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환경미화원들의 하루
공중도덕 외면한 시민 여전히 많아

(사진=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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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아유, 예전엔 이 순희도 이름 좀 날렸는데 지금은 다 옛날이야기야.” 썰물처럼 승객들이 빠져나가버린 2호선 환승역. 승객들의 걸음이 한산한 틈을 이용해 계단을 쓸어내리고 있는 미화원 이순희(가명·여, 63세)씨, 걸레든 손놀림을 여전히 유지한 채 말을 건네는 기자에게 수더분한 웃음으로 받는다.

올해로 코레일 미화원 생활 3년, “힘들다 생각하면 한없이 힘이 들지만 이 일도 할 말하다 생각하면 그리 힘들 것도 없다”고. “세상 하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만 있겠냐”고 말하는 동안에도 숨이 차게 바닥을 닦아내는 모습이 환갑을 보낸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처녀 때부터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어

"난 처녀 때부터 24년간 직장을 다니고 정년을 했는데도 그냥 집에서 쉴 수가 없더라고.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 그렇잖아, 사람이 순전히 돈으로 사는 것이라. 남편도 젊어서는 건축일을 했는데 나이가 있으니 이제는 나가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다시 일을 나오게 된 거야.

그렇다고 여기 아무나 들어오는 건 아니야, 비실비실 기운 없으면 들어오지도 못해. 체력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체력이 약한 사람은 아무래도 어려워, 앉았다 일어났다, 줄넘기에 달리기도 해야 하고. 이래봬도 난 1등으로 통과했어. 아무튼 건강해서 이 일도 하는 거니 감사한 거지. 그런데 여기도 65세면 그만둬야 돼.”

(사진=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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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순희씨는 24년간 스피커 만드는 기술자로 앞도 옆도 돌아볼 틈 없이 일만 했지만, 워낙 없는 살림에 딸린 식구들이 많아 노후 대책은 생각도 못한 것이란다. 그러니 여전한 빈주먹. 더욱이 24년 일한 퇴직금으로 식당해보겠다고 나섰다 1년도 안 돼 털어먹고 보니 세상일에 겁만 늘었다고.

어디 그뿐인가. 형제들이 나누어 내는 구순 노모의 요양비에, 서른 넘은 취준생 아들의 학원비, 아직 끝나지 않은 은행의 대출금도 있으니 세상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대상이라 자신에게는 안방마님의 영화는 그림의 떡이라고 웃는다.

“그래도 우리 남편이 안살림을 해주니 요새는 한결 편해, 밖으로만 돈 남편이라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내가 가르쳤어. 설거지부터 밥솥, 세탁기 돌리는 것까지. 그랬더니 요즘은 청소며 부엌살림이 나보다 나아, 어제는 쭈꾸미볶음까지 해놨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남편의 뒤늦은 살림맛 자랑에 웃음 섞인 목소리를 내던 그녀가 문득 비명이다. 계단 끝의 신추를 문지르던 손을 화들짝 들어 올리는 폼이 과장은 아니다. 손목이 말썽이라고 한다. “손을 하도 많이 썼더니 이제는 조금만 힘을 줘도 야가 난리네.”

가능한 즐겁게 일을 하려고 하지만 이처럼 몸이 한계를 드러낼 때는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특히 하루 3교대 근무로 돌아가는 새벽 타임이 가장 힘들다고.

가장 힘든 건, 도덕성 모르는 얌체족들 

“일은 3교대로 돌아가는데 솔직히 나이 먹은 여자들이 3교대는 힘들지. 일할 사람이 없으니 그렇긴 한데, 가장 힘든 시간은 새벽타임이야. 6시 출근하면 2시에 퇴근, 2시에 출근하면 10시에 퇴근, 또 10시 출근자는 새벽 6 퇴근인데 가장 힘든 것은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까지 출근하는 타임이야.

새벽에 나와 봐, 진짜 더러워서 욕이 절로 나오지, 술 먹고 여기저기 토해놓고, 자기네들 쓰레기 봉투값 아끼려고 집에 온갖 잡동사니 다 끌고나와 여기 쓰레기통에다가 버려놓고 가지. 또 화장실의 화장지는 갖다놓기 무섭게 가져가고, 뭔 사람들이 그러는지.”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끌고 나와 버리는 양심 없는 사람들 때문에 싸워보기까지 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질린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바닥에 눌러 붙은 껌을 떼어내느라 주위는 잊은 자세다.

그 사이 전철이 도착했는지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는 승객들의 걸음이 분주해진다. 그녀는 그 틈을 이용해 이제는 벽과 창틀로 자리를 옮겨 먼지 작업이다. 그러니 기자도 더는 그녀를 붙잡고 있을 수 없어 황급히 계단을 내려 출발하려는 전철로 자리를 옮긴다.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이번엔 2호선과 5호선이 통과하는 OO역이다. 마침 바퀴달린 사다리기구에 올라타고 천정의 먼지 제거에 나선 미화원들 모습이다. 높은 천정에 위험스러워 보이는데 여성 미화원 두 사람이 사다리위에 올라있고 그 아래는 두 남자가 사다리를 붙잡고 있다. 매달 2회씩 기동반이 나와 손에 닿지 않는 천정이며 고장 난 부분의 수리와 교체 등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좀 떨어진 곳에 쓰레기통 분리작업에 나선 미화원의 설명이다.

경기도 시흥의 김모(59세)씨다. 홍대역사에서 옮겨온 지 6개월째인 그녀는 이곳 역사에서의 일은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야. 애들이 술 먹고 토하고 화장실 변기에 오물 처넣어 넘쳐흐르는 것 시도 때도 없이 닦아 내야고, 아유, 저녁이면 손목발목이 시큰거려 밤새 끙끙대느라 잠을 못자. 그러니 그런 곳에 비하면 여긴 일하기 훨씬 수월하지.”

혹여 아는 얼굴 만날까봐 피하기도...

그녀 역시 아직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어 미화원에 취직했다고 한다. “한 달 월급 180인데 교통비 떡값 등 포함하면 200정도 돼. 일에 비하면 너무 작은데 그래도 매달 들어오는 고정수입이 있으니.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 요즘 어디 일할 곳이 흔하나.  더구나 배운 게 있나. 기술이 있나. 부동산 자격증 하나 딴 게 있어 일을 좀 해봤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고. 한집 건너 부동산이라. 그래서 친구랑 이 일을 시작했는데 벌써 1년이 후딱 지나가네.”

하지만 그녀는 처음에 아는사람 만날까봐 몸 사리고 얼굴을 가리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만둘 생각을 했단다. 특히 홍대역사에서 일 할 때는 근처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보게 될까봐 엄청 신경이 쓰였다고. 그래서 자리를 옮겨온 것인데 어느 날 아들이 찾아와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할 때는 눈물 나게 고마웠다고.

(사진=신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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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자식은 모든 힘의 원천이라는 것을 그녀 역시 싱긋 웃는 표정으로 그 마음을 대신한다. 그런 그녀 역시도 가장 큰 어려움은 화장실 청소와 쓰레기 버리는 얌체족이라며 손을 내젓는다.  
“우리도 노조라는 게 있어 특별한 어려움은 노조에서 해결하는데 양심 없는 사람들이 문제야, 내 집 화장실도 막히면 역하고 힘든데, 여기야 오죽하냐고. 제발 변기에 오물 좀 집어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발 화장실 제대로 이용하길...

특히 생리대가 문제야. 왜 변기에 생리대를 집어넣는지. 그렇게 생각이 부족거야. 그리고 제발 집에 있는 쓰레기 들고 나와 여기다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심지어 음식물까지 다 들고 나와 버리는데, 봉투값 아낀다고 부자 되는 건 아닌데. 제발들 그러지들 말자고.

암튼, 난 막힌 화장실 청소랑 도덕성 없는 얌체족들이 고역이야.” 이렇게 어려움을 털어낸 그녀는 또 다른 일을 찾아 황급히 자리를 옮긴다. 이에 본지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음 무명씨를 만나보기로 한다.

한편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지하철역과 화장실 청결을 위해 별도의 기동반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기동반은 마지막 전동차가 운행을 마친 심야시간대에 본격적인 청소에 돌입하는데 순회기동반은 역사 계단이나 대합실, 승강장 바닥 청소 및 왁스작업을 담당한다. 특히 고가기동반은 높이가 8미터에 달하는 고가사다리를 이용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대합실 천장이나 창틀 등의 청결 유지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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