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경 가수 (사진=본인 제공)
이애경 가수 (사진=본인 제공)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이별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특히 병마로 배우자를 잃은 아픔은 그 어떤 상실감보다 크다. 사망까지도 이를 수 있다는 통계가 나왔을 만큼 스트레스의 강도는 겪어보지 않은 그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으니. 그런데 이 같은 상실감을 노래로 이겨내며 새롭게 인생이모작을 쓰는 가수가 있어 화제다.

"나 이제야 사랑을 알 것도 같은데 어느새 그리움이 서둘러 오네, 사랑이여 다시 한 번만, 나 이제 모든 걸 잊고서 내 진정 사랑한 사람, 당신과 그렇게 하루를 산다 해도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여 다시 한 번만, 사랑이여 다시 한 번만” 이라고 열창하는 이애경 가수. 

CEO에서 행사의 여왕으로...유튜브 조회수 14만 건

서정적인 가사에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유튜브 조회수 14만 건을 돌파하며 행사의 여왕으로 꼽히고 있는 이애경 가수. 그녀가 바로 사별의 아픔을 노래로 승화하며 대중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녀는 가수이기 전에 33년간 한 회사를 이끌어온 (주)하나관광여행사의 대표라니 의외다. 여행사의 CEO인 그녀가 사업과는 무관한 트로트가수라니. 더욱이 제 2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 사회봉사상에 이어 각종 행사 출연은 물론 주부교실, 노인정 등의 러브콜이 줄을 잇고 있다니. 이에 본지는 그녀와 자리를 함께 했다. 

“내 노래는 모두 나의 이야기다. 그래서 노래할 때 간혹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본지와 마주앉은 그녀의 첫마디다.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우수 짙은 눈빛이라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녀는 곧장 그 눈빛을 털어내며 CEO다운 서늘함을 가장했다. 특별히 자랑할 것도 감출 것도 없다면서. 

“강원도, 방앗간 집 12남매의 막내딸로 부유하게 자란 편이다. 가수가 꿈이었는데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 안내양의 1기생이 되었다. 알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고속버스 안내양의 인기는 대단했다. 

요즘 항공기스튜어드스와 견주어도 손색없었으니, 특히 외국 바이어들의 관심이 각별했다. 많은 단골 승객이 생길 정도였고 내가 타는 버스만을 이용하면서 그 분들로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하지만 난 그 일을 오래하지 않았다. 우연치 않게 관광여행사에 입사를 했던 게 계기가 되어 1986년 전세버스로 여행사를 시작했다. 돈을 좀 벌어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겁날 것 없던 20대, 전세버스 여행사업에 나서 

그때가 20대였다. 그런데도 겁이 나거나 걱정은 없었다. 도전해보겠다는 용기와 자신감이었다. 또 타고난 끼가 있어 고객 확보도 어렵지 않았다. 자랑일지 모르겠지만 내 노래에 한번 고객은 지속적인 단골이 되었고 다른 고객들을 소개해주기까지 했으니. 그러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홍보며 영업이며 일체 내가 다했다. 사업은 성공이었다. 국내외로 돌며 원 없이 돈도 벌어보았다. 전국의 이장님들이 우리 관광버스를 타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20대의 젊음이 당당하고 좋았다며 웃는 그녀의 눈빛이 문득 사랑앓이 소녀처럼 반짝거렸다. 그녀 뒤로 펼쳐진 창밖의 빛나는 봄 햇살처럼. 역시나 남편과의 첫 만남의 기억을 그녀는 이렇게 떠올렸다. 
 
월급봉투 송두리째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남자..

“여행사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남편을 만났는데 정말 괜찮은 남자였다. 가난했지만 정신이 건강한 남자였다. 특히 내게는 자신의 모든 걸 내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남자였다. 자신의 월급봉투를 통째로 건네주고 교통비가 없어 밤새 수원에서 안양까지 걸어왔을 만큼이었으니.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을 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울컥했다. 

이런 사람이면 내 인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결혼하고도 그 같은 살뜰함은 변함없는 남자였다. 안양에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날만큼 부부금술이 좋았다. 내가 하겠다는 것은 뭐든 무조건 믿고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였다. 그러니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을 살려내겠다는 생각에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결국 남편은 8년 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남편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인들에게 12억 사기 당해...

그녀의 침묵. 아직도 당시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그런데 침묵의 의미는 그게 아니었다. 남편을 잃고 꿈인 듯 생시인 듯 현실감을 읽지 못하는 그녀를 위로해주겠다면 다가온 지인들. 그것도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 할 교장의 아내까지 합세한 5인이 그녀의 돈 12억을 냉큼 털어갔단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병이 생겼다. 내 가족 말고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에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 더구나 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윤OO, 최OO, 최OO, 김OO 등 그 다섯 명에게 12억이 넘는 엄청난 돈을 사기 당했다. 남편과 남은 인생을 잘 살아보겠다며 모은 그 돈을. 어떻게 그들이 내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남편을 보내고 절망에 빠진 날 이용해 12억 사기라니. 난 절대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현재 그녀들과 소송 중에 있다.” 

딸 하나와 아들 건희, 그리고 노래에서 힘 얻어 ...

이런 그녀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아들과 현재 중학교 3년인 늦둥이 딸인 하나라고 한다. 관광여행사 상호도 딸의 이름을 따 ‘하나 관광여행사’가 된 것이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 하나가 있다. 남편을 잃고 우울증에 빠진 날 일으켜 세운 우리 하나가 없었으면, “엄마 하나가 있으니 용기 내어 살자”는 그 말이... 공부도 늘 상위권에 있어 걱정 한 번 해보지 않은 녀석이다.

그리고 우리 아들 건희, 카레이서로 늘 1위를 달리며 우리 부부의 자랑이 되어주었던 아들이 많은 의지가 되고 있다. 현재 아들은 정비공장(주)하나모터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난 무대 위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러니까 어릴 적 꿈이 가수였던 만큼 그녀의 노래 실력은 오래 전부터 주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그런데도 사업에 묻혀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보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단다. 그런 그녀에게 안양시민 가요대상과 강원도 경포대가요대상은 무대에 오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기타치고 노래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 남편도 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해 안양시민 가요제를 권유했다. 당시 대상을 받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9년에는 첫 음반 ‘맨날맨날’을 내놓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안동역 작곡가 최강산 씨가 곡을 주셨다. 

첫 음반 3천장 판매 수익금 전액 암환자 후원금으로

이렇게 가수의 길로 발을 내딛게 된 그녀는 첫 음반 3천장 판매 수익금 전액을 암환자 후원금으로 내놓았단다. 그리고 2017년 발표한 2번째 앨범은 세미트롯풍의 ‘사랑이여 다시 한 번’을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수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단다.

한 여인의 애끊는 사부곡이라는 것을 대중들이 알 리가 없을 텐데 호소력 짙은 음색과 애절한 노랫말에 끌리는 것은 당연했던 모양이다. 그녀 역시 이 노래가 특별하단다. 남편의 그리움을 담은 곡이라 노래하다보면 울음이 나오기도 한다고. 

“남은 인생 남편과 사랑하며 오순도순 살려고 했는데 그렇게 일찍 떠나버린 남편이 많이 안타깝다. 안타까움이 깊어지면 미움이 되기도 한다는 말 틀리지 않다. 3집으로 나쁜남자를 발표했다. 이 노래 역시 최강산 씨 곡으로 내 마음을 담았는데 요즘 효자노릇을 해주고 있다.

많은 곳에서 이애경을 알아주시고 불러주신다. 이번달 25일에는 군포철쭉제, 5월에는 시민노래자랑, 또 6월 22일부터 24일까지는 제주도 행사 등등, 또 주부노래교실에서도 불러주시고. 그래서 요즘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노래로 힘을 얻고 대중들의 반응에 행복을 찾고 있다는 이애경 가수. 요즘 그녀에게 후회가 있다면  젊은 날에 가수 도전을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업에만 몰두했던 지난날 역시 최선이었기에 자신을 자책하지는 않겠단다. 

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로 화답...

“정말 좀 더 일찍 노래를 시작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있다. 하지만 지금껏 열심히 살았고 그 덕분에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얻어냈으니 자책은 아니다. 난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손 한번 벌리지 않고 내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냈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고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다.”

이처럼 자신의 일에 용감하고 당당한 그녀도 요즘 여행사업 관련에서는 힘 빠지는 일이 있다고 한다. 

“요즘 여행사들이 덤핑 판매로 제 살 깎아먹기를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거는 여행사 지점장으로서 애환인데 본사가 진행하는 홈쇼핑과 대리점과의 가격차이가 너무 크다. 이것을 갑질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 일하기가 예전 같지가 않고 힘 빠지는 때가 많다.”

끝으로 그녀의 계획을 물으니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안양시 공직자 방송 MC 활동을 비롯해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열심히 노래로 화답하겠다고 한다. 또한 여행사의 서비스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리고 좀 더 나이 들면 고향 강원도에 내려가 흙을 벗삼아  욕심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하니. 앞으로 여성 CEO로서 또 가수로서 그녀의 힘찬 걸음에 기대를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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