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지혜씨의 사연
두 번째 헌법소원
인력낭비라고?
자격 시험에 오탈 규정이라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탁지혜씨(38세)는 연세대 법대를 나왔고 부산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법조인이 될 수 없다. 변호사시험에서 5번 떨어졌기 때문이다. 

1일 오후 서울 고속터미널 주변 카페에서 탁씨를 만났다. 

변호사시험법 7조 1항에 따르면 로스쿨 졸업 이후 5년 이내 5번으로 변시 응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탁씨는 변시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로스쿨TV 오탈누나>를 시작했다.  

탁지혜씨는 오탈 규정의 위헌성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탁씨는 “저희가 아무리 두드려도 법조계는 다 침묵한다. 그것 자체가 폭력적인 상황이다. 그걸 깨야하는데 정보를 공유해야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오탈자 분도 참여하고 싶은데 뭔가 부담스러워 한다. 마음이 정리돼야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탁씨는 2001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2011년 부산대 로스쿨에 들어갔는데 “법대와 로스쿨 다니면서 느낀 게 여기는 자기 의견을 내면 안 된다. 튀면 안 된다. 조금만 그런 얘기를 하면 가십거리처럼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런 걸 다 조심한다. 다들 눈치만 본다. 오탈자를 풀면 로스쿨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그래서 말을 안 한다”고 밝혔다.

입시위주교육의 한국 사회에서 어느 분야든 시험에 떨어지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위축되기 마련인데 타인의 차가운 눈총도 극심하다.

탁씨는 “저희들에게 악플로 자살하라고 한다. 오탈자들 공부도 못 하는데 자살을 하라고 한다. 로스쿨 커뮤니티에 그런 악플이 달리는데 로스쿨생이 아니라 학원 관계자거나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7~8월까지 알바를 하다가 관뒀는데 그게 쭉 하는 일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밥만 먹고 다른 소비 활동을 안 하고 있다. 돈이 없다. 우리가 기부를 받아서 활동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고 토로했다.

탁씨는 평대위(변호사시험평생응시금지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작년 7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미 2016년 9월 1차 헌법소원을 진행한 바 있지만 합헌 판정이 나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근거는 인력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해당 법률의 취지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2009년 한국에 로스쿨이 도입됐는데 변시법은 로스쿨과 함께 봐야 한다. 동시에 기존의 사법시험이 폐지된 배경과 맞물려 있다. 사시는 응시 횟수나 자격 제한이 없어서 법대를 나오지 않아도 누구나 시험만 합격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놨다. 

사시 체제에서 △법학 교육이 도외시되고 시험 대비용 고시 학원에 몰리는 현상 △말 그대로 누구나 제한없이 응시할 수 있어서 전공 불문하고 사시에 매달리는 현상 △떨어지더라도 많은 인력이 오랫동안 사시 응시생으로 남는 현상 등 여러 문제점들이 부각됐고 그래서 로스쿨이 도입됐다.

핵심은 인력 낭비를 방지하자는 차원이고 고시 낭인을 막는다면서 대놓고 변시법 7조 1항을 두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변시 자격을 5년 5회로 제한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고, 공인중개사·의사·교사 등 각종 국가 시험에 대해서는 그런 제한이 전혀 없어서 왜 법조인만 그렇게 막아놨는지 형평성 문제가 있다. 임신과 출산, 해외 출국, 투병이나 그외 여러 사정들 때문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5년이 초과될 수 있다. 

5번 시험에 불합격하면 포기하라는 것이 당사자에게 너무 가혹할 수도 있다. 5번 도전했음에도 안 됐으니 다른 길로 가라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당사자에게는 매몰 비용(매몰된 비용임에도 투자 비용이 있어서 본전을 떠올리게 됨)도 있고 해서 결코 쉽지 않다.  

탁씨는 “공부를 안 하게 하는 것이 인력 낭비 방지라고 하는데 그렇게 법 공부를 8년씩(대학과 로스쿨) 하고 아예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사회적 낭비 아닌가”라며 무엇보다 “다들 선발 시험에서 응시 제한은 위헌이라고 얘기한다. 그나마 5년 5회가 제기능을 하려면 자격 시험일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변시가 절대평가 방식의 자격 시험이라면 오탈 규정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현재는 상대평가 방식의 선발 시험으로 치러지고 있다. 변시가 타인과의 경쟁으로 치러지고 있는데 오탈 규정이 있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사진=박효영 기자)
탁씨는 헌법소원, 국회 법 개정, 언론 활동 등 오탈 규정을 바꾸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더 나아가 탁씨는 “검사를 마쳐도 다 변호사 자격증이 나온다. 근데 민사를 모른다. 그래도 이름값이 있으니까 수임을 받고 민사는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이 처리한다. 그런 분들을 좀 제한을 하든지. 너무 학생들만 제한한다”고 밝혔다.

변호사 수급 균형 차원이라면 꼭 변시 응시생을 제한할 게 아니라 판검사가 퇴직 이후 무조건적으로 변호사 시장에 유입되는 것을 제한하는 방식도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오탈자를 위해서라도 로스쿨 졸업 자격만으로 공인중개사나 다른 공무원 응시에 혜택을 주는 방식이 있는데 탁씨는 “(다른 공무원) 취직이나 이런 거라도 좀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없어도 (나와 같은) 대학원생 신분이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도 안 된다고 하더라. 동 주민센터에 전화해봤는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복지 정책이 하나도 없다. 고학력자이고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다. 근데 우리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 이상 마트 알바나 이런 일들을 할 수밖에 없다. 남자들은 택배 일을 한다. 우리가 배운 것과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로스쿨 나와서 안 되면 중졸로 돌아가는 것과 똑같다. 우리가 아무리 시험에 떨어진 게 죄짓는 것이라고 쳐도 이렇게 리셋시키면 안 되지 않는가”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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