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회의적인 미국 민주당의 인식
1994년 제네바 합의 상기
힐러리 집권했다면 달랐을 것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줄 선물도 의회 허락맡아야
한국 민주당의 공공 외교 필요성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미국도 한국과 같이 사실상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 체제라서 야당은 집권 정부의 모든 정책을 폄하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반 트럼프 정서에 기반해서 북미 비핵화 협상을 매우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초당적 국익의 관점 이전에 트럼프 정부가 못 해야 정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깎아내리기 일쑤다.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의원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해 “(이번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단의 방미 일정을 보고)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로. 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장악한 깅그리치 미국 공화당이 제네바 합의를 집중적으로 비판해서 8년 뒤인 2002년에 사실상 무산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환기했다.

송영길 의원은 과거 공화당의 발목잡기를 환기하면서 민주당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송영길 의원은 과거 공화당의 발목잡기를 환기하면서 민주당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송 의원은 “그때 민주당이 공화당의 공격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켜서 새롭게 당선된 미국 민주당 의원들께 그때의 경험을 상기시키고 초당적으로 반 트럼프 정서를 넘어서 민주당이 추구해왔던 북미 간의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의 필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나도 알고 있는 미국 민주당 의원들에게 서면으로 계속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의 인식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민주당의 수장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우리 시간으로 13일 오전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여야 대표단과 1시간 넘게 회동했다. 워싱턴DC 인근 기자간담회에서 문 의장과 여야 대표단의 전언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우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을 비무장화(demilitarization)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작년 정상회담은 김정은에 대한 선물에 불과했다. 지금은 말이 아니라 증거가 필요하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optimistic)이지는 않지만 희망적(hopeful)이다. (북미 협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내가 틀리고 당신들(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맞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펠로시 의장은 남북미 비핵화 협상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사진=국회의장실 제공)
(사진=박효영 기자)
펠로시 의장과 면담 중인 문 의장과 여야 대표단. (사진=국회의장실 제공)

별도로 일정을 수행 중인 자유한국당 방미단은 14일 공화당 소속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을 만났다. 한국당은 미국 민주당처럼 한반도 문제가 문재인 정부의 꽃놀이패로 귀결되는 것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3 YES(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한미 협력·북핵 협상에서 한미일 정책 공조)와 3 NO(주한 미군 감축·한미 훈련 중단·완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 전 제재 완화 반대)’ 원칙을 전달했는데 방점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를 꽉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찍혀 있다.

여당이지만 가드너 위원장도 나 원내대표와 보조를 맞추는 차원에서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해제 결정을 내려도 미국 법에 따라 행정부 마음대로 대북 제재를 해제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제재를 해제할 경우도 미국 의회와 상의해야 한다”며 “CVID(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가능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김정은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있을 수 없고 2차 미북 정상회담이 비핵화를 위한 행동없는 레토릭에 불과한 약속을 도출할 것이라면 차라리 취소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제재 완화의 기초 단계로 여겨지는 남북 경제협력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재가동은 제재 해제로 (북한에게) 보일 수 있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압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코리 가드너 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는 한국당 방미단.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이미 자주 거론되고 있는 종전 선언에 대해서는 “CVID 이전 불가할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한국과 함께 종전 선언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북한에게 분명히 알려야 하고 미북 협상에서 평화를 위한 로드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가 북한 문제에 대해 더 많이 개입할수록 더 좋은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동석했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2005년 조지 부시 정권)은 더 나아가 “우리는 김정은을 잘 모르지만 김정은은 자존심을 건드려 감언이설로 트럼프 대통령을 속이고 평화조약, 주한미군 철수, 스몰딜(오직 ICBM만 제거) 등의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북한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데 한반도 평화는 기대만으로는 부족하고 평화 체제를 먼저 추진한 이후에 비핵화를 고려하는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내 학계, 언론, 시민사회 가릴 것 없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있는데 펠로시 의장 역시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기조가 강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회의론에 기반해서 트럼프 정부의 성과로 귀결되는 모양새를 정치적으로 원치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정부도 2017년 내내 “Totally destroyed”로 대변될 정도로 북한과 전쟁 직전까지 가려고 했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연초 김 위원장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아서 깔아놓은 협상판에 트럼프 정부도 뛰어들게 된 것이다. 만약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민주당이 대북 정책을 바라보는 기조가 아예 달랐을 것이다. 

문 의장은 미국 민주당의 북한에 대한 불신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진=국회의장실 제공)

문 의장은 15일 새벽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메인홀에서 연설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신뢰 여부는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는가.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따르는지에 달렸다. 미국 의회 측에서 특히 펠로시 의장을 중심으로 한 진정성에 대한 의문은 (북한의) 행동을 증거로 믿을 수 있는가였다. 바로 그 대목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민주당 소속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과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위원들의 북핵 해법에 대한 질문에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 만들어졌던 페리 프로세스(2000년 빌 클린턴 정부 말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포괄적 해법)인데 미국이 처음에는 선 비핵화 후 제재 완화로 갔지만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단계적 동시적 추구로 갔다”며 미국 정치권을 설득하려고 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가져간 미국 민주당은 관행에 따라 하원의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점하게 됐다. 그러면 얼마든지 청문회를 열어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견제할 수 있다. 더구나 미국 정부 차원의 대북 제재 완화를 하려고 해도 가드너 위원장의 발언처럼 의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해찬 대표는 공공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민주당이 너무 옛 정보에 얽매이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북한은 미국의 상응조치로 부분적 제재 완화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고 이게 없으면 핵 리스트 신고를 포함해서 여러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실질적인 조치를 선물로 받고 다시 의회에 어필해야 하는 매우 난처한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연석회의에서 “(미국 의회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느낀 것을 정리해보니까 공공 외교를 훨씬 더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분들이 알고 있는 정보라는 것이 언론을 통해서 주어진 단편적인 정보라든가 아니면 본인의 오래된 옛적 정보를 갖고 지금 상황을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최근 북쪽이 변화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 정보 공유가 잘 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당과 정부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들에게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공공 외교가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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