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장애인여가생활학교’ 변상오 교장을 찾아...

‘그루터기장애인여가생활학교’ 변상오 교장
‘그루터기장애인여가생활학교’ 변상오 교장 (사진=본인 제공)

[중앙초대석=신현지 기자]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수많은 만남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다양한 인연을 형성하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 속에 구두 닦던 청년에게도 이와 같은 만남이 있었으니. 19세에 암벽과도 같은 험준한 세상과 맞선 소년에게 다가온 한 사람. 소년은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에 도전할 힘을 얻고 어둠을 밝히는 동력이 될 수 있었다며 인연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다시금 확인 시킨다.  

이에 본지는 변상오 '그루터기장애인여가생활학교' 교장과 자리를 함께 했다. 정읍 고창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서울로 상경한 까까머리 소년, 구두닦이에서 공장노동자, 신문배달 등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세상을 버텨냈던 소년이 특수학교 교사에서 교장까지 31년의 교직생활에 이어 그루터기장애인여가생활학교 교장으로 자리매김한 과정을 조명해보기로 했다.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권영석 은사님이시다.”

이 한마디로 변상오 교장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삶의 결과물은 자신의 은사부터 비롯되었음을 함축했다. 그리고 이렇게 담담히 소회를 밝혔다.

“50년대 말의 우리세대는 누구나 다 가난했다. 특히 우리 집은 더 심했다. 초등학교 4학년도 채 마치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야 했고 그때부터 난 생존을 위한 세상과 치열한 싸움이었다. 공장,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일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배고픔과 배우지 못한 괄시와 설움이었다.

그러니 내게 세상은 오르지 못할 거대한 암벽처럼 그 어떤 목표점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날그날 사는 것에만 급급해야만 했던 10대. 그런데 이런 내게 세상을 도전할 힘이 생겼으니. 하지만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절망에서 얻은 깨달음...‘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

19세 나이, 나일론 제품공장에서 제품을 운반해주고 오다가 그만 대형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절체절명의 일이 있었다. 그 상황에 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세상을 비관하며 절망해야만 했다. ‘역시 세상은 내편이 아니구나. 난 세상 밖에 밀려나 있는 거구나.’ 그런데 그때 나를 보살펴 주던 병원의 간호사들. 그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 위로가 절망 속에 있던 날 일으켜 세우는 데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그 힘에 난 다시 삶의 끈을 움켜쥘 수 있었고 다행히 다리 접합수술까지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6개월의 투병생활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난 그때 커다란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닫쳐오더라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하면 희망의 길이 열린다.’는 깨달음이었다.

초등학교 중퇴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니 내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퇴원 하자마자 그 길로 헌책방에 달려가 초등학교 교과서를 구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내 인생의 대 전환점을 마련해 줄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권영석 은사님이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21살에 검정고시로 취득한 중학교 입학자격...지금도 그때의 감동에 가슴이 떨려

절망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청년,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권영석 씨. 당시 권영석 씨는 고려대학교 재학 중 군사혁명정권의 반대하는 입장에 서있다 정부의 불이익을 받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청소년 야학을 열어  청년들에게 희망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었단다.

“그러니까 그런 분을 만난 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보다 더한 행운이었다. 그분을 처음 뵈던 날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떨림이었다. 마치 깜깜한 암흑에서 반짝이는 빛을 발견한 그것처럼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다. 당시 은사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규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속성으로 1~2년을 공부해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갈 수 있다. 라고. 그 말씀에 난 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 더한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만 했다.

이처럼 한 사람과 운명적인 만남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리한 변 교장은 검정고시 준비에 박차를 가해 21살에 중학교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22살에 고입검정고시에 이어 25세에 대학의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단다. 그리고 그때의 기쁨과 감동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두말 않고 중학교 입학자격을 취득했던 그때라고 말한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의 그 감동이 그대로 생생히 떠오르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래 나도 이제 할 수 있다. 하면 못하는 게 없다. 처음부터 길은 없는 것이다. 걸어가면 길이 생기는 것.’ 그러니까 그때부터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니, 인생의 역전이었다. 물론 내 곁에 항상 권영석 은사님이 꾸준히 정신적인 역할을 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당당히 세상과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공부를 왜 하필 장애인 특수교육전공이었을까. 더욱이 1980년대 장애인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시기에...

장애인특수교육...교사에서 교장 31년간 젊음 불태워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살 때 6개월간의 투병생활이 계기였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당시 아픔과 절망에 처했던 나를 위로해주었던 간호사들의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특수교육을 전공한 계기였다. 또 늘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 하시던 권영석 은사님의 말씀도 특수교육의 길에 헌신하게 된 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고. 그리고 그 일은 내게도 잘 맞았다. 그 일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돈과 명예 권력보다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데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는 변 교장. 그가 장애인 특수교육 전공자로 첫발을 내 디딘 곳은 장봉혜림학교였다. 그리고 서울 인강학교에서 장애인들과의 젊음을 함께했고 교사에서 교장까지 31년간을 오로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밝혀오는데 젊음을 바쳤다.그리고 현재는 자비를 털어 의정부 비영리단체인 그루터기 장애인여가생활학교를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거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두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주위에 후원봉사자들도 많다. 약 100여명이 있는데 모두 자원봉사로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분들이라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그분들과 함께 앞으로도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그루터기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처럼 장애우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실천하는 변 교장은 은퇴 이후 뭔가 일을 해보겠는 마음이 있다면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꼭 봉사를 해보라 권하고 싶다고 한다. 그럼 돈보다 값진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면서. 또 이 같은 자신의 생각을 ‘경기도 인성교육 추진단 꿈 강사’로 출강하며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변 교장은 최근에 세 명의 지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단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인생3막을 설계하는데 또 다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오늘날 현대인들은 대부분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그런 복병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정신적 빈곤의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자존심에 가까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그런 마음의 병. 그래서 소외감과 우울증에 심지어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 마다 그냥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위한 셀프치료센터를 설립해보겠다는 계획으로 현재 추진 중에 있다.  
 
인생3막, 화천힐링마음치료센터 “누구나 셀프치료 가능할 수 있게”

변 교장이 인생3막으로 계획하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은 ‘화천힐링마음치료센터’건립이다. 역시 이곳도 비영리단체로 현재 자원봉사 멘토단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멘토단 100여명을 희망하는데 같이 일해주실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상담원은 비공개로 할 것이고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자비를 털어 하는 것이라 힘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최근에 자서전을 출간해 전국 서점에 판매 중에 있는데 판매금 전액 ‘화천힐링마음치료센터’건립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처음부터 길은 없다 '걸어가면 길' 자서전 출간
처음부터 길은 없다 '걸어가면 길' 자서전 출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다. '걸어가면 길'이라는 자서전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엮어 출판회도 가졌는데 이날 뜻있는 지인들이 많이 오셔서 힘을 보태주시고 가셨다. 이 자리를 빌려 그날 오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한다.”

검정고시출신 동아리 ‘문학촌’ 호응 좋아... 

그러니까 ‘걸어가면 길’의 자서전을 출간한 변상오 교장은 2017년 서울문학에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검정고시출신 동아리 형태의 문학촌의 부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문학촌 촌장님은 김광운씨가 맡아 하시고 내가 부촌장인데 약 1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반응이 아주 좋다. 물론 이 동아리도 자기치료목적에서 시작된 것인데 서로 돌려보고 격려도 하면서 좋은 글들이 모아지고 있다. 앞으로 글이 좀 더 모아지면 출판도 할 계획이다.”

신세대와 기성세대간의 서로 균형점 찾아야...

끝으로 그는 인터뷰 자리를 정리하며 이렇게 말무리를 지었다. “요즘 젊은사람들 힘들다고 하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개인주의가 팽배하다는 생각이다. 이보다 어려운 한국의 산업화를 겪어온 기성세대들의 눈으로 보면 솔직히 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하지만 한 마디로 함축한다면 기성세대들과의 서로 균형점을 찾아 살길을 모색하는 것이 국가경제발전과 나아가서는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지름길이 아니겠냐는 생각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