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일상 스케치…노인들의 홍대거리 종로3가를 가다

(사진=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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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뉴스=신현지 기자]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인구비가 총인구비율의 14%를 넘어 고령사회이다. 그러나 노인에 대한 복지 정책은 현저하게 낮아 국내의  많은 노인들이 빈곤과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통계 기준에 따르면 국내 노인빈곤률은 OECD 최고수준인 45.7%이다. 

국내 고령사회 자살률 OECD 1위

특히 노인의 자살률은 OECD 1위로 2015년을 비교했을 때 70대 노인의 자살률은 286%이었다. 이어 그 수는 늘어 2017년 기준 10만명당 47.7명으로 증가했다.이처럼 고령사회에 따른 노인의 문제가 대두되는 현실에서 본지는 지난 10일 종로3가 거리에서 어르신들의 일상을 담아보기로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인 무임교통카드 이용내역 575만 건 분석 결과 종로3가역에서의 노인들하차비중이 전체의 1.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이에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의 일상 스케치에 나선 본지의 시선에 어르신들은 다양한 표정이 잡혔다. 먼저 종로3가의 지하철입구부터가 어르신들이 반은 차지하는 모습이었다. 대체 종로에 무슨 즐길거리가 있다고 어르신들이 몰려드는 것일까.

지하철 1호선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하는 한 어르신을 따라 동선을 이동하니 대로를 벗어나 좁고 깊숙한 뒷골목의 선술집이었다. 그곳의 한 선술집에 들어가자 미리 약속이나 된 듯 막걸리를 사이에 둔 두 명의 어르신이 뒤늦게 도착한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종로3가, 왜 어르신들 아지트...

선술집 맞은 편 탁자에도 삼삼오오 둘러앉은 어르신들이 이미 막걸리 병을 비운 채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였다. 이들 중 최기석(78세) 어르신은 “매일 출근족들을 피한 10시쯤 집을 나와 종로에서 하루를 보낸다며 종로에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진=신현지 기자)

“특별한 즐길 거리가 뭐가 있겠어, 그냥 무료하니 나오는 거지. 집에 있으면 종일가도 누구 하나 대화할 사람이 없잖아. 기껏해야 티브이나 보고 하루가 지루한데 여기 나오면 그래도 동연배 친구도 만나고 술도 한잔 할 수 있고, 여기 앉은 노인네들 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야. 이렇게 친구도 사귀고. 그래서 매일 나와, 교통비는 공짜니 술값만 들고 나오면 되고, 3천원 들고 나오면  막걸리 한잔 하고, 어느 때는 저기 골목 올라가 무료 급식소에서 점심 해결하기도하고 그래.”    

이렇게 말동무가 필요해 나온다는 최 어르신과는 달리 길거리에 외톨이로 앉아 혼자 소주를 들이키는 어르신의 모습도 여기저기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런 어르신들은 땅에 털썩 주저앉아 뭔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에 혼잣소리를 하며 슬쩍슬쩍 눈물을 훔쳐내는 모습을 보이는 어르신도 있었다. 

반면 그 광경의 맞은편 커피숍에는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도 보였다. 그런 어르신들은 표정부터 뭔가 좀 달랐다. 아직은 현역이 그리운 듯 등 곧은 자세로 창밖을 넌지시 관망하는 표정에서 느릿하고 힘없는 걸음을 걷는 노인들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노인들 위한 위락시설 고작 콜라텍...

그곳을 지나 다음은 노인들의 홍대거리로 불리는 국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국일관의 콜라텍이 어르신들의 대표적인 유희 장소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라. 역시나  말쑥한 정장차림의 남녀 어르신들이 곧장 9층 콜라텍으로 오르는 모습이었다. 콜라텍 전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엘리베이터는 쉼없이 오르내리는 모습이었다.

(사진=신현지 기자)

그런 어르신들 속에 섞여 9층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순간 기자가 엘리베이터를 잘 못 타기라도 하듯 그 안의 어르신들이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특별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콜라텍으로 통하는 입구의 매표소 안내원이 입장료1000원을 받으며 실내에 식당과 찻집 등 시설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고 안내까지 했다.

가방 보관은 따로 500원, 안에 신발과 옷도 빌려 입을 수 있으니 취향에 맞게 골라 입으라고. 또 춤을 따로 배울 생각 있으면 개인 레슨 선생도 소개해줄 수 있다며 의향을 물어오기도 했다. 특히 그는 “여기 아니면 병원에 누워있어야 할 어르신들이 태반인데 콜라텍 덕분에 건보료의 절감효과가 있는 것이다”며 하루 평균 1000명, 주말에는 약 2000이 넘게 콜라텍을 이용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런 그에게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오자 500평(약 1653㎡)은 넘어 보이는 홀 안에 트로트 음악과 빙글빙글 돌아가는 형형색색 조명등이었다. 하지만 오전 10시, 이른 시간이라 많은 수는 아니었다. 홀 중앙에 서로 몸을 밀착시킨 채 춤을 즐기는 남녀 어르신들과 홀 가장 자리에 길게 놓인 의자에는 상대를 기다리는 모습들이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

물론 그런 모습들이 시선처리 곤란할 정도로 크게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그 중에는 선뜻 안으로 나서지 못하고 구경만으로 만족하는 어르신들도 눈에 띄기도 했다. 하지만 홀 안으로 깊숙이 돌자 식당과 커피숍에는 남녀 서로 짝을 찾아 앉은 어르신들 모습에서 묘한 분위기가 읽혀지기도 했다. 

그 중 유일하게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한 여성 어르신이 기자에게 자신의 옆으로 앉으라며 손짓을 해보였다. 그의 손짓에 다가가자 글 쓰는 사람이냐고 먼저 물어왔다. 가끔 그런 사람이 여기에 온다며.

이어 그는 “이상하게 볼 것 없어, 나이 먹었다고 춤을 추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젊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즐기는 방법이 있듯 우리도 그러니까. 여기 아니면 특별하게 놀만한 공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 여기라도 나와야 아직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니까.

그렇지만 나쁜 생각을 가진 남자들도 있기는 있어. 춤은 뒷전이고 커피사주고, 점심사주고, 나중에는 2차 가자고 추근거리는 것들도 있으니까. 저나 나나 형편 빤하면서도 엄청 돈 자랑에 자식자랑 늘어놓고, 그런다고 어디 그런 것이 통하나, 어쨌거나 집에만 있으면 아픈 데만 생각나고 우울하고 여기라도 나와야 웃고 떠드니 나오는 거지”라고 말했다.   

2~3천원 영화관 보다 노인일자리 더 필요 

콜라텍을 나와 이번엔 낙원상가 4층의 노인들 전용 실버영화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도 어르신들이 대기실에 가득이었다. 이곳 실버영화관 관계자는  “55세 이상이면 누구나 2~3000원에 옛 흘러간 영화를 볼 수 있어 매일  800명에서 1000명의 노인관객이 다녀간다.”고 말했다.이날 대기실에서 영화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한 어르신(73세)은 집이 근처라 자주 나오게 된다며 자신은 영화가 아닌 노인들을 일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솔직히 여기 나오는 노인들 영화가 좋아서 나오는 노인들 보다는 심심해서 나와 있는 게 태반이지, 같이 늙어가는 처지들이니까 여기 나오면 서로 얘기도 통하기도 하고. 또 영화를 보는 돈도 비싼 것도 아니고 여기 주변 식당도 비싸지도 않아. 다 돈 없는 노인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3~4천원이면 한끼 해결은 어렵지 않아.

1천원에 파고다 공원에서 종일...

그런 돈도 없으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면 되고.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그런 것보다는 정부에서 노인들 일자리 좀 늘려주었으면 좋겠어. 하루 돈 만원 벌이라도 좋으니 일 좀 할 수 있게.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 없이 하루하루 이렇게 보내는 게 아주 지겨워. 물론 구청의 일자리 신청이 있기는 하지만 노인들이 많으니 어디 그게 쉽나, 그것도 하늘의 별따기지. 젊어서 전문 직종 일한 사람도 여기 많이 오는데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어.

그러니 어찌 보면 그게 다 국가적 재원 낭비인데 정부에서는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을 안 두는 것 같아. 더구나 갈수록 나이 먹은 사람들만 늘어나는 세상인데 그것 노인수당만 늘려서 어떻게 감당할려고.”

실버영화관을 나와 이번엔 기원이었다. 낙원상가에서 나온 그 주위에는 눈에 띄게 기원이 많았다. 그 중 한 기원으로 들어서니 특유의 냄새와 함께 자리마다 어르신들이 빼곡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5000원이면 하루 종일 바둑을 즐긴다고 했다. 이날 신길동에서 나왔다는 김형철 어르신은 “원래 파고다 공원에서 바둑을 두는데 날씨가 추우니 기원에 와서 바둑을 두는 거라”며 “파고다 공원에서는 1000원이면 바둑판만 빌려 종일 놀 수 있으니 날이 풀리면  그쪽으로 옮길 생각이다.” 라고 말했다. 

기원을 뒤로 하고 다시 지하철역을 향하는 길에 가요주점도 몇 군데 눈에 띄었다. 차와 주류 판매하는 이곳에는 상당한 노래 실력을 뽐내는 남녀 어르신들이 주로 많이 온다고 했다.

하지만 저녁시간이 아닌 이른시간이라 아쉽게 그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다만 골동품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한 어르신의 흥얼거리는 옛노랫가락이 그 모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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