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4대 종단 단호히 특혜 과세법안 반대
종교인 퇴직금 과세 2018년 1월부터만 적용
소수 목회자들만 혜택
법안의 명분과 근거는?
개신교 내부에서도 반대
민주당 반대로는 안 되는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에서 이렇게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된 적은 드물다. 국내 최대 종교 규모를 자랑하는 개신교의 소수 목사들에게만 과세 특혜를 주는 법안이 일사천리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진보적인 4대 종단(실천불교전국승가회·원불교개벽교무단·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인 퇴직 소득세 개정안은 소수 대형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특혜법일 뿐”이라며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 무엇을 위한 졸속 처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직장인들의 월급은 유리지갑인데 반해 종교인 소득은 비밀지갑으로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인도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납세의 의무 또한 다해야 한다. 나아가 종교인들은 영적 지도자로서의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불교 승려와 천주교 신부에게는 원칙적으로 퇴직 개념과 퇴직금이 없고 개신교의 대다수 목사도 특혜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진보적인 4대 종단의 대표자들이 국회를 찾아 과세 특혜 법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무엇보다 “법안을 발의하고 통과하는 과정에서 국민은 물론이고 대다수 종교인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전광석화로 해치웠다. 여론과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곧 수혜 대상을 은폐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의 풀네임은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인데 골자는 2018년 1월 이전의 종교인 소득에 대해서는 퇴직금 과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30년 경력의 목사가 은퇴해서 퇴직금 10억원을 수령했다면 대략 1년여치에만 부과되는 5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똑같이 30년 일한 일반 직장인이라면 1억4000만원을 내야 하니까 대략 30분의 1 수준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종교의 자유와 형평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비종교인은 전체 퇴직금에 세금이 부과되는 데 반해 소수 목사들에게는 엄청난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된 근거와 명분은 뭘까.

3월28일 열린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에서 박상진 전문위원은 “종교인 퇴직소득의 과세범위에 관해서 근거는 있지만 범위에 대한 부분은 별다른 규정이 없다”며 “종교인 소득 과세가 2018년 1월1일부터 시행됐음에도 종교인 퇴직소득의 경우 종교인 전체 소득 과세가 시행되기 전인 2018년 1월1일 이전 해당분에 대해서 과세되는 것으로 해석 운용됨에 따라 소급과세 및 과세 형평성 측면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소위에 참석한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종교인 과세(에 특혜를 부여)하면 이것은 사실 도와주는 것이고 (소수 목사들에게) 도움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자체가 거론되면 또 이렇게 하기 때문에”라면서 법안의 특혜성을 인정했다.

이날 법안 논의는 별다른 쟁점 토론없이 순식간에 진행 및 의결됐고 바로 다음날(3월29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바로 의결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당 차원의 입장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 의원들의 판단으로 법안 통과가 진행됐다면서 논란이 커진 만큼 차후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렇게 속전속결일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한국 개신교의 파워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 교회는 대략 7만8000개에 이르고 문화체육관광부는 2015년 통계청 조사 기준 개신교 단체가 374개이고 교인은 967만여명이라고 발표했다. 4대 종교(개신교·천주교·불교·원불교)에서 단연 1위다. 총 인구 대비 종교인은 41.6%(2155만여명)인데 이중 개신교인은 18.7%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국회 구성을 보더라도 전체 300명 의원 중 75명(25%)이 개신교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문위원은 서헌제 한국교회법학회장 등이 법 개정안 청원을 올렸다고 전했고 실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 같은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강력하게 요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승렬 목사가 특혜 과세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기자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승렬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공동의장)는 정론관 밖에서 기자와 만나 “나는 목사다. (퇴직금이 지급되는 목사들의 평균 월급으로) 400만원을 받는다면 상당히 많이 받는 편이다. 그분들을 위해 법 개정을 해주면 안 된다. 결국 수 억원이나 수십 억원을 받는 목사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법 개정이라는 것이다. 결국 혜택은 그 사람들이 보고 욕은 개신교 전체가 먹어야 된다.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 한국 개신교의 85% 정도는 다들 교회가 영세하다.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교회는 1%도 아닌 0.1% 밖에 안 된다. 슈퍼 메가 교회들만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재위원장인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안을 대표발의했고 속전속결 의결을 주도한 만큼 민주당 지도부 차원에서 막을 수도 있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반대 의견을 공공연히 밝힌 상태다. 

기자회견을 열 수 있도록 이름을 빌려준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당의 입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의원들의 판단에 의해서 해왔다. 논란이 되면 국회에서 처리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런 것들을 감안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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