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2015년 삼성물산 공격 이어 올해 현대차 노려
‘투기자본’ 엘리엇 완패…정의선 현대차 대표이사 체제
현대차에 완패 엘리엇, 이대로 물러날까?…정부규제 필요성 목소리도

각 사 로고, 폴 싱어 엘리엇 회장 (사진= 각 사 제공)
각 사 로고, 폴 싱어 엘리엇 회장 (사진= 각 사 제공)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올해 주총에는 일부 대표기업에 대해 투기성 펀드들의 공격이 두드러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에 제동을 걸었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번엔 현대차를 타깃으로 삼았다.

지난해 5월에도 현대차가 추진한 지배구조 개편을 저지한 엘리엇은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취소시켰지만, 10개월 만에 재개한 이번 정기 주주총회 대결에서는 완패했다.

완패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다음 작업 '지배구조 개편안'에 엘리엇이 시비를 걸고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엘리엇, 2015년 삼성물산 공격 이어 올해 현대차 노려

엘리엇은 1977년 폴 엘리엇 싱어(Paul Elliott Singer)가 미국에서 설립한 헤지펀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펀드 중 하나다.

특히 연평균 수익률 14% 이상, 운용 자산은 340억달러(약 38조21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본사는 뉴욕에 있고, 미국 기타 도시·런던·홍콩·도쿄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 당시 ‘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다며 법원에 주총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하며 합병을 저지하고 나섰지만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한 바 있다.

삼성물산 주총에는 의결권있는 주식 1억5천621만7천764주(참석률 83.57%)가 참석했다. 당시 안건이 특별결의였던 만큼 출석주식의 3분의 2(55.71%)의 찬성이 있어야 했는데, 이보다 15% 가량 높은 69.53%의 찬성률로 승인됐다.

제일모직 주총에서는 의결권있는 주식 85.8%가 참석했다. 삼성물산과는 달리 찬성률이 공개되지 않았다. 주총 의장이 현장을 찾은 주주들에게 안건 통과를 묻고 승인을 발표하며 싱겁게 마무리 됐다.

이어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으로 타겟을 돌렸다. 2018년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을 걸더니 올해 들어서는 수조원의 배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글래스 루이스'도 현대자동차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의 제안에 반대하고 현대차의 제안에 찬성해야 한다"고 주주들에게 권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글래스 루이스는 최근 자문 보고서를 통해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제안한 1주당 2만 1,967원의 일회성 대규모 배당에 대한 지지는 가능하지 않다"며 현대차가 제시한 1주당 3천원 지급에 찬성할 것을 권고다.

그 이유로 "빠르게 진화하는 자동차 산업 특성을 고려할 때 현대차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상당한 R&D 비용과 M&A 활동이 요구될 거란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본사에서 열린 현대차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원희 대표이사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본사에서 열린 현대차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원희 대표이사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투기자본’ 엘리엇 완패…정의선 현대차 대표이사 체제

한편 지난 22일 개최된 현대자동차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의 공습은 완패로 끝났다.

이날 서울 서초구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제안한 안건은 서면표결에서 모두 부결됐으며, 현대차 이사회 제안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지난해 5월 현대차가 추진한 지배구조 개편을 저지한 엘리엇은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취소시켰지만, 10개월 만에 재개한 정기 주주총회 대결에서는 완패했다.

이날 엘리엇은 현대차 이사회와 배당, 사외이사 선임안건에 대해 표 대결을 앞두고 주주제안 관련발언에서 적극적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엘리엇의 대리인인 정두리 법무법인 케이엘 파트너스 변호사는 “이번 주주총회는 엘리엇과 현대차와의 대결의 자리가 아니다”라며 “모든 주주들이 한곳에 모여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어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주주이자 한국의 투자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 저희의 노력을 지지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엇이 주주제안으로 현대차의 당기순이익의 2~3배가 넘는 수준의 고배당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하는 모습은 단기 투기 자본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결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보다는 단기 이익적 시각에서만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인상을 줘 정기 주총의 표 대결에서도 참패했다.
 
우선 이날 현대차 주총에서는 재무제표 승인과 기말배당 승인 안건에 대해 가장 먼저 표 대결이 이뤄졌다. 현대차 이사회는 보통주 기준 현금배당을 주당 3000원으로 제안했고, 엘리엇은 주당 2만1967원으로 제안했다.

서면표결을 진행한 결과 현대차 이사회 방안은 86%의 찬성률을 거뒀다. 엘리엇 제안에 찬성률은 13.6%에 그쳤다.

표 대결에 앞서 한 주주는 “배당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제안주주(엘리엇)가 제안한 것은 너무 지나치치 않을까 생각한다”며 “제안주주의 배당금이 혹 할 수 있지만, 독이 든 성배,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의 배를 자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이어진 사외이사 선임 표 대결에서도 현대차가 압승했다. 이사회가 추천한 윤치원(59) UBS 그룹 자산관리부문 부회장과 유진 오(50) 전 캐피탈그룹 인터내셔널 파트너, 이상승(55) 서울대 경제학 교수 등 3명이 각각 90.6%, 82.5%, 77.3% 찬성률로 선임됐다.

반면 엘리엇이 내세운 후보들인 존 Y. 류 베이징사범대 교육기금이사회 구성원 및 투자위원회 의장, 로버트 랜들 매큐언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 마거릿 빌슨 CAE 이사 등의 찬성률은 각각 19.1%, 17.7%, 16.5%에 그쳐 제외됐다.

현대차는 3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후보자 모두에 대해 선임안을 상정해 개별 표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투표 결과 보통결의 요건을 만족하는 사외이사 후보자가 3명이 넘으면 다득표순으로 3명을 선임하는 방식이었다.

엘리엇이 제안한 사외이사를 1명이라도 배출한다면 이사회를 통해 현대차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지만, 표 대결 결과 10대%의 찬성률을 얻는 데 그쳤다.

이밖에 현대차 정관 변경안은 엘리엇이 이사회 안에 보수위원회와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제안한 것을 반영해 표결 없이 원안대로 승인했다.

한편 이날 현대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됨에 따라 이사회를 열어 신규 대표이사로 선임한다. 현대차는 정몽구 대표이사 회장, 정의선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이원희 대표이사 사장, 하언태 대표이사 부사장 등 4인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변경된다.

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본사에서 열린 현대차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검표위원들이 의안 투표 용지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2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본사에서 열린 현대차 제51기 정기주주총회에서 검표위원들이 의안 투표 용지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에 완패 엘리엇, 이대로 물러날까?…정부규제 필요성 목소리도

한편 엘리엇이 주총 표 대결에서 졌지만, 앞으로도 현대차그룹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엘리엇은 이날 결과에 대해 일단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제출한 주주제안에 대해 지지해 준 독립 주주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엘리엇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독립된 투자자들, 변화를 지지하는 시장과 투자자 커뮤니티의 의견을 고려하면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에도 유사한 행보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생겨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도 노력해야 하지만, 정부도 국내 글로벌 기업을 지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이번에는 국민연금이 공개적으로 현대차를 지지했지만 매번 이렇게 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긍정적인 의미의 '규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총에 앞서 국민연금과 해외 의결권 자문기관, 그리고 현대차 노조까지 현대차를 지지하면서 엘리엇의 시도는 이미 실패했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다음 작업 '지배구조 개편안'에 엘리엇이 시비를 걸고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엘리엇은 지난해 3월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바로 현대차그룹이 시도한 지배구조 개편안의 임시 주총 개최를 무산시킨 것. 어떤 조치가 있지 않는 이상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들의 '몽니'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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