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이전 개헌 정국부터
12월 단식과 5당 합의문
각 당의 선거제도 모델
힘들게 만든 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문
배제된 적 없는 한국당의 깽판
바른미래당의 내부 사정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 공조가 결론을 맺지 못 하고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불법적 육탄 저지와 바른정당계(바른미래당)의 절차적 문제제기로 인해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사실 4당의 공조는 지난 2월 5당 지도부가 미국에 다녀온 뒤부터 형성됐지만 작년에 싹이 텄다고 볼 수 있다. 공조 체제에 한국당이 배제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핵심은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이 회의장에 진입하려는 길목에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들이 인간 대오로 가로막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첫 시작은 작년 6.13 지방선거 이전 개헌 정국이 펼쳐졌을 때였다. 그때는 선 개헌 후 선거제도 개혁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권력구조 형태를 놓고 더불어민주당(4년 중임·연임 대통령제)과 자유한국당(이원집정부제)이 합의하지 못 해서 물건너갔다. 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시화됐고, 소수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생존 문제와 맞물리면서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수가 확보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세로 떠올랐다.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는 보수 정당 지도부로서는 거의 최초로 “비례성과 대표성”이 향상되는 선거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고 3당의 연동형 도입 요구에 “한국당도 원칙적으로 동감과 공감의 뜻을 표한다(11월29일)”고 밝혔다. 물론 김 전 원내대표도 선거제도 개정안을 다룰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명단을 제출하지 않아 무려 3개월간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11월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등이 연동형은 총선·대선 공약이 아니었고 권역별이 핵심이었다면서 마치 두 개가 대립적인 것처럼 호도해서 파문이 일었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핑퐁게임을 일삼으면서 연동형 도입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3당은 예산안 처리 협조와 연동형 도입 보장을 연계하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국당은 3당을 배제하고 예산안을 합의 처리했다. 이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 투쟁을 하는 등 3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작년 12월15일 5당 합의문을 쟁취하고 손을 맞잡은 3당 지도부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그러자 12월15일 5당의 선거제도 개혁 관련 합의문 발표 →2019년 1월 4당이 각각 선거제도 모델에 대한 당론 발표 → 한국당이 모델을 제시하지 않고 시간을 끌자 2월말 5당의 방미 이후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대한 공감대 형성 →3월15일 4당의 선거제도 단일안(전국 준연동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출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

물론 선거제도 개혁은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거론할 때부터 근 20여년간 정치개혁을 위한 숙원 과제였다.

3월15일부터 4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에는 민주당이 이참에 매듭짓고 싶었던 숙원 사업을 끼워서 동시 처리하기 위한 협상 진통으로 시간이 걸렸다. 

민주당은 100% 연동형 뿐만 아니라 정당 득표율의 절반만 확보해주는 준연동형을 도입하더라도 정치적 손해를 본다는 거대 정당식 계산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혁 입법 리스트를 9개나 꺼냈다. 최종적으로 검경수사권조정(①형사소송법 ②검찰청법) + ③공수처법(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 ④선거제도 단일안 등 4개를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의견이 좁혀졌다. 

그럼에도 바른미래당 내에서 바른정당계 8인(정병국·지상욱·하태경·오신환·유의동·유승민·이혜훈·정운천)과 함께 일부 의원들이 △관례적으로 합의 처리해왔던 선거제도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 자체에 대한 반감 △100% 연동형이 아닌 준연동이라서 △공수처와 검경수사권조정을 왜 끼워팔기 하는지 △공수처에 수사권만 주는 안을 민주당이 완전히 포기하지 않아서 등 여러 명분으로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공조에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마침 4.3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를 맛보는 바람에 손학규 대표 체제가 리더십 위기를 겪는 등 바른미래당의 내부 사정이 복잡해졌고, 민주당은 기소권없는 공수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 열차는 더뎌졌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협상을 통해 ‘판사·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로 절충안을 마련했고 18일 의원총회에서 그걸 제안했지만 갑자기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그런 합의를 한 적 없다는 발언이 타전된 뒤 의원들의 추인을 이끌어내지 못 했다. 

결국 22일 4당 원내대표의 포괄적인 패스트트랙 합의문이 발표됐고, 23일 4당의 추인이 완료됐다. 민주당·평화당·정의당은 쉽게 추인이 이뤄졌지만 바른미래당은 복잡하다.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추인을 받으려고 했지만 당헌 당규상 당원권 보유 의원 24인 중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기 어려웠다. 그래서 과반 이상 표결로 당론이 아닌 ‘당의 입장’ 차원에서 추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문상 데드라인인 25일에 4당의 추인을 전제로 패스트트랙 절차에 돌입하면 되지만 또 문제가 있다. 당장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면 정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위원들(18명) 중 5분의 3 이상(11명)의 찬성표를 받아야 하지만 그게 확실하지 않았다. 정개특위는 12명이 확보됐지만 사개특위는 딱 11명인데 사개특위 위원인 바른정당계 오신환 의원이 24일 아침 페이스북에 반대표를 시사했다. 

그래서 24일부터 4당 vs 한국당·바른정당계의 구도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거나 막으려고 전쟁을 치르게 됐다.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저지의 선봉장에 섰다. (사진=박효영 기자)

우선 김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에 찬성하는 다른 의원으로 사보임(사임과 보임)하는 걸 막기 위해 △의사과 서류 접수 방해 △문희상 국회의장의 허가 방해 △보임된 채이배 의원 감금 등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바른미래당 소속 또 다른 사개특위 위원인 권은희 의원은 25일 오후 ③에 대해 좀 더 논의해야 한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김 원내대표는 그 시간까지 합의된 수준으로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면서 사임을 단행했고 임재훈 의원으로 보임했다. 

모든 것은 정개특위·사개특위에서 ①②③④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24일 이미 발의된 ④을 제외하고 ①②③에 대한 법적 절차를 막아내는 과정에서 한국당의 조직적인 불법(국회법 143조~148조/166조 1·2항 위반)이 자행됐다. 

한국당 지도부는 25일 저녁부터 익일 새벽까지 내내 ①②③이 법안으로 접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려 국회 본관 7층 의안과를 점거했다. ③이 팩스로 접수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팩스를 망가트리고 업무 컴퓨터를 못 쓰게 하기도 했다. ①②을 접수하려고 7층으로 찾아온 민주당 의원들을 육탄 저지했다. 한국당은 조를 편성해 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실로 예상되는 본관 2층과 4층 곳곳을 이미 점거한 상태였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④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위해 25일 밤 4층 회의실 주변으로 갔지만 한국당의 스크럼에 막혔다.

26일 민주당은 머리를 싸맨 끝에 전자 입법발의시스템을 활용해 ①② 발의에 성공했다. 21시 즈음에는 2층 회의실에 한국당 의원들을 묶어놓고 5층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사개특위 전체회의를 개의했다. 그래서 ①②③에 대한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을 상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의결정족수가 부족해서 패스트트랙 지정은 실패했다. 

7층 의안과는 가장 먼저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당초 채 의원과 박지원 평화당 의원이 불참해 지정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날 오전 김 원내대표가 바른미래당 동료 의원들에게 두 번의 사보임 단행에 대한 유감 표시를 하면서 바른미래당 4인(김동철·김성식·채이배·임재훈)이 26일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유보하고 하루 건너뛴다는 소식이 기사화됐다. 

하지만 채 의원은 27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12월 5당 합의문 이후) 5개월 동안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마련할 때 한국당은 뭘 하다가 지금 와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당은 한국 정치 발전의 큰 걸음인 선거제도 개혁, 사법개혁을 위한 패스트트랙 절차를 더 이상 막지 말기 바란다”고 밝혀 의지를 드러냈다.

26일 20시에 ④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정개특위 전체회의도 소집령이 내려졌지만 한국당의 육탄 방어에 또 다시 막혀서 개의되지 못 했다. 김동철·김성식 의원도 26일 표결에는 유보적인 입장이라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 위원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서라도 개의하려고 했지만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과 협의 끝에 일단 물러섰다.

박 의원은 26일 밤 페이스북에 “3일 동안 국회에서 대기하고 오늘 밤도 참석했지만 민주당 지도부에서 의결이 불가능하니 귀가하라고 해서 귀가했고 짐을 챙겨서 목포로 간다. 결국 내가 불참해서 가결이 안 된 것으로 기사화된다. 채 의원과 내가 찬성해야 의결된다. 정정 바란다”고 밝혔다.  

27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당 규탄대회에 나 원내대표가 참석했고 단상으로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과 한국당은 강대 강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민주당은 26일 물리력을 행사해서 국회를 마비시킨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 한국당 의원들 20명(강효상·이만희·민경욱·장제원·정진석·정유섭·윤상현·이주영·김태흠·김학용·이장우·최연혜·정태옥·이은재·곽상도·김명연·송언석·보좌관 1명·비서관 1명)을 국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법 166조 1항에 따르면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퇴거불응, 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한국당은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일주일 전(20일)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했다. 양당은 27일 내내 주말 비상 대기조를 편성해서 국회에 배치시켰다. 민주당은 4개조로 나눴고, 한국당도 장소와 시간대별로 로테이션을 돌렸다. 

이상민 사개특위 위원장은 이날 18시 국회 로텐더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주말에 개의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내가 결심하면 다 똑바로 실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당 의원들 행태가 밉고 매우 못마땅하지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는 뜻에서 (26일에) 산회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곳곳에서 막으면 길거리에서라도 할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회의 공간인데 한국당 쪽에서 회의를 열지 못 하게 물리력을 동원해 막으면 방법이 어디 있겠나. 길거리에서, 복도에서, 여기 로텐더 홀에서라도 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바른미래당 당내 정리를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국회의원 1표가 중요한 상황에서 주말에 지역구로 내려갈 의원들이 생길 수 있어서 패스트트랙 지정 의결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바른미래당의 내부 정리가 이뤄져야 4인(김동철·김성식·채이배·임재훈)의 찬반 표결이 예상 가능해지고 좀 더 확실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른정당계는 사보임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만 김 원내대표에 대한 항의를 누그러뜨릴 수 있어서 주목된다.

바른정당계 수장인 유승민 의원은 서울 강남구 성암아트홀에서 열린 팬미팅에 참석해 “선거제도를 다수의 힘으로 바꾸면 내년 총선 이후 어느 다수가 생기면 또 마음대로 제도를 고치려고 할 때 막을 명분이 없다”며 “김 원내대표가 오 의원을 만난다고 들었다.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 환원을) 끝까지 거절하고 강행할 경우에는 더 이상 원내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을 돌려놓으면 패스트트랙 공조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서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한편, 유 의원은 “국회에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기소권 조정하는 것은 공감대가 있어서 큰 쟁점은 아니다. 공수처를 따로 만들어 고위공직자의 부패나 비리를 수사하자는 취지는 좋다.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기관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권력 수단으로 쓰지 못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수처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하수인이 되면 없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 내용만 좋으면 패스트트랙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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