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배의 장광설] 광기(狂氣)의 정치학
[김경배의 장광설] 광기(狂氣)의 정치학
  • 김경배 기자
  • 승인 2019.04.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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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배 편집국장
김경배 편집국장

[중앙뉴스=김경배] 인류가 집단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사회 규범(規範)이다.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었을 경우에는 거기에 따른 여러 가지 불협화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같은 개인의 행동을 제어하고 규제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수긍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규범이다. 때문에 규범은 구체성을 띄고 있다.

그 구체성은 주로 관습화되거나 성문화되어 법으로 나타난다. 특히 규범은 구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규범에서 벗어난 행위를 일탈(逸脫)이라고 한다. 일탈행위가 반드시 나쁜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가 당연히 죄악시 했던 간통죄가 폐지되고 성해방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경우 사회적 다양성과 인간존엄권 문제 등과 맞물려 일탈도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인류의 역사 발전단계에서 변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인류의 집단의식(集團意識)이다. 이 집단의식은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이념적으로 주로 나타난다. 십자군 원정,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전쟁 등이 대표적인 종교전쟁이다.

지금은 퇴색되었지만 2차 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의 동서냉전은 이념적 갈등이다. 이러한 집단의식은 이성적 판단을 상실한 경우가 많다. 맹목적으로 그 집단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사리 분별없이 평소에는 하지 못할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집단의식은 광의(廣義)의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협의(狹義)의 의미에서도 적용된다. 두레, 품앗이, 계 등은 이러한 집단의식을 조화롭게 승화시켜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킨다. 하지만 집단의식이 마녀사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녀사냥은 한 집단이 특정인을 억압하기 위해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녀사냥은 단순히 특정인을 억압하기 위한 다수의 횡포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미국의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는 14세기부터 불어 닥친 유럽의 ‘마녀사냥’으로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 광풍이나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도 사회의 용인이 없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비록 정보의 통제와 조작에 의한 것이었다 해도 집단의식이 이를 용인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반인륜적 행위의 근저(根柢)에는 광기(狂氣)가 작용하고 있다. 개인의 광기는 그것이 반인륜적인 행위만 아니라면 충분히 용인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집단의 광기는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광기의 사회에서는 미치지 않은 이들이 미친 것이다. 따라서 양심과 정의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게 된다. 집단화(集團化)가 무서운 이유는 이를 제어할 수단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립되는 집단의식의 충돌은 대재앙을 잉태한다. 그 대립의 소용돌이는 중간지대를 용인하지 않는다. 회색분자로 덧칠하면서 매도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21세기에도 아직까지 흑백논리에 빠져있는 이유이다.
 
최근 시민들이 바라보는 정치권의 모습은 싸늘하기만 하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광기에 물든 정치력을 선보이고 있다. 스스로가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이미 무력화되었으며 법이고 규범이고 없는 무법천지가 되었다.

워낙 얽히고설켜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집단으로 나뉘어 광기(狂氣)의 정치학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에 국민의 혼란스러움은 가중되고 있고 정치권을 향한 냉소만 짙어가고 있다.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미 훌륭히 성공한 듯하다.

그들은 과연 국민에게 법을 지켜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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