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고령의 퀵서비스

(사진=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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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종로 3가에는 유독 노인들이 많다. 국일관 빌딩의 나름대로 멋을 부린 남녀 노인들에서부터 낙원상가 실버영화관의 옛 향수를 즐기려는 노인들. 그리고 탑골 공원의 천원 바둑내기로 하루를 해결하는 노인들까지.

허름한 선술집 골목 깊숙이 들어가면 3~4천원 국밥 한 그릇을 놓고 종일 입심을 자랑하는 노인도 있고, 특별하게 정해진 곳도 누군가와 약속도 없이 무작정 집을 나와 구부린 어깨로 골목을 배회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있다.

즉, 이러한 모습들은 초로의 뒤안길의 쓸쓸함과 비활동적인 노년의 일상을 대변하는 것이라 종로 3가에 나오는 노인들 모두를 그렇게 단정 짓기 십상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만은 않다.

종로 3가 복개천을 따라 내려 세운전자상가 첫 골목에서 만난 퀵서비스 김일수 (75세) 노인. 고척동 전자마트에 퀵서비스 주문이 들어왔다며 황급히 오토바이에 올라타 안전모를 눌러쓰고 힘차게 폐달을 밟는 김 노인의 모습을 본다면 그런 선입견은 일시에 사라진다. 

75세의 바람처럼 달리는 퀵서비스맨 “아직은 괜찮아 뭐든 할 수 있어...”

“나 시방 겁나게 바뻐. 30분 내로 이 물건 고척동까지 갖다 줘야 하는디, 긍게 뭐 물어볼 게 있으면 저기 저 이 씨 에게 물어보더라고.” 라며 바람처럼 골목을 빠져 나가는 김일수 노인.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올해 그의 나이 75세, 종로에서 퀵서비스만 15년째인 그의 모습은 안전모 밑으로 슬쩍 보이는 깊게 패인 주름과 검버섯만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갓 일선을 물러난 은퇴자라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곳에 그런 모습은 김 노인만이 아니다.

“오전에 한탕 뛰고 기다리는데 아직까지 주문이 없네, 아무래도 오늘도 영 재미가 없을 모양이야, 그러니까 이 일도 쉽지가 않아. 퀵배달꾼들이 하도 많아서” 라고 말하는 강영석(73세) 노인. 강 노인은 매일 오토바이로 미아리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한지 올해로 5년 째.  

“놀면 뭐해, 뭐라도 해야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 쉬면 병나. 아직은 무리 없이 움직이니까. 움직일 때까지는 일을 해야 맘이 편하지. 무료급식소에 가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어. 여기 사무실에 한 40명이 일하는데 평균연령 70세에서 최고령 83세까지인 그들도 다 마찬가지야.

아직은 다들 내가 먹을 건 내가 벌어먹겠다는 주위라 급식소는 얼씬도 안 해, 여자들도 있어,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일 여자들 일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아줌씨들이 더 억척이야.

우리 한 건 할 때 두세 건은 기본이야. 오토바이든 용달차든 그것만 가지고 들어오면 다 일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손에 쥐는 돈은 그리 많지 않아. 사무실에 매일 1만원 상납하고 배달 한 건당 6천 원 씩 떼 주고 기름값 내고 밥 사먹고. 또 빨간 글씨는 쉬고.”

그러면서 강 노인은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살만큼은 된다는 것은 강조한다. “내가 돈 벌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어. 그냥 무료해서 나오는 거야. 평생을 공사판에서 뼈가 굵었는데 가만히 집안에 있는 건 내 적성에 안 맞아.

(사진=신현지 기자)

그러니 우리 애들도 처음엔 위험하다고 왜 하냐고 그러더니 요즘엔 더 일하래. 그래야 안 늙는다고.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는 한 아가씨가 지 아버지를 데리고 와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취직시켜놓고 갔어. 하루 한 건이라도 좋으니 사람들이랑 어울려 일하게 해달라면서. 요즘은 그래, 노인들 일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이처럼 말을 하는 강 노인의 하루 수입은 굳이 알 것 없다며 밝히지 않는다. 단, 퀵서비스 배달요금은 거리로 받는다며 서울은 보통 한 건당 2~6만원, 소요경비는 하루 5만 원 정도라고만 한다.

그런 강 노인의 목소리는 목청이 너무 커 귀가 따가울 정도다. 매일 시끄러운 도로에서 전화를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커진 것이라며 껄껄 웃는다.  

퀵서비스의 생명은 신속 정확...거리에 밝아야 

이날 강 노인과 함께 있던 김아무개(68세) 노인도 전화를 받자마자 오늘 첫 배달주문이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김 노인의 뒤를 따르니 퀵서비스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다며 허둥대는 폼이 여실한 신입이다.

그런 그에게 퀵서비스 어려운 점을 물으니, 약속한 제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니 말 시키지 말라고 손을 내젓는다.

“퀵서비스는 신속이 생명이야. 일단은 서울 거리를 잘 알아야 하는데 나는 길눈이 어두워 네비를 봐도 애를 먹을 때가 많아. 그럼 제 시간에 배달을 못하니 욕먹지. 심지어 배달료를 깎겠다는 경우도 있어, 퇴근시간이나 비오는 날 배달 주문이 들어오면 시간 맞추느라 등에서 땀이 다 난다고.”

노인들 일자리 너무 없는 게 문제...

퀵서비스 10년째인 서 아무개(73세) 노인도 그의 말을 받아 자신은 겨울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오늘 같이 이렇게 바람이 심한 날은 특히 오토바이 타기가 좀 그래. 옷을 세 겹 네 겹 껴입어도 바람이 뼛속까지 들어와 얼마나 추운데, 한 겨울 빙판길은 젊은 사람들도 긴장하는데 우리 노인들이야 말해 뭐해.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어 다행인데 몇 푼 벌어보겠다고 퇴직금 털어 용달차 사서 몇 달 벌지도 못하고 사고나 그만두는 사람도 많이 봤어. 그러니까 이 일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야. 솔직히 노인들이 오죽 벌어먹을 게 없으면 이 일을 하겠다고 덤비겠어.

지하철에 가봐 택배노인들이 수두룩하잖아. 하루 돈 만원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나선 것인데 얼마나 벌겠어. 그런 노인들에 비하면 우리 수입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 암튼 늙었다고 괄시말고 서울 어디든 불러만 줘봐 그럼 우리가 신속 정확하게 문 앞에까지 배달해 줄 테니까.”

이처럼 노인층들이 많이 모이는 종로3가 일대에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자랑하며 서울거리를 달리는 퀵서비스 노인들, 즉 이 시대의 연로한 무명씨들의 하루를 본지는 이렇게 조명하게 된다. 
 
한편 통계청의 '2018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 전체가 느끼는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 중 6.1점으로 60대의 만족도가 5.9점에 그쳤다.

특히 행복감 지표에서 19세~40대 모두 6.7점으로 나타난 반면 60대에서는 6.5로 낮았다. 우울감의 경우에도 50대와 60대에서 모두 3.0점으로 최하위로 나타났다.

소득과 소비생활에 대한 만족도의 연령대별에서도 60세 이상 인구가 청년, 중·장년 인구보다 낮았다. 특히 60세 이상 국민의 소득 만족도가 9.2%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낮게 나타났고 소비생활에 대한 만족도에서 60세 이상은 10.7%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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