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불발 이후 ··북ㆍ미 ‘당사자들’의 변
하노이 불발 이후 ··북ㆍ미 ‘당사자들’의 변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9.03.01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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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리용호 외무상의 입장문 발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점심 때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현실이었다. 결과론이지만 두 정상의 사소한 표현들이 모두 협상 결렬의 징후였다고 끼워맞추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시간으로 2월28일 16시15분 베트남 하노이 메리어트 호텔 그랜드 볼륨에 들어섰다. 급하게 앞당겨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다. 이미 전세계에 합의 불발 소식이 전파된 이후였다. 모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숙소인 멜리아 호텔로 돌아갔다. 예정된 업무 오찬과 하노이 선언문 서명식은 취소됐다. 

이날 아침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 회담 →정원 산책 →확대 회담이 진행됐다. 확대 회담의 모두발언까지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서방 기자들의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감있게 답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와우 최고의 답변인 것 같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2시간 동안의 확대 회담에서 파열음이 발생했다. 일단 배석자 면면이 눈에 띈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존 볼턴 NSC(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배석했고, 북한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리용호 외무상이 배석했다. 3대 2로 숫자 균형은 맞춰지지 않았다. 초강경 매파로 알려진 볼턴 보좌관이 어그로를 끌었던 걸까. 알 수 없지만 뭔가 도발성 발언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원 산책 후 2대 2 환담이 이뤄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8일 방송된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괄호를 메우지 못하게 만드는 데 볼턴의 역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확대 회담에 볼턴이 들어갔다. 확대 회담에서 사달이 난 것이다. 볼턴이 가면 어쩐지 좀 불안했다. 왜 왔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볼턴의 주제가가 있다. 모든 핵 시설 신고하고 검증받고 심지어 WMD(대량살상무기) 핵 무기 외에 생물무기와 화학무기까지도 다 신고하라. 신고해서 검증을 받아라. 그 다음에 아마 그 사람은 또 인권도 거론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볼턴 보좌관이) 문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게 골대도 옮기려고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이거는 얘기를 새로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아마 결론을 못 내고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니까 서명식도 늦어질 뿐만 아니라 점심도 안 먹은 것 아닌가. 점심까지 안 먹으면서 이게 밀고 당겼다는 얘기는 상당한 정도의 신경전이 있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그러면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결렬에 대한 변을 들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막연한 화법을 구사하지만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중요한 지점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제재를 전면 해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저희가 들어줄 수 없었다. 특정 쟁점에서 저희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며 “(합의 거부는) 내 결정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향후 관계를 지켜봐야 한다. 이번 회담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오늘 합의를 체결하는 것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두 정상은 정원 산책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두 정상은 정원 산책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이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던 영변 핵 시설 폐기로는 제재 완화를 제공할 수 없었던 걸까. 실제 미국은 영변+α를 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에) 더 필요했다. 나오지 않은 것 가운데 (새로) 발견한 것(핵 시설)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있었다”며 “우리가 (추가 핵 시설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북한도 놀란 것 같았다. 내부적으로 논의를 많이 했는데 영변 시설이 대규모지만 이걸 폐기하는 것만 가지고는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많은 것을 미국이 원했다. 추가적인 비핵화가 필요하다. 고농축 우라늄, 기타 시설 해체 등. 김 위원장은 그것은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했다. 1단계 영변 해체에 만족할 수 없었다. 협상 레버리지를 버리면 안 된다. 나도 제재 완화를 원한다. 하지만 추가 비핵화 조치를 해야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북미가 각각 줄 수 있는 최대치는 핵 리스트 신고와 제재 해제인데 이것은 단계적으로 쪼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제재를 완화하려면 소수의 특정 핵 시설을 폐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전체 △핵 물질 △핵 탄두 △핵 시설을 리스트업 한 뒤 그걸 부분적으로 제공받는 것을 원했을 수 있다. 초보적으로라도 리스트 신고가 어렵다면 <풍계리 →동창리 →영변 →강선> 등 주요 핵 시설 2개 이상을 사찰 하에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기를 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시간과 순서의 문제가 있다. 아직 골대까지 도달하지 못 했다. 영변 시설을 해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외 큰 핵 시설이 있다. 미사일, 핵 탄두, 무기 시스템이 남아있다. 리스트 신고도 북한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아침 진행된 단독 회담. (사진=연합뉴스 제공)

<제재 완화=핵 리스트 신고>를 빅딜이라고 했을 때 <연락사무소 설치+인도적 지원 확대+종전 선언=영변 폐기+ICBM 폐기>는 스몰딜이다. <일부 제재 완화=영변 폐기+ICBM 폐기+α>는 미들딜이다. 양국이 부담을 느껴서 빅딜이 아닌 스몰딜이나 미들딜로 갈 수 없었던 것일까. 미국이 +α와 핵 리스트 신고를 강하게 요구했거나, 북한이 전면 제재 해제를 요구했기 때문에 끝내 결렬될 수밖에 없었던 걸까.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언제든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내가 원했으면 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합의문도 (이미) 마련됐지만 오늘은 서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았다”고 밝혀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결코 쉽게 미국의 양보를 내줄 수 없었던 점을 환기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지적은 당연히 지배력을 쥐고 있는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故 오토 웜비어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웜비어 사망에 대해 본인도 유감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하노이 회담의 합의 불발에 가장 당황한 주체는 한국이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은 18시50분부터 25분간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과 대화를 해보는 등 적극적인 중재를 요청했다. 또한 가까운 시일 내에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것에 공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심야 기자회견을 급하게 잡아서 북한의 입장을 설명한 최선희 부상과 리용호 외무상.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은 미국이 전세계 언론에 대고 무리한 제재 완화 요구로 일이 어그러졌다고 말해버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일 새벽 2시 멜리아 호텔로 급하게 기자들을 불러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질의응답을 하지 않았고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리 외무상은 “신뢰 조성과 단계적 해결 원칙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 제안을 제기했다”며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리 외무상은 결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무리한 전면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리 외무상이 지목한 것은 2017년 6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2356호 결의(개인과 기관)를 제외한 나머지 5개다.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 (자료=유엔)

△2270호 2016년 3월 4차 핵 실험에 따른 제재(적재 의심 항공기 이착륙 영공통과 불허·항공유 판매 금지·광물 수출 금지 등) △2321호 2016년 12월 5차 핵 실험에 따른 제재(인물·외교활동·운송·대외교역 등) △2371호 2017년 8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외화수입 차단·선박 등) △2375호 2017년 9월 6차 핵실험에 따른 제재(유류 공급 제한·해상검색 차단·해외 노동자·섬유수출 금지·합작사업 금지 등) △2397호 2017년 12월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유류 공급 제한·철강금속류 수출 차단·수출금지품목 확대·조업권 금지 등)

리 외무상은 위와 같은 제재 완화를 요구해도 될만큼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를 제시한 것)”이라며 “보다 중요한 문제는 원래 안전 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조치로 제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외무상이 거론한 비핵화 조치들은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모든 핵 물질 생산시설 △핵 시험과 장거리 로케트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 문서 등이다.

리 외무상은 분명하게 “미국 측은 영변 핵 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하나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고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 수도 있다”며 “완전한 비핵화로의 노정에는 반드시 이러한 첫 단계 공정이 불가피하고 우리가 내놓은 최적의 방안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이러한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을 것이고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측 입장에서 미국에 서운한 점을 설명한 리 외무상.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측 입장에서 미국에 서운한 점을 설명한 리 외무상.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 부상도 “(영변 내 모든 핵 물질 폐기는) 역사적으로 제안하지 않았던 제안”이라며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 측이 이번에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거들었다.

특히 최 부상은 “(안보리 제재 결의들 중) 100%가 아니고 여기에서 민생과 관련된 부분만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에 대한 심리 묘사도 했는데 최 부상은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좀 이해하기 힘들어하지 않는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 이렇게 지난 시기 있어 보지 못 한 영변 핵 단지를 통째로 폐기할 것에 대한 그런 제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민수용 제재 결의의 부분적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 측의 반응을 보고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영변이 얼마나 상징적인 의미인지에 대해 최 부상은 “미국의 핵 박사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영변 핵 시설에 있는 농축 우라늄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그런 거대한 농축 우라늄 공장까지 포함한 모든 핵 시설을 우리가 이번에 영구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할 것에 대한 제안을 내놨지만 미국 측의 호응이 없었다. 앞으로 이러한 기회가 다시 미국 측에 차려지겠는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최 부상은 그동안 북한의 외교통으로 불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 부상은 그동안 북한의 외교통으로 불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보통 협상이 결렬되면 양측이 상호 비방하기 마련이고 북한은 2018년 이전에는 각종 험한 표현을 써가면서 미국을 맹비난해왔다. 하지만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은 서운함만 표현했을 뿐 비난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갑자기 박차고 일어선 것이 아니라 굉장히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악수했다. 따듯한 분위기였다. (추후 회담 일정은) 지금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열릴 수도 곧 열릴 수도 있다”며 “(제재 강화 가능성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미 제재는 강력하다. 더 필요하진 않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리 외무상과 최 부상의 주장말고 북한이 미들딜이나 스몰딜 차원의 요구는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인지 그 가능성도 주목된다. 빅딜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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