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람하는 한 어린이가 독립투사가 갇힌 옥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서대문형무소란 단어 속에서 우리 국민의 다수는 울분을 느낀다고 말한다. 백년이 아닌 천년, 만년이 흘러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그런 분노가 차오른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100년 주년을 맞는 2019년 3월 3일. 많은 이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일제의 탄압에 사라진 이들의 넋을 위로했다. 본지가 이를 취재했다.

서울지하철 3호선의 독립문역을 나와 옛 서대문형무소. 중국발 미세먼지 속에서도 3월 한낮은 완연한 봄을 맞은 듯 화창했다. 그러나 서대문형무소의 붉은 벽돌건물 주위는 뭔가 암울했고 을씨년스러웠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인왕산의 산그늘 탓이었는지. 

어두운 그림자로 내려앉은 산그늘이 마치 한의 역사를 설명하듯 붉은 벽돌건물 주위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 속에서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주위의 공원은 봄단장이 한창이었다. 겨우내 우후죽순 자란 소나무들의 전지에 주위엔 솔향기가 가득했다.

때맞춰 단체 관람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오르는 그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마치 시골 장터처럼 왁자했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무리의 어린 학생들이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왔다. 학교에서 단체 관람인 듯 길게 줄을 잇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역시 봄나들이 나온 참새처럼 환했고 경쾌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경쾌한 웃음은 오래가지 못 했다. 근현대 우린 민족의 수난과 고통의 상징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 모두는 웃음을 잃고 침통했다.

2~3일 동안 갇혀있으면 전신마비가 온다는 고문실인 벽관도를 한 어린이가 재현해보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2~3일 동안 갇혀있으면 전신마비가 온다는 고문실인 벽관도를 한 어린이가 재현해보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정말 이렇게 고문한거야? 

 “엄마야! 세상에 어쩜,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세상에, 너무해, 엄청 아팠을 텐데, 불쌍해”
“엄마야, 난 무섭다”
 “우익, 난 성질나, 나쁜놈들 다 벌 받아야 돼”
 “뭐야, 정말 저것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저렇게 한 거야?” 

이렇게 제 각각 긴 한숨으로 안타까움을 토해내는 어린 학생들 옆에 묵묵히 눈만 껌벅이는 이들의 얼굴에도 숙연함이 가득했다. 특히 역사실과 민족저항실에서는 속살거리던 모습도 사라지고 해설가의 설명에 어린이들의 표정은 비장함마저 흘렀다. 쉽게 발을 돌리지 못하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날 학교에서 단체 관람에 나온 OO 초등학교의 한 어린이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들었을 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무섭고 끔찍하다.”며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싸워 준 독립운동가들이 고맙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독립운동이라는 게 너무 옛날이야기 같은 거라 크게 생각 안 했는데 이제 정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나라를 지키려다 죽음까지 당한 독립운동가들 모습이 감동적이다. 만약 내가 그때 태어났다면 나도 그렇게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있는  황인희 교사는 “학생들 역사 교육을 교과서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현장에 나와 직접 당시를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짜 산 역사 교육이다”며 “실은 나도 오늘 처음 관람인데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운데 오늘 관람하는 학생들은 어떤 소감을 써낼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해설가의 독립투사 고문관련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들  (사진=신현지 기자)

마음이 무거워져...이젠 절대 잊지 않아

대학생 김지훈씨는 “독립문 나온 길에 아무 생각 없이 친구랑 웃고 떠들며 들어왔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기분이 오래 남을 것 같은데 그 동안 일제강점기의 폭압을 먼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다. 이제는 절대 그 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며 씁쓸히 웃었다.  

중학생인 신세희 양은 “초등학교 때도 한번 왔는데 고문기구 이런 것 보고 무서워서 울면서 나왔다. 오늘도 기분은 마찬가지로 별로 좋지 않다. 그때 한 일주일을 제대로 잠을 못 잤는데 오늘은 해설가님 말 들으니 마음이 더 먹먹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 발을 붙잡는 곳은 12옥사의 독방 안의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는 스피커 음이었다. 이 앞에서 학생들은 마치 민주운동가가 그 안에서 울부짖기라도 하듯 한참이나 발을 떼지 못하고 침통해했다. 그들은 분명 오늘의 관람 경험을 오래까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이처럼 관람객 모두를 먹먹하게 하는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은 1908년, 일제통감부가 세운 ‘경성감옥’을 시작으로 1912년 서대문감옥에 이어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변경되었다. 이후 해방을 맞던 1945년 서울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변경되었다. 이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이 되었다. 

전시관 2층에는3.1운동의 손병희, 유관순 , 안창호, 한용운, 이병희 등 10만 명의 독립운동가 투옥 형장을 보여주는 민족저항실이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그러니까 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모두 옛 서대문형무소의 시설을 그대로 재생한 공간이다. 소역사관으로 거듭난 전시관에는  ‘유구전시실’, ‘취사장’, ‘지하옥사’, ‘공작사’, ‘사형장’ 등으로 나눠져 있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의 행사에 맞춰 대동단결선언, 3.1독립선언서, 장효근 일기, 임시정부 법규, 윤봉길선언서, 이육사 친필원고, 수형기록카드,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 환국기념 서명포 외 다수의 전시유물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전시관 2층에는  3.1운동의 손병희, 유관순 등 3000여 명, 안창호, 한용운, 이병희 등 10만 명의 독립운동가 투옥 형장을 보여주는 민족저항실이 1, 2, 3관으로 나눠져 대한제국 말기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진=신현지 기자)

특히 민족저항실 3관에는 사형장, 지하 시신 수습실, 고문실 등의 전시물로  폭압적인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한편 서대문구는 지난 25일 독립유공자들의 수형 기록을 엮어 1300여쪽짜리 자료집을 펴냈다. 3·1운동 수감자만을 대상으로 단독 자료집을 발간한 것은 처음이다. 황해도 수안군 등 이북지역 출신 수감자 230명의 기록을 포함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지역 3·1운동에 대해서도 처음 조명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