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의 여론전
스몰딜과 빅딜
비핵화 수위에 따라 무엇이 교환될 수 있는가
북미 입장 차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어그러진 것을 두고 대북 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NSC(국가안보회의) 보좌관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다. 2월28일 확대 회담에서 볼턴 보좌관이 배석했고 북측에 껄끄러운 요구들을 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 대북 전문가들은 사실상 볼턴 보좌관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시간으로 28일 저녁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트럼프 대통령·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했고, 29일 새벽 2시 리용호 외무상·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입장 설명이 있었다. 1일에는 노동신문을 통한 북측의 공식 반응도 나왔다. 양측의 변은 이런 거다. 

북한은 미국 전문가의 사찰 하에 영변 핵 시설을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5가지(2270호·2321호·2371호·2375호·2397호)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는데 미국이 끝까지 추가 핵 시설 폐기를 고수해서 결렬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영변 외에 추가 핵 시설에 대한 폐기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북한이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해서 합의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협상력을 위한 미국의 지렛대(Leverage)로서 제재 완화를 영변 폐기 수준으로 등가 교환해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양측 모두 상호 비난을 자제하고 있고 아쉽다는 수준의 반응을 보임으로써 추후 협상에 대한 여지를 남기는 분위기다. 

세안 정상회의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15일 오전(현지시간) 싱가포르 선텍(Suntec) 컨벤션 센터에서 만나 환담하고 있다. 이 면담에 배석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듣다 미소짓고 있다. 2018.11.15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보좌관을 기용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력을 도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런 상황에서 볼턴 보좌관은 우리 시간으로 4일 자정 즈음에 미국 주요 방송(CBS·폭스뉴스·CNN)에 연달아 출연해서 빅딜 문서 2개를 제시했지만 북한이 끝내 불수용했다고 주장했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 즉 비핵화를 계속 요구했다. 핵과 생화학 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라고 했고 김정은에게 하나는 한글, 하나는 영어로 된 문서 2개를 건넸다. 그 문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그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엄청난 경제적 미래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위치의 부동산을 얻는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문서 속에서 제시한 대로 광범위하게 정의된 비핵화”라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완전히 수용하고 거대한 경제적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가진 빅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그보다 못 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지” 그 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좀 더 보면 볼턴 보좌관은 “매우 제한적인 양보로 노후화된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의 일부분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빅딜을 수용하도록 설득했지만 그들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 (하노이 회담) 처음부터 싱가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부터 (북한은) 거기에 있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생화학 무기 프로그램을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다면 경제 발전 전망이 있다는 것”인데 그런 제안이 거절당했다는 점을 재차 부각했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이 요구하는 최대치를 표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차 회담 전에 빅딜과 스몰딜이 자주 회자됐는데 비핵화의 수위에 따라 무엇을 교환할지 그게 관건이었다. 

비핵화는 ①핵 리스트 신고와 ②특정 핵 시설 폐기 2가지 이행 방법이 있는데 ①과 제재 완화를 교환하는 것이 빅딜이다. 스몰딜은 ②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즉 스몰딜은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 선언 △평화협정 논의 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면 빅딜 차원에서 북미가 줄 수 있는 최대치는 ①과 제재 완화인데 둘 다 쪼개서 단계적으로 맞교환될 수 있다.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보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북한 어디에 어떤 핵 물질·핵 시설·핵 무기 ABCDE ··가 있다고 하면 그걸 정리해서 기록해놓은 것이 핵 리스트다. 제재 완화는 2006년부터 2018년 3월까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14건과 미국 자체 제재 등을 하나씩 푸는 것이다. 

미국과 보수진영에서는 ②으로 제재 완화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고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절충해서 영변 플러스 α(추가적인 핵 시설 폐기)라면 초보적인 제재 완화는 가능할 수도 있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일단 ①을 내놓기는 어렵고 자기 핵 능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영변을 확실히 폐기(②)할테니 인민 경제를 위한 최소한의 제재 완화를 해달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단계적으로라도 리스트를 신고하거나 영변 플러스 α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이가 좁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볼턴 보좌관의 설명대로 영변은 “매우 제한적인 양보로 노후화된 원자로”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번에 미국이 합의하지 못 한 것은 “미국의 국익이 보호될 때 노딜은 전혀 실패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볼턴 보좌관이 언급한 탄도미사일, 생화학 무기 등은 그 자체로만 보면 비핵화와 무관한 북한의 또 다른 군사능력에 대한 것으로서 ①②과는 무관하다.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전체적으로 가능한 것들을 보게 하려 했다. 대통령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여전히 낙관하고 있다”며 추가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구체적으로 “하노이에서도 문을 열어뒀다. 북한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것은 정말로 그들에게 달렸다. 만기는 없다(no expiration date). 트럼프 대통령은 낮은 단계의 협상을 지속할 준비 또는 김정은과 다시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애초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인 경제 제재를 계속하는 것을 들여다볼 것”이라며 영변 플러스 α 또는 핵 리스트 신고에 돌입해야 제재 완화를 해줄 수 있다는 점을 거듭 환기했다. 

심지어 “선박 간 환적을 못 하게 더 옥죄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고 다른 나라들과도 북한을 더 압박하게끔 대화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할 때 제재 해제를 얻을 수 있다”고 경고를 하기도 했다. 

최선희 부상은 북한의 입장에서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의중 변화를 설명하면서 미국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선희 부상은 북한의 입장에서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의중 변화를 설명하면서 미국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 부상은 준비된 입장만 발표하려다가 기자들의 쏟아진 질문에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좀 이해하기 힘들어하지 않는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 이렇게 지난 시기 있어 보지 못 한 영변 핵 단지를 통째로 폐기할 것에 대한 그런 제안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민수용 제재 결의의 부분적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 측의 반응을 보고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북미 간의 입장 차이가 확연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향후 중재 과정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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