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간 합의는 법률 위에
만장일치 관행
법으로 강제되면
국회 선진화법과 법사위 문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대한민국 국민의 정치 혐오는 대부분 국회 입법 절차의 비효율성에서 기인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수만 1만건을 훌쩍 넘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와 만나 “(간사간의 협의는) 사실 국회법의 본질이 아닌데 그게 몸통을 흔들고 있다. 간사간 협의는 절차에 관한 사항이지 간사가 원하지 않으면 회의를 하지 말라고 그 부분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며 법안소위(법안심사소위원회)가 상시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정 의원은 국회의원이 밥값을 하기 위해서라도 법안소위를 상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입법 절차는 <①정부 제출 또는 국회의원 10인 이상 발의 →②해당 상임위원회 법안소위 의결 →③상임위 의결 →④법제사법위원회 의결 →⑤본회의 의결 →⑥대통령 공포>로 돼 있다.

문제는 ②이다. 법안을 고치고 폐기하고 만들려면 가장 먼저 법안소위에 안건으로 상정돼야 하고 그걸 논의하기 위한 회의 일정이 잡혀야 한다. 

여기서 이 의원이 거론한 “(교섭단체) 간사간 협의”가 타결되지 않으면 법안소위는 현실적으로 열릴 수 없다. 이게 국회법 49조 2항에 “의사일정과 개회 일시를 간사와 협의하여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사실상 만장일치 의결 관행이 지배하고 있다. 대부분의 법안들은 법안소위에서 끝장토론 이후 만장일치로 의결되면 본회의까지 그대로 간다. 

하지만 국회법을 찬찬히 뜯어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국회법 49조2·52조·53조·54조에 따라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개회 △정례회의는 3월과 5월의 세 번째 월요일부터 한 주 동안 운영 △재적위원 5분의 1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 등 ②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규정돼 있다. 

49조 2항은 법안소위가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을 전제로 정치적 합의를 통해 효율을 기하라는 취지이지 합의가 안 되면 열지 못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법안소위는 입법의 시작이자 핵심이다. 하지만 법안소위는 잘 열리지도 않고 법안 상정도 쉽지 않고 의결도 어렵다.  
 
이 의원은 “법부터 고쳐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 아무도 모른다. 이런 점을 얘기하면 국민들이 몰랐다는 반응이다. 지금도 그런 법안이 제출돼 있기도 한데 그건 법안을 내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의회가 합의하면 되는 거고 의장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상대당도 이와 관련해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안 하는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이어 “안 하면 어쩔 수 없어서 강행하는 규정을 내야되는데 국회가 일을 강행하는 규정을 낸다는 게 사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래서 착잡하긴 한데 최소한 월급 받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작년 11월20일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 회의는 민주당 소속 이재정·김민기·김영호·김한정·홍익표 등 5인만 참석해서 개회됐지만 법안 의결을 할 수 없었다. 당시 회의는 여야 합의로 잡혀있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갑자기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 대한 청문 보고서가 미채택됐음에도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했고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민주당이 수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의원은 만약 그때 민주당이 바른미래당만 설득해서 의결시켰다면 “(한국당은 강하게) 국회를 보이콧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그게 싫어서 그냥 (만장일치 관행으로) 해주는 건데 국회의 관행이라는 것은 우리 다선 의원들이 얼마나 금과옥조처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국회 관행을 우선하는 것은 사실 국민이 곧 법이다. 국회 관행이라는 이름만으로 물론 아름다운 관행이 있다. 정말 소수당을 존중하고 어찌됐건 국회 의사일정을 원활하기 하기 위한 최선은 인정하겠는데 그게 아니라 모든 그간의 습관들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협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이 아주 많다”는 설명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법안이 본회의까지 오려면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진=박효영 기자)

만약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일정 등으로 바쁘더라도 법적으로 법안소위 개회가 강제된다면 이 의원은 “불출석이 된다. 안 나오면 법안소위 논의 과정에서 빠지는 거고 나온 사람들 위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올만한 사람들이 법안소위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다선 의원들이 들어가거나 법안소위에 들어가야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어깨에 뽕넣는 사람이 들어올리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소위와 함께 국회 선진화법(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제한적으로 규정)과 법사위 갑질 문제도 입법 절차를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식물 국회” 비판을 듣게 만드는 주범이다.  

법사위는 타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친 법안들이 올라오면 전체 법 체계와 자구만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곳이지만 2소위로 회부해 잠재워두는 갑질을 일삼는다. 선진화법은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전시 외에는 불가능하도록 규정했고 사실상 거의 모든 법안들은 지지부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물론 2012년 이전에는 다수당이 법안을 날치기로 밀어붙이고 그걸 막으려는 소수당이 엉켜서 동물 국회가 됐었다. 허나 동물 국회도 나쁘지만 식물 국회도 나쁘다. 

이 의원은 “국회법 전반을 손봐야되는 때다. 그래서 오죽하면 선진화법 손보는 것은 21대부터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논의해볼 수 있다고 하니까 이럴 때라도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 현장의 모습. 6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들이 모인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물론 국회는 국가 안에 있는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대리 싸움터라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이 의원도 이를 인정한다. 나아가 여권에 뭔가를 요구하고 얻어내야 하는 야당 입장에서 협상력 증진 수단이 사라지는 대목이 있다. 집권 여당은 청와대를 뒫받침하기 위해 입법 성과를 내야하는 동기가 충만하지만 야당은 항상 여권의 실정을 막기 위해 파업 수단을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한국당이 야당이라서 그게 싫다는 것은 21대 총선에 (다수당이 될) 자신이 없는 거다. 21대 총선에서 자신없으면 그래도 된다. (추후 대선에서 집권할) 자신이 없다는 걸 실토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21대 총선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걸 거리두는 방식으로 해도 좋으니까. 선진화법이 동물 국회를 막으려다 식물 국회가 되는 그런 지경이 됐으니까. 손봐야 될 때라는 건 여야가 공히 공감하는데 이때 손봐야 한다. 사실 이렇게 권력 안정기에 손을 봐야지 당리당략적 접근이라는 그런 얘기를 안 듣는다”고 일축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작년 3월28일 정론관에서 기자와 만나 “원래 정치라는 것이 상대방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둘 다 좋아해서 다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마이너스 경쟁이냐 플러스 경쟁이냐가 중요한데. 못 하게 하기 경쟁이 벌어지면 안 되는 것이고 잘 하기 경쟁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말처럼 궁극적으로 거대 양당이 합의하지 못 하고 맨날 발목잡기 경쟁을 하는 대결 정치를 바꿔야겠지만 그의 일환으로 입법 절차의 합리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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