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만약 백번 천번 양보해서 북한군이 개입했더라도) 자신들이 (그때) 여당이었다. 그러면 국방이 뚫렸다는 것인데. 그때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해명해야 되지 않는가”라며 “자괴감이 든다. 한국당 내에서 권영진 대구시장 조차도 부끄럽다고 한다. 정치권도 이제는 뭔가 잘못됐다고 했을 때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 의원처럼 북한군 개입 여부에 논란이 있다는 식으로 사실관계 검증을 하자는 행태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차종수 5.18 기념재단 연구원은 <뉴스공장>에서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7가지 가짜뉴스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1980년 당시 중앙일보 소속이었던 이창성 기자가 직접 찍었던 사진을 모아 책을 냈는데 지씨가 이걸 다 가져가서 광주시민을 북한군이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사진들은 군 보안대(경찰 성격의 군사조직)가 보관 중인 것인데 당시 사진병들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지씨가 이걸 또 북한군이라고 주장했다. 보안대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제보가 왔는데 북한군이 전혀 아니기도 하고 비공개인 보안대 사진들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유출 경위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항의했다.
Ⓒ5.18 국립 묘지에 북한군 시신이 묻혀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 12명 모두 행방불명자 묘지다. 그 12명도 DNA 검사를 통해 8명은 신원을 확보했고 4명만 못 찾았다. 
Ⓓ2014년도 5월 충북 청주 공동묘지에서 확인되지 않은 420구 시신이 발견됐는데 이게 북한군 시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법의학자들과 직접 확인했는데 5.18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때 홍수나서 일반 공동묘지가 쓸려나가서 그렇게 된 것으로 정리됐다.
Ⓔ실제 탈북자 중에 5.18 사진 속 특정 인물이 북한군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런 주장을 하는 일부 탈북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통적으로 옆집, 삼촌, 처남, 형제, 자매들로부터 왔다갔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그런 탈북자들이 쓴 책을 다 읽고 비교 분석해보니 허무맹랑했다. 본인이 직접 북한에서 광주로 왔다고 하는 극소수 탈북자가 있는데 이들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 국방부에 문의해보니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됐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다고 공문으로 답변이 왔다. 
Ⓖ북한군이 땅굴파고 광주에 왔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국방부 육해공군의 무능함으로 반박하니 말을 바꿔서 서해안 배를 타고 왔다는 식으로 꼬리를 내렸다. 당연히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하다. 

지만원씨는 5.18 관련 왜곡과 망언을 일삼아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유공자 명단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는 게 진의였지 5.18 유족들에 대해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식으로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양새다. 국가 보훈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공공 재정이 있기 때문에 잘못 전달됐다면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비춰지기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2018월 12월 일부 극우 세력이 보훈처를 상대로 제기한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소송에서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사항은 유공자들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된다”며 원고의 요청을 불합리하다고 결론내렸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관련 법률>에 따라 보더라도 5.18 유공자 명단은 공개 대상이 전혀 아니다. 

즉 독립 운동 유공자 외에 모든 역사적 사건에서의 국가 유공자 명단은 비공개가 대원칙인데 유독 5.18 유공자만 공개하라고 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자체를 폄하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4당은 매우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 

①한국당 지도부에 강력한 징계를 촉구하고 있고 ②국회 윤리위원회 제소를 통한 제명 절차에 들어갔고 ③명예훼손과 모욕으로 고소고발이 이뤄졌고 ④한국판 홀로코스트법(역사적으로 규명된 사건을 부정하고 왜곡하면 처벌)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도 5.18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한국당이 추천한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사무처장과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에 대해 5.18 폄하 경력이 있다면서 임명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①②은 한국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국회의원 제명은 199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당 윤리위에 회부했듯이 그 결과에 따라 징계가 내려지면 김순례 의원과 김진태 의원은 전당대회(2월27일) 출마 자격이 박탈된다. 두 의원은 각각 최고위원과 당대표 후보로 출사표를 냈다. 

여론 역풍에 떠밀려서 한국당 지도부의 사과가 나왔지만 사실상 국회의원직을 강제로 그만두게 하거나 형사처벌을 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③과 관련 이미 지만원씨에 대한 법원 판단이 있었다. 지씨는 명예 범죄의 성격에 따라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피해자로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지씨의 주장이 명백한 가짜뉴스이고 그런만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반전될 정도는 아니라서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취지다. 즉 그 당시 사진을 근거로 개개인을 지칭해서 북한군으로 매도한 지씨의 행위는 명예훼손 유죄가 인정됐지만 한국당 세 의원이 5.18 민주화운동을 통으로 폄하하고 왜곡한 것은 현행법으로 처벌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홍성문 평화당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여러 5.18 관련 법적 판결(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 선고)이 나와있음에도 국회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은 당연히 명예훼손이 해당될 것 같고 모욕도 맞을 것 같다”며 현행법으로도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④이 중요하다. 향후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공연한 왜곡 행위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당이 공조해서 한국당을 압박한다면 정치적으로 ④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한편, 한국당 출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2008년과 2013년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5월 기념사를 했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식적인 기념사를 발표했었다.

이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 운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와 진실을 위해 앞장서 온 광주 시민과 전남도민 여러분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크나큰 아픔으로 남았지만 우리가 지금과 같은 민주 사회를 이루는 데 큰 초석이 됐다. 우리 국민은 지혜로웠다. 5.18 민주화운동을 과거의 사건으로 묻어두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동력으로 승화시켜서 위대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냈다.”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33년의 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의 슬픔을 지우지 못 하고 계신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광주시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영령들께서 남긴 뜻을 받들어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그 희생과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우리나라를 더욱 자랑스러운 국가로 만들어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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