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의 주고받기
노동계에 치명적인 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선 간극
민주노총의 강경 투쟁 예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회적 대화의 바로미터였던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대해 합의안이 도출됐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지만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사용자 측(한국경영자총협회)과 타협했다. 가장 쟁점이었던 초과근로수당과 과로 문제에 대해 보완하는 방안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탄력근로 기간 연장 합의안을 의결하고 발표했다. 경총과 한국노총은 이날 오전부터 마라톤 협상을 지속했고 이견을 좁혀갔다.

노사정이 뜨거운 감자인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합의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이철수 서울대 법학과 교수(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 손경식 경총 회장의 모습. (사진=경사노위)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기간은 기존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 
②과로 방지를 위한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③노사 서면 합의로 탄력근로제 도입 가능 
④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방지를 위해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무에 대해 사측이 임금 지급 플랜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

일단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다. 기업이 추가 채용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기존 노동자에 대한 시즌별 과로를 강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주 52시간(1일 8시간 X 5일 X 연장근로 12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인데 탄력근로제 3개월(13주 X 52시간 = 676시간) 기간 동안에는 전체 노동시간 범위 안에서 특정 주에 몰아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제약이나 계절 식품 업계 등은 특정 시즌에 수요가 몰리기 때문에 탄력근로제 기간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특히 노동계는 원래 기본 40시간 외에 연장 노동시간인 12시간에 대해 초과근로수당을 법률에 따라 1.5배 더 지급해줘야 하는 것이 탄력근로제로 인해 무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제는 ④에 따라 사측은 3개월을 넘어가는 탄력근로에서 노동자의 초과근로수당이 미지급되지 않도록 별도의 수당 지급 방안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단 노사가 수당 지급 방안에 대해 서면으로 합의하면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회사가 과태료만 내면 되기 때문에 통제할 장치가 실효적이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 한 취약한 사업장에서는 사실상 사측의 일방적인 탄력근로 결정이 이뤄질 우려가 크다. 

경사노위 합의 당사자들은 고용노동부의 전수조사로 사측을 감시할 수 있다면서 부작용 최소화를 거듭 강조했다.

(사진=경사노위)
이 교수가 합의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경사노위)

하지만 박훈 변호사는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노사 합의를 해야 한다면 노동조합이 힘이 있는 사업장은 (탄력근로) 도입 불가능하다. 그럼 어디에 도입될까. 뻔하다. 무노조, 어용노조 사업장이다. 어디겠나.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이다. 이들 임금은 동일 업종 정규직 40%에서 70% 수준(임금)”이라며 “노동조합 조직률이 11%가 되지 않는 이 쪽팔린 나라에 피빨리는 노동자들을 더 피빨아 먹겠다고 하는 것인데 잘 빨아 먹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②도 중요하다. 3개월 초과 탄력근로에 대해서는 하루 일하면 다음날까지 다시 일하기 전까지 법적으로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한다. 상황에 따라 노사가 사전에 서면 합의를 하면 11시간 의무 보장의 예외가 허용된다. 중요한 것은 하루 24시간에서 11시간을 빼더라도 13시간이 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졌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많은 고민 속에 책임있는 노동 단체로서 2000만명 노동자의 건강권과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탄력근로제 관련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만큼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도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보이콧이 아닌 사회적 대타협에 나섰다는 것인데 전반적으로 보면 과로 문제와 수당 미지급 방지를 위해 △기간 6개월 확대 △노동시간 사전 확정 기준을 일별이 아닌 주별로 전환 등 기업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기브 앤 테이크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사진=경사노위)
김주영 위원장은 최악의 결과를 막기 위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하지만 노동시간 사전 확정 기준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 전문가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 사측의 일별 노동시간 의무 편성으로 장시간 노동을 막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주별 시간만 정해놓고 그걸 사측이 하루 단위로 임의 편성을 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물론 사측이 최소 2주 전에 일별 노동시간을 노측에 의무 통보하기로 규정해서 보완했다. 예컨대 향후 3주간 사측이 주별 60시간을 편성했다면 2주전에 일별 노동시간이 어떻게 짜여질지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도 “천재지변, 기계 고장,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 정해진 기간 내 1주 평균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 노동자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주별 노동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뒀다.

노동자연대는 20일 성명을 내고 이 대목에서 “협의는 합의가 아니다. 사측이 공문 한 장만 보내면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민주노총은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0일 성명을 내고 “경총이 넣은 탄력근로제 개악 민원을 정부와 국회가 덜렁 받아 답을 정해놓고 대화 상대를 압박해 합의를 강요하는 것을 사회적 대화라 평가할 수 있는가”라며 “야합 당사자들이야 내용과 무관하게 노사정이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할지 모르지만 (한국노총은 용인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민주노총에서는 지도부 탄핵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이번 경사노위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했지만 정확히는 아직 절차가 남아 있다. 경사노위 운영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처야 한다. 자신 있는가. 아니면 경사노위법 취지를 무시하고 일개 의제별 위원회 결정 내용만 국회로 통보하는 불법을 저지를 심산인가”라고 강조했다.

(사진=경사노위)
20일 광화문에서 투쟁 시위를 열었던 민주노총. (사진=연합뉴스 제공)

경사노위 법률에 따른 위원 구성은 18명이어야 하지만 현재는 민주노총 몫이 빠진 17명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노총이 의결 저지선의 변수가 되지 못 하고 노사정이 합의한 것이라 상위 의결 과정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낮다. 경사노위 합의안이 국회로 넘어오더라도 정의당의 강력 반대를 제외한 나머지 원내 4당은 모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 본회의 의결을 저지할 그 어느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비롯한 강경 투쟁 노선에 또 다시 모든 것을 걸 기세다.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는 오는 3월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 위해 전국 사업장을 돌면서 조직화 전략을 짜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노총의 한국노총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데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길이 열려 있고 참여할 수 있음에도 참여하지 않고 반대만 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며 “반대 투쟁을 해서 법 개악을 막을 수 있다면 한국노총도 그 길을 갈 것이지만 역사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밝혀 사실상 민주노총과의 협력 노선에 결별을 고했다.

좀 더 나아가 김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2월 국회 처리를 예고하고 탄력근로 확대 문제를 경사노위로 넘긴 이후에는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었다. 반대만 하다가 합의 안 된 내용을 국회에서 최악의 내용으로 개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2018년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당시의 상황을 환기했다. 

노동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여야 합의로 최저임금 인상분을 상쇄하게 만드는 가장 나쁜 제도가 통과됐던 그 정치적 상황을 되풀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회의는 경사노위 하위 위원회 중에서 가장 뜨거웠다. (사진=경사노위)

사실 한국노총도 1월 말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 사측에 경도된 주장을 경사노위 공익위원이 채택하려 한다면서 대화 잠정 중단을 선언했었다. 탄력근로제 기간 연장에 대한 결론이 발표될 디데이도 하루 연기됐을 정도로 고심이 치열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는 △최저임금 결정 체계 이원화 △ILO 핵심협약 비준 △비정규직 철폐 등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노동계와 첨예하게 대립할 화약고적인 의제들은 산적해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총 없는 경사노위의 첫 합의가 향후 노사정 대타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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