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도 거의 없는 휑한 전시장..."관심과 홍보 모두 아쉬워"

3.1운동 100주년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 (사진=신현지 기자)
3.1운동 100주년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시민청 시티갤러리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100년 전 국내의 전국 각지와 세계 곳곳의 한인지역에서는 일제의 압력에 강한 저항운동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 머물던 외국인들도 우리의 저항에 힘을 실었다. 특히 캐나다인들의 일제의 항거 노력은 한국의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서울시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파란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프랭크 스코필드’, ‘스탠리 마틴’, ‘아치발드 바커’, ‘프레드린 맥켄지’, ‘로버트 그리어슨’

캐나다 출신인 ‘프랭크 스코필드’, ‘스탠리 마틴’, ‘아치발드 바커’, ‘프레드린 맥켄지’, ‘로버트 그리어슨’ 등 다섯 명이다. 본지는 이들의 특별전이 열리는 서울시 시민청을 찾아 100년 전 타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다섯 명의 행적과 전시장의 표정을 전달해 보기로  했다. 

'스탠리 마틴'은 독립운동 희생자를 위한 대규모 장례식을 진행했다. (사진= 신현지 기자)
스탠리 마틴의 3.1운동과 관련한 일러스트 '스탠리 마틴'은 독립운동 희생자를 위한 대규모 장례식을 진행했다. (사진= 신현지 기자)

그러나 본지가 찾은  전시장은 휑했다. 관람객은 딱 두 사람. 국내의 독립운동가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여타 전시장과는 낮은 호응도였다. 이에 스코필드 박사의 사진을 비롯하여 4인의 그 행적을 담은 일러스트와 관련 영상물을 기자 혼자 독점하는 기분이었다. 

이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진과 영상은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 Schofield‧1889~1970)였다.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기 때문이지 몰랐다. 이에 먼저 그를 소개한다.

1889년 3월 15일 영국 워리크주(Warwickshire) 럭비(Rugby)시에서 태어난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우리나라와 인연이 된 것은 1916년,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들어와 선교사 자격을 받았고 이름 또한 한국어로 개명했다. '철석같은 굳은(石) 의지와 호랑이(虎)의 마음으로 한국인을 돕는(弼)'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이다.

그만큼 그는 한국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그러니 한국의 독립운동이 남다르지 않았을 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독립운동 현장을 사진에 담아 기록했고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보도해 당시 한국의 심각한 상황을 알렸다. 

이렇게 그가 한국인을 돕는 것이 알려지자 조선총독부가 강제출국 시켰다. 하지만 그는 캐나다로 건너가서도 한국을 잊지 못했고 이에 정부는 스코필드 박사에게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 34번째 민족대표로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여생을 마치며 남긴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정부는 1970년 외국인 최초로 고인을 국립현충원에 안장으로 영원한 한국인으로 남게 했다.

프레드릭 맥켄지가 직접 촬영한 3.1운동 사진 (사진=신현지 기자)

이어 프레드릭 맥켄지(Frederick A. Mckenzie‧1869~1931는 영국 런던의 종군기자로 영국에서 ‘한국친우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그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일제의 학살과 방화를 목격하고 그들의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The Tragedy of korea'를 발간하여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알렸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1868~1965)도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병원, 학교, 교회 등을 설립하며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독립운동이 발발한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일제의 탄압에 쓰러진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한국의 독립에 힘을 보탰다. 1968년 정부는 그에게 대한민국 독립장을 수여했다.

아치발드 바커(Archibald H. Barker‧?~1927)도 1911년 선교사로 내한하여 명신여학교를 설립하고 여성교육에 힘썼으며 특히 일제가 금지한 한글과 국사 교육으로 우리의 민족애를 일깨웠다. 또한 1919년 간도지방에서 일어난 일제의 무력에 의한 참상을 사진에 담아 본국에 알렸다. 이에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 1968년 그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했다. 

3.1운동과 스코필드 관련한 일러스트   

마지막 스탠리 마틴(Stanley H. Martin‧1890~1941)은 퀸즈 의과대학 출신으로 1916년 선교사로 한국에 내한, 중국에서 독립만세운동 사상자 치료와 희생자 장례식을 치르고 경신참변(1920) 당시 한인 피해상황을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특히 그는 1919년 3월 13일 독립만세운동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이들을 병원에 이동시켜 치료했으며 희생자들을 위한 대규모 장례식을 치렀다. 또한 1920년 경신참변의 피해지역을 조사 촬영하고 그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제사회에 일본의 잔인한 살상행위를 폭로했다. 이 외에도 그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병원 및 부속 건물을 장소로 제공하여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정부는 1968년 그에게 독립장을 수여했다.  

이처럼 전시장에는 캐나다 출신 5인의 행적을 담은 일러스트와 이들 5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이 100년 전 암울했던 참상을 실감하게 했다.특히  마틴과 바커의 1920년 북간도 경신참변과 용정 만세운동 등 당시를 묘사한 일러스트 5점은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 전시장을 숙연하게 했다.

의병 활동을 알린 맥켄지의 사진 11장 역시 파란 눈으로 한국을 바라 본 당시 그들의 심정을 감지 할 수 있었으며 한국인들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아낌없이 힘을 실어주었던 파란 눈의 외국인 4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서울시와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회에서 주관하며 23일(토)부터 3월31일(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시티갤러리(지하1층)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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