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으로 정의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다. 정의라는 가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사회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일원인 기업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의를 논하는 시대에 기업에게 요구되는 윤리기준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정의(正義)를 요구하는 사회

지난해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최근 국내에서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고 한다. 인문서가 밀리언셀러에 오른 것도 이례적인데 그것도 우리 출판 역사상 최단기간인 11개월 만에 이루어 낸 성과라 하니 더욱 놀랍다. 올해 초 EBS에서 방송한 샌델 교수의 하버드 대학 특강은 시청자들의 요청으로 자정이라는 늦은 시간에 편성된 방송이 한 시간 앞당겨지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이라는 후광효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드롬에 가까운 ‘정의란 무엇인가’의 높은 인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원하는 화두를 적시에 던져 준 결과로 이해된다.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은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대중 가수, 연기자, 아나운서, 댄스, 피겨 스케이팅 등 다양한 분야의 경합이 주말 채널을 점령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은 것은 이미 수 년 전인데 이제서야 한국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력은 있으나 외모가 떨어져서, 배경이 부족해서, 혹은 체계적인 교육의 기회가 부족해서 기존 선발 시스템에 명함을 들이밀지 못했던 참가자들은 오디션이라는 공개된 환경에서 경쟁한다. 시청자들은 조선족 청년이나 환풍기 수리공의 우승을 지켜보며 ‘아직 정의는 살아있다’고 위안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기획된’ 정의마저 무너질 때 대중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대중가수들을 경합시키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매주 이런 저런 사건과 루머로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데, 대부분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다. 처음 정한 규칙을 잘 집행하는지, 특정 참가자에게 편파적인 혜택을 주지는 않는지 등 경쟁의 결과보다도 경쟁이 벌어지는 환경에 사람들은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정의는 오늘날 가장 민감한 화두로 부상했다. ‘정의’라는 단어로 검색할 수 있는 뉴스는 아직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올해 벌써 2만 건 이상으로, 2006년 한 해 동안 검색된 기사보다도 많다(네이버 기사 검색 기준). 사람들이 정의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동안 당연히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공동체의 새로운 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기업들

기업은 사회라는 틀 안에서 존재한다. 사회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기업 시민’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기업에게 개인 단위의 시민과 동일한 사회적 책임을 부여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요구가 변할 때 기업 역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극대화다’라는 명제는 최근 들어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PR회사 에델만이 매년 전 세계 주요국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 2011년 한국 기업들이 받은 성적표는 충격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NGO 다음으로 높지만 우리 나라는 NGO, 언론, 정부와의 비교에서 최 하위를 기록했다. 기업의 신뢰도에 대한 절대적인 수치도 글로벌 평균인 58%보다 훨씬 낮은 46%에 그쳤다. 그렇다면 혹시 한국인들은 기업에 대해서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윤리적으로 더 높은 기대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한국에서 ‘기업의 주주 가치 창출을 위한 활동은 사회적 이익과도 합치해야 한다’에 동의한 응답률이 UAE, 일본, 브라질 다음으로 낮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조차 성립하기 어렵게 한다. 게다가 한국 기업에 대한 불신은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 기업은 BRICs 국가 기업들 다음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기업의 낮은 신뢰도는 사회가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결과다. 이것이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오해였든 변화된 사회적 요구에 발맞추지 못한 결과였든, 기업들은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대부분 큰 목소리로 동의하는 추세였다. 국가별 비교에서의 순위는 낮지만 절대적인 숫자에 의미를 둘 때, 우리나라도 열 명 중 7명은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이 사회적 이익과도 부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이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오래된 명제에 조금의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기업의 제일 큰 미션이 ‘이윤추구’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존재의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당한’ 이윤추구라 했을 때 ‘정당한’의 범위가 이전보다 훨씬 넓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정당한’ 기업 활동에 대한 생각의 진화

정의를 논하는 시대에 기업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훨씬 더 복잡한 것이 되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정의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내려주기보다는 오히려 정의는 상대적이고 상황적이다라는 것을 깨우쳐줄 뿐이다. 그의 가르침의 상당부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을 옹호하는 공리주의적 관점과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소수의 행복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존중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최대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인가라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 문제에서 선택은 불가피하다. 기업의 판단 기준이 경제적 가치 이상을 고려하게 될 때 선택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최근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어려움은 이미 시작된 듯 하다. 지난해 출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던 통큰 치킨 논란의 근원은 대기업 유통 체인과 지역 소상인들의 경쟁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대형 유통의 치킨 판매가 설사 순수한 사업 목적이라기보다 마케팅 활동의 일환일지라도 문제는 다르지 않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런 마케팅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소비자들조차도 찬반 의견이 엇갈렸다는 사실이다.

최근 구글은 불법 약 판매 사이트에 수억 달러 규모의 검색 광고를 판매해 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구글이 제약회사들의 불법을 알면서도 광고를 허용했는지의 여부다. 구글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상의 정보를 조합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이런 구글에게 광고주의 적법성까지 판단하도록 할 의무가 있는지 역시 과거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세계적인 금융 기관들의 몰락은 그간 시장에서 ‘창의적인’ 금융 기법과 ‘탐욕’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했는지를 보여주었다. 1980년대 제작된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영화 ‘월스트리트’는 지난해 20여 년 만에 속편이 제작되었다. 1편에서 ‘탐욕은 좋은 것’이라며 자본주의의 절대적인 신봉자로 등장했던 주인공은 2편에서는 가족과 소소한 행복의 가치에 타협한다. 영화가 시대의 욕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했을 때 주인공의 극적 변화는 새로운 가치의 부상을 말해주는 듯 하다. 하지만 속편에서도 월가를 쥐락펴락하는 주인공은 여전히 창의적인 금융가로 묘사되고 있어 탐욕과 창의성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새로운 가치로 이끄는 변화들

사회적 가치와 이에 따라 요구되는 ‘정당한’ 기업 가치가 진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 혹은 존재하지 않았던 갈등이 기술의 발달, 글로벌화 등을 통해 불거지게 되고 기업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이해관계의 상충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또 고객과 사회가 예전에는 관대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세상을 새로운 가치로 이끄는 힘과 그 영향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본다.

● 연결 세대의 정보력

지난해 미국 정부의 첩보 활동 내용을 만천하에 공개한 위키리크스는 정보력이라는 힘의 균형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위키리크스는 정부와 기업, 단체의 비윤리적 행위를 알린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고발전문 웹사이트로 익명의 제보자들에게 상당수의 정보를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는 정부, 기업, 주류 언론이 정보를 통제할 수 있었지만 연결된 개인의 힘은 오래된 방어벽마저 허물어뜨렸다. 서방 정부는 리더인 질리언 어샌지를 비난하고 법적 재제를 시도했지만, 그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를 지지했다. 지난 해에는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 더욱이 다음 번 타깃은 기업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 수많은 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트위터를 통해 고객 접점에서 발생한 사소한 문제가 일파만파 확대되고 관련 기업의 CEO가 직접 이를 해명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방에서 기업의 행동을 모니터링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10년 4월과 5월 국내 PR 컨설팅 업체 더랩에이치가 국내 10대 기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트위터 사용자와 비사용자간에 큰 차이를 보였다. 트위터 비사용자들에게 가장 높은 지지도를 얻은 기업이 트위터 사용자들에게는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지지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트위터라는 매체의 사용 여부보다 트위터 사용 집단의 높은 교육 수준이나 정보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정보의 소비는 물론 생산과 유통에서 강력한 파급효과를 지닌 소셜 미디어의 사용이 확대될수록 보다 많은 종류의 기업 활동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

‘사랑받는 기업의 조건(Firms of Endearment)’의 저자 라젠드라 시소디아 교수는 고령 인구의 급속한 성장이 사회의 시대정신을 변화시킬 것이며 아울러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40세 이상의 사람들이 성인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하고 이러한 작업은 기업문화도 재형성 한다는 것이다.

인간 욕구의 계층적 체계를 묘사한 매슬로우 피라미드는 생존, 안전과 안정, 소속과 사회, 존중, 자기 실현의 순서로 욕구가 진화하며 하위 욕구가 충족된 다음에야 상위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대로라면 물질적 충족을 어느 정도 달성한 지금의 사회는 보다 상위 수준의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가치, 자기 실현의 충족이 사실은 인간 본연의 욕구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매슬로우도 죽기 전에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며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어야 옳았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한다.

이론적인 설명은 차치하고 소비자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각종 설문 조사 결과는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친환경 소비와 같은 윤리적 소비에 동참할 것이며 비도덕적인 기업의 제품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LG경제연구원이 국내 6대 광역시 거주자 1800명을 대상을 한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좋은 물건도 부도덕하거나 불공정한 방식으로 판매하는 기업 또는 업체의 제품이라면 사지 않는다’에 50.8%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단순히 선언적인 것에 그친다는 반론도 많다. 하지만 개도국 자원과 노동력 활용 문제로 나이키나 네슬레가 혹독하게 경험했던 것처럼, 비윤리적인 노동력 착취나 기업 활동에 대한 비난은 분명 존재하며 앞으로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 기술의 진화에 따른 전에 없던 선택의 문제

아인슈타인이 핵무기가 민간인의 대량 학살에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핵무기 개발 권고를 후회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과학의 발전은 종종 그 발명가조차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전에 없던 기술의 발전은 기업들을 보다 많은, 예측 불가능한 문제들에 부딪치게 할 것이다.

이미 상용화에 상당한 속도를 내고 있는 배아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전자 변형 작물이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구원투수인지 생태계 질서의 파괴자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이러한 문제는 윤리 시험 문제와는 달리 정답이 없거나 정답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난해하다. 수익 관점에서 따져보려 해도 시장의 장기적인 수익성을 전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만 날이 갈수록 전에 없던 선택의 문제들은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도 수익성 이상의 판단 기준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의 홀푸드는 이미 지난 2002년부터 유전자 변형 식품이 함유된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이러한 선택은 인간의 건강, 식량 생태계, 지구의 보존을 위한다는 기업의 기본 가치에 따라 이루어졌고 홀푸드를 차별화시키는 전략이 되기도 한다.

● 초국적 기업의 초국적 경쟁 심화

수익을 GDP로 환산했을 때 세계 20위권 국가와 맞먹는 월마트는 높은 인기와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업이다. 월마트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영향력을 가리키는 ‘월마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선진적인 관리 기법, 물류 및 구매에서의 규모의 경제를 통해 언제나 최저가(Everyday Low Price)를 실행한 월마트의 성공 전략을 경쟁업체들이 모방하면서 미국 도소매업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월마트 효과의 이면에는 개도국에서 수입해온 상품을 헐값에 팔아 영세 상인과 국내 제조업을 몰락시키고 종국에는 과도한 소비 조장으로 지구 생태계까지 파괴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월마트와 거래량이 많은 상위 10개 기업들 중 4개 기업이 파산했고, 5위 기업은 실적하락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든 이들과 협력해야 할 기업 스스로에게든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다.

한편 마이크로워크(Microwork)와 같은 초국적 인력 아웃소싱의 확산은 생산직 단순노동뿐 아니라 일반 사무직과 창의적 업무 분야에서도 고용의 글로벌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마이크로워크는 기업이 설문조사, 데이터 입력, 문서작업, 또는 특정 과제 중심으로 업무를 세분화시키고 웹을 통해 이를 수행할 인력을 조달하는 계약 방식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 글로벌 고용 시장의 장벽을 더욱 낮출 것이다. 특히 임금 경쟁력이 있는 신흥국으로 선진국 일자리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컨설팅사 Hacket Group에 따르면 미국에서 2008년부터 지금까지 감소한 일자리는 110만개에 달하고 2014년까지 13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줄어들 전망인데, 특히 해외 아웃소싱이 일자리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효율화를 위한 활동이 국내 고용창출에는 반하는 딜레마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다.

코카콜라는 인도 지역에 공장을 세울 때 수자원 고갈에 대한 지역 사회의 우려에 부딪쳐 기업의수자원 활용 전략 전체를 전면 수정하기도 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명제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즉 한 쪽의 가치를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다른 가치의 문제는 기업의 사업 영역과 경쟁 범위가 확대될수록 간과하기 힘든 문제가 되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정의를 요구하는 시대, 기업에 필요한 가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활동을 벌이는 캐나다 비영리기관 Natural Step의 리더는 최근 ‘CSR은 죽었다’는 제목의 기고를 했다. 오늘 날의 CSR 전략은 단순한 기부나 자선이 아닌 기업의 사업 활동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는 수준까지 진화되어 왔지만 이조차도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의 사업에 맞는 CSR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사업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로 생각의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CSR이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 자체가 기업의 미션이 되어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별도의 CSR 활동은 필요 없게 될 테니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최근 마이클 포터나 시소디아 교수, 프라할라드 교수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이러한 주장들과 일맥상통한다. 마이클 포터가 제시하는 공유가치(Shared Value) 모델은 기업들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목함으로써 기업의 이익과 사회 발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고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창의성이 발휘된다면 저소득층 시장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혁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늘 남보다 앞선 경쟁을 강조하던 석학들의 변화는 놀랍다. 앞서 시소디아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보다 공익적인 가치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데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 월스트리스저널은 점점 더 많은 MBA 졸업생들이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커리어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지 부자가 되는 것보다 좋은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내는 쪽으로 개인의 가치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기업은 변화된 가치에 따라 스스로의 목적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윤추구라는 너무나 당연한 목적 이외에 고객과 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종업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목적이 요구된다. 죽은 것은 CSR 뿐만 아니다. 숫자로만 말하는 세상도 힘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더 폭넓은 범위의 이해관계자를 신경써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충돌도 많아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는 모토의 구글도 불법 사이트 광고 혐의 등으로 벌금형을 받고 사랑 받는 기업의 대표 사례인 존슨앤 존슨 같은 회사도 의약품 안전 문제에 휘말린 전적이 있다. 그 어떤 기업도 완벽할 순 없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오해를 풀고 잘못을 사과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 그리고 평상시 쌓아놓은 신뢰의 자산이다. 기업 가치는 세상을 설득할만한 기업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시소디아 교수는 종업원과 지역사회에 대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랑 받는 기업이 일반적인 기업보다 기업가치가 9배나 높다고 밝히고 있다. 출판사와 마이클 샌델 교수만 정의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에 맞춰 기업도 스스로를 재정비할 때다.[LG경제연구원 정지혜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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