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빼고 활동 기간만 늘리는 것도 미적
한국당 의원들 반대는 아니라고 하지만
당사자는 답답하고 속터지는 상황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 정문 앞에서 1년 7개월(513일) 동안 농성 중인 사람들은 하루 하루가 피말리는 싸움이다. 형제복지원 피해 당사자인 두 사람은 무척 화가 많이 날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논의됐지만 통과되지 못 했다.

과거사법은 현재 국회 의안과에 7건이 발의돼 있다. 이번에 논의된 것은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법안으로 4년간 활동하고 2010년 해산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를 재가동시키는 게 골자다.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보고 있다. 2019.4.1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종선 대표(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와 최승우 활동가는 1일과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호소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이빨 꽉 깨물고 그래 그럴 수 있어! 참아 내기라도 할텐데. 고작 공론화와 여론화가 되지 않아서? 이건 아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사과하고! 오거돈 부산시장이 사과하고!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정리를 하겠다고 한 마당에 이건 정말 아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론화나 여론화가 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괘변을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미 공론화됐고 매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윤 의원의 무조건적인 반대에 분노가 치민다. 계속 찾아가고 항의 전화를 해야겠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1987년 당시 독재 정권이 부랑아라는 이유로 시민들을 부산 수용시설에 잡아 가두고 온갖 인권 유린을 자행했던 비극적인 현대사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의원 활동을 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만 따로 다루는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한 대표와 최 활동가는 포괄적인 과거사를 다루는 과거사법이라도 통과되길 바라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한종선 대표와 최승우 활동가는 국회 정문 앞에서 500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한종선 대표 페이스북)

법안소위에 참석한 윤 의원은 3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법에 형제복지원 사건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사건이 다 포함돼 있는데 어떤 사건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얘기도 지금 명확하지 않고 정리가 아직 안 돼 있다”고 밝혔다.

같이 참석했던 홍문표 한국당 의원은 “어느 한 가지만 가지고 결정해놓으면 배상·보상 문제가 일률적이지 못 하고 복잡할 수 있다. 어디는 이걸 요구하는데 왜 그걸 기준으로 했는가. 이렇게 배보상 문제가 상당히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적) 사건사고가 많으니까 그래서 전체를 한 번 들여다보고 행정안전부가 그날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데 한 가지만 얘기했다. 형제복지원 얘기도 나오고 제주 4.3 얘기도 조금 나왔는데 4.3은 1인당 1억2000만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 그럼 그때 그때 전부 하나씩 심의해서 할 수 있느냐고 해서 얘기가 복잡해졌다”며 “행안부가 우리 의원들한테 좀 더 준비해서 설명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과거사법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차원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당과 과거사법으로 협상했던 민주당의 증언은 아예 달랐다.

국회 정문 앞에 마련된 농성장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소위원장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정확하게 당론으로 반대한다는 것인지 당론이 아직 안 정해져서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어쨌든 한국당 의원들은 다들 부정적이었다. 근데 다른 게 아니고 그날은 진화위 활동만 연장하고 명예회복이나 배보상 문제는 이후에 논의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못 했고 아직은 (한국당이) 과거사법 전체에 대해 정리가 안 됐는데 상당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당 의원들의 해명과는 달리 홍 의원은 “윤 의원이 앞장 서서 반대했지 윤 의원만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소위에서) 바로 또 다시 논의할 거다. 내용과 관련된 것은 다 빼놓고 활동만 연장하자는 것 하나만 남겨놨다. 유족이나 피해자 단체와 논의해서 그걸 일단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만이라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합의해야 유가족들에게 할 말이 있지 않나 싶다. (다른 7건과 같이) 내용과 관련된 것은 지금 아예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전혀 진전이 안 돼서 작년 12월에 법안(활동 기간만 연장하는 내용)이 발의됐다”고 풀어냈다. 

거듭해서 홍 의원은 “다 발라내고 이거 하나만 과거사 활동만 연장해주고 활동하는 중간에 그러면 조사 대상을 뭐로 할 건지 한국 전쟁 당시의 피해에는 대체로 합의돼 있다. 그 이후에 다른 사건들까지 할지 말지 그 대상 문제 그 다음에 명예회복의 방식이나 배보상 문제는 이후에 논의하자. 왜냐면 진상규명을 해야 그런 논의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설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똑같은 과거사법이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통과됐고 그래서 진화위가 활동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 한나라당이 분명 동의해줬음에도 현재 한국당은 그 진화위를 재가동시키자는 기초적인 법안에도 선뜻 나서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군사독재 정권 때 자행된 범죄이지만 아직도 제대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최 활동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나라당 시절 때 그들이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법안을) 더 보자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며 “사실 민주당이나 한국당이나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상태더라. 오늘(3일) 홍익표 의원실(홍 의원)과 윤재옥 의원실(보좌관)에 가서 면담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게도 면담 신청을 해서 당론으로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는 “그니까 과거사법으로 진화위 조사를 먼저 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했고 배보상은 차후 문제이니. 근데 (한국당 의원들은) 계속 배보상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론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론적으로 국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 장관이 발의한 △형제복지원 특별법 △과거사법(과거사 범위·조사권 부여·청문회와 수사 의뢰 가능·허위 진술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면 처벌 규정·과거사 재단 설립) 등 당사자 입장에서 좀 더 확실한 법안이 통과되길 바라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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